"그래서 너 언제 가는거냐?"
"한 달 후."
윤우는 커피를 홀짝이며 준서에게 말했다. 준서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다음 질문을 건네었다.
"본사? 본사였지?"
"그래, 그래. 내가 몇 번을 말해야 하냐?"
"뭐, 까먹을 수도 있지. 쯥."
윤우의 까칠한 답변에 준서는 약간 당황했지만 그의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다. 어째서, 어째서 윤우는 저렇게도 긴장한 건가. 뭔가 이유가 있을 테다. 연애 문제? 연인이 있었다면 장거리 연애는 힘드니 그럴 만 하겠지만 없기 때문에 아니다. 적응 문제? 애초에 윤우도 원래 다른 기지에서 일하다가 2년 전에 이곳으로 발령된 것이기에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입맛 문제? 그것도 아니다. 적응 잘하는 사람이 그런 걸 따질 리가 없다. 그러면…
"나 어떡하냐? 곧 영어 쓰는 데로 가는데 영어를 잘 할지가 걱정이다… 하아."
"아, 그거였냐? 근데 너 영어 자신있다매? 토익 960점대인 사람이 왜 그런 고민을 하냐."
"토익 잘 보는 게 실생활에서 쓰는 거랑 차이가 있잖아, 차이가! 게다가 복잡한 영어 단어 많을 건데 그걸 외울 수가 있을지도 고민이고."
"고민이긴 하네."
"혹시 영어 잘하는 방법은 없을까?"
"영어 못하는 사람한테 묻는 것 봐라!"
윤우는 뭔가 방도가 없다는 듯 청하였다. 준서는 거절했다. 애초에 자신이 윤우보다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의 상사가 영국인이긴 해도 그는 한국어를 잘해서 영어로 소통할 일이 거의 없었다. 동료 대부분도 한국인 아니면 한국어 잘하는 사람들이었고.
그래도 간절히 방법을 찾는 윤우를 보고 준서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친구니까 가기 전에 도움이나 하나 주고 싶었다. 그런 그가 생각해낸 방법은,
"SCP를 활용해보는 건 어때?"
"미쳤냐!"
"왜, 실험한답시고 하면 되잖아."
준서는 장난끼 넘치는 말투로 말하였다. 윤우는 그런 준서의 말이 황당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것도 어떻게 보면 답이긴 했다. SCP 중에 언어에 관련된 건 많으니깐 말이다. 특히 이번 달에만 여러 개가 나와서 변칙햔상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SCP를 쓴다면 어떤 걸 쓰는 게 나을까?"
"음… 955-KO? 그거 어때?"
"그 열쇠 말이야? 근데 그거 아프다던데."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때는 아니잖냐."
2007년 8월 9일 목요일
(음) 6월 27일 • 乙亥日 |
霧津日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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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면 |
무영댐 투신시도자, "호수 안에 마을이 있다"
어제(6일) 새벽 6시 40분 경, 무영댐(월등면 월용리 장척길 45) 아래의 호수로 한 남성이 뛰어들었다가 경비원에 의해 구조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호수에 뛰어든 남성인 정 모씨(43)는 6시 30분 경, 자신의 SUV 차량을 호수로 이어지는 도로에 세우고 차에서 나와 호수로 달려들었다. 이후 정 모씨는 호숫가에 다다르고 무릎을 꿇고 호수 내부를 바라보았다. 정 모씨는 이내 호수 안으로 걸어가기 시작했고 호수 중앙에 도착한 정 모씨는 돌연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그때 막 출근한 무영댐 경비원 이근영 씨는 물에 빠진 정 모씨를 발견하고 바로 보트를 운전해 정 모씨를 구조하였다. 빠른 구조 덕분에 정 모씨는 약간의 물을 삼켰을 뿐 생명에 지장이 생기지는 않았다. 구조된 정 모씨는 현재 무진제일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정 모씨는 투신 동기에 대한 질문에 "호수 안에 마을이 있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는 자신이 원래 호수에 새벽 낚시를 하러 왔다가 갑자기 호수로 가고 싶다는 충동이 생겨 달려간 것이라고 말하면서 호수에 다다르자 호수 안에 잠긴 마을이 보였다고 말했다. 호수 안에 잠긴 마을을 보자 알 수 없는 감정이 느껴졌고, 그 때문에 호수로 뛰어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모씨는 그 당시의 기억은 갖고 있지만 그때의 기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무영댐은 1974년 무진시의 식수원 공급을 위해 건설된 것으로, 정 모씨의 진술과는 달리 무영댐 호수 아래에 수몰된 마을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정 모씨는 사건 이후 생긴 우울 증세 외에 아무 정신질환도 앓지 않았고 무진시 출신이 아닌 순천시 출신 관광객이었다. 그럼에도 정 모씨가 마치 고향 마을을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해 사건은 더욱 혼란에 빠졌다. 일각에서는 물 속의 그림자나 물고기를 보고 착각한 것 아니냐고 하지만 무진경찰서는 당시 정 모씨가 호수에 뛰어든 것은 일출 전이였기에 어두워서 호수 안쪽이 보이지 않았을 거라고 반박했다.
무진경찰서 형사1팀장 박혜완(43)은 기자회견에서 "정 모씨에게 환각 증세가 없는데도 호수 안에 마을을 봤다는 것이 의문점이다. 이번 주 내로 호수 내부 수색을 실시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근영 씨는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한 용기를 인정받아 무진경찰서로부터 시민 표창장을 수여받았다. 표창장을 받은 후 무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근영씨는 "정 모씨가 본 것이 무엇인지 자신도 모르겠지만 빨리 괜찮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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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4일 요일
(음) 월 일 • 日 |
霧津日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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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면 |
무진시 경제, 날로 갈수록 악화, 윤민섭 시장 "안개 이용한 관광 정책 펼쳐야"
토양, 수질 농약 오염도 3배 "껑충"
다른 살포방식보다 오염 지역 넓어
지역 신생아 기형율에 영향 줄 수도
농협 "항공기 없으면 농장 줄도산"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는 제대로 조사조차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조사를 주도한 시드니 대학교의 베버 크라우프먼 (52) 교수는 "일부 기업형 농장에서 과용하고 있는 농약을 우리와 우리 아이들이 그대로 섭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생아 기형율이 높은 지역이 대규모 농작지 인근과 상당히 겹친다는 사실이 절대 우연이 아니라면서 후속 조사를 통해 잔류 농약이 지역민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정확하게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농장 경영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호주농업협동조합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지부의 나다니엘 벡 (45) 차장은 "항공기와 농약 없이는 이 지역의 농장 중 어떤 곳도 적자로부터 살아남을 수 없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워낙 광대한 면적에서 농사를 짓다 보니 다른 방식으로는 경제적 손해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호주농협이 조사하여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똑같이 10 헥타르의 농지에 밀을 재배할 때 항공기를 사용할 경우 트랙터를 쓸 때보다 2배 이상, 유기농 방식보다 최대 15배 이상 비용이 절약되었으며, 재배 면적이 넓어질 수록 이 격차는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덧붙여서 "세계 밀 생산량의 10%, 옥수수 생산량의 35% 이상을 책임지고 있는 미국과 호주의 기업형 농업이 없다면 선진국들조차도 기아 문제에서 허덕이는 상황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며 현재의 농법이 불가피한 선택임을 강조했다.
이렇듯이 농업 현장에서 항공기와 농약을 퇴출하자는 환경단체의 주장을 두고 시민사회의 의견 대립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주 정부 당국은 "현재로썬 농업용 항공기와 공중 농약 살포 행위를 금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농협 측이 당연한 결정이라는 반응을 보인 데 반해 그린피스 측은 강하게 반발하며 적절한 규제 방안이 마련될 때까지 항의 행동에 나서기로 결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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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비가 내리는 어느 아침, 뉴욕시의 어느 좁은 골목을 '찰스 파커 탐정 사무소Charles Parker Detective Office'로 적힌 작은 네온사인만이 유일히 밝혀줬다. 껐다 켜졌다하는 네온사인 아래의 문 너머에는 작은 사무실이 하나 있었다. 어둡고 축축하고 곳곳에 곰팡이가 낀 사무실이지만 그 안에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책상에 발을 올리고 모자를 눌러쓰고는 크게 코를 곯며 자고 있었다. 그가 드드렁거릴 때마다 사무실을 밝히는 전등이 박자에 맞춰 흔들렸다.
이윽고, 코 곯는 소리 말고는 침묵 뿐이던 사무실에 문이 열리고는 누군가의 말이 들려왔다.
"어휴, 이제까지 주무셨어요? 이제 오전 9시인데, 사무소 문도 열어야죠."
약간 앳되어 보이는 얼굴의 소년이 문 밖에 쌓여있던 편지들을 책상 위에 올리면서 자고 있는 남자에게 잔소리를 시작했다. 갑자기 잔소리를 들은 남자는 급하게 일어나고는 소년에게 말을 걸었다.
"아아, 미안. 너무 졸렸던 거 있지? 오늘 같이 비 오는 날에는 따로 재즈 라디오를 틀지 않아도 잠이 솔솔…"
"제가 언제 그걸 물어봤어요? 의뢰가 쌓이고 있잖아요!"
소년은 남자가 답답하다는 듯이 책상을 쾅 때리고는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의 얼굴에 군데군데 못나게 난 수염이 보였다. 결국 소년은 한숨을 푹 쉬고 말았다.
"탐정님, 아니, 찰스 씨, 아시잖아요. 환물탐정협회Hallucination Eyen Association, HEA 규칙 제4장 3조! 최소 1년 안에 사건을 하나도 해결하지 못한 탐정은 강제 탈퇴 처리된다! 그런데 이제 겨울인데 여태껏 사건 하나 해결 못했잖아요."
"아이 참. 이봐, 제임스. 좀 진정해. 이제 해결할 거라고."
"해결요? 저번 9월에 수락한 의뢰를 11월이 되서도 해결하지 못하고! 그래서 의뢰 신청금 돌려달라고 의뢰인이 화내서 곤란했던 거 잊으셨어요?"
'으윽, 졸지에 현장직인 내가 왜 실무직한테 한 소리를 듣는 거람.'
찰스는 골치가 아파 머리를 매만졌다. 머리를 한동안 감지 않은 탓에 머리가 뻑뻑했다. 이따끔씩 하얀 가루도 떨어졌다. 제임스는 그런 찰스를 보고는 다시 한숨을 쉬고 말을 이어갔다.
"여기 이것들 그동안 쌓인 의뢰에요. 이 중에서 쉬운 거 하나 고르면 돼요."
"쳇, 왜 네가 고르는 건데. 알았어, 한 번 골라볼게."
찰스는 더 이상 제임스의 잔소리를 듣기 싫었기에 빗물에 젖은 편지를 찬찬히 둘러봤다. 집 나간 아내를 찾는다는 것도 보였고, 사라진 고양이를 찾아달라는 거랑 애들이 장난으로 적은 고민 편지도 보였다. 여기가 고민 상담소야? 나 참. 찰스는 그런 류의 의뢰 신청서들은 이미 꽉 찬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적당히 할 만한 의뢰를 찾으려고 했다. 그러던 중, 손에 집히는 편지가 하나 눈에 띄았다.
그 편지는 뭔가 인상부터가 달랐다. 사소한 문제나 장난 같이 쓴 것과는 달리 마치 진심을 담아 쓴 것 같았다. 탐정의 촉이었다. 내가 탐정이 된 이유가 있지, 바로 이 촉! 찰스는 거리낌 없이 편지를 집어들곤 봉투를 찣어 내용을 확인했다. 제임스는 찰스의 얼굴이 처음엔 좀 환했다가 점차 심각해지는 것을 보고는 편지의 내용이 매우 궁금해졌다. 찰스가 편지를 내려놓고 제임스는 재빨리 편지를 읽어봤다.
찰스 탐정님께
안녕하세요? 이름을 밝히지 못할 의뢰인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탐정님께 의뢰를 요청하는 것은 저의 사정에 관한 것이기에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부탁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카나르시에서 작은 주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평소 막노동에 지친 노동자나 할 일 없이 떠돌아다는 부랑자들이 들르는 곳이죠.
장사는 그럭저럭 잘 됐었지만, 요즘은 한 마피아 조직 때문에 장사를 접게 될 형편에 놓였습니다. 그들이 자릿세 같은 걸 요구하더군요.
저는 당연히 안 된다고 말했지만 갑자기 처음 보는 물건으로 주점 안을 박살내버렸습니다. 식탁이 날아다니고 술통이 이리저리 부딪히는 모습이 상상되시나요?
그러고는 1주일 내로 돈을 내지 않으면 뉴욕에서 쫒아낸다고 으름장까지 놓았습니다. 당장 돈도 없는데 어디서 2만 달러나 되는 돈을 마련합니까? 떠날 수 밖에요.
경찰에 신고하면 그들이 가족을 건드릴까봐 두렵고 하여 결국 믿고 맡길 수 있는 탐정님께 사건을 의뢰한 것입니다.
조직의 이름은 '다크 레이더스Dark Raders'입니다. 부디 그들이 제게 해를 끼치지 않게 해주시고 그 이상한 물건들에 대해 조사해주세요.
P.S. 만약 의뢰를 받아주신다면 카나르시 묘지Canarsie Cemetery에서 '아이작 클렌턴Issac Clenton'이란 자의 묘비 앞에 편지를 놓아주세요.
검은 바다Black Ocean
"음, 이 사건, 왠지 시카고 스피릿Chicago Spirit 같은 조직과 연루된 것 같은데요. 환물을 이용하는 거 같은데…"
제임스는 편지를 유심히 보다가 다시 책상에 내려놓곤 이렇게 말했다. 찰스는 오랫동안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시카고 스피릿? UIU에 작살나고 두령이란 놈은 재단에 잡힌 그 조직? 아마 거기 해체되고 남은 몇몇이 몇 안 되는 환물 챙기고 마피아 짓 하는 거겠지."
"근데 주점 내부를 완전히 흐집어놓았다는 걸 보면 매우 위험한 조직 같은데요."
"그래봤자 그냥 환물 조금 가진 놈들이야. 이름부터가 촌티 나지않아? 다크 레이더스라니, <배트맨>에도 안 나올 이름인데."
"탐정님, 이름으로 사람 구별하는 건 좋지 않다고 어머니가 그러셨어요."
"오, 제임스, 제발- 하…"
찰스는 제임스의 잔소리를 또다시 들어버리니 이제 뭐라할 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는 문득 뭔가를 알아챈 듯 의자에서 일어나 급히 코트를 입었다. 제임스는 갑자기 찰스가 왜 이러는지 몰라 그에게 물어봤다.
"탐정님? 어디 가세요?"
"브루클린이라고 했지? 그럼 거기서 박살난 주점 얘기하면 거기가 어딘지 바로 알 수 있을 거야."
"잠깐만, 그 '다크 레이더스'에 대해 파헤치시려고요? 그냥 쉬운 걸로 하시죠… 괜히 환물 다루는 애들 건드렸다가 필립 씨 때처럼- "
"생각해 봐, 제임스. 왜 환물을 쓰는 그런 위험한 조직을 조사해달라는 걸 나같은 사람에게 맡겼겠어? 검은 바다는 그 놈들이 이미 뛰어난 실력을 가진 탐정들의 신상을 알고 있으니 믿고 맡길 수 없다고 생각했겠지. 그러니 무명에 자기들과 사이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내게 맡긴 거 아니겠냐고."
찰스는 제임스의 반론에 미리 생각해낸 것처럼 말을 쏟아냈다. 오랜만에 의욕이 넘치는 찰스의 모습을 본 제임스는 참 감동스러워졌다. 찰스는 다시 생각을 하고는 말을 이어갔다.
"게다가 검은 바다는 일주일 안에 2만 달러를 내지 않으면 쫓겨난댔어. 난 그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사명이 있다고. 왜냐? 난 탐정이니까! 그리고 의뢰금도 받고, 하핫."
"탐정님답네요… 좋아요, 한 번 가보자고요. 일단 의뢰를 받는다고 알려야 하니 카나르시 묘지로 가죠."
"잠시만, 의뢰를 받아들인다는 편지를 쓰고 가야지. 얼마 안 걸려. 그동안 갈 준비해둬."
찰스가 편지를 빠르게 쓰는 동안, 제임스는 찰스와 외출에 나선 것이 꽤 오래된 일이었기에 신나기도 하며 약간 긴장되기도 했다. 얼마 후, 찰스는 편지를 다 썼다는 듯이 편지를 올려보고 흡족한 얼굴로 편지를 봉투에 놓고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제임스는 편지의 내용에 대해 궁금해졌다.
"자, 이제 가보자."
"뭐라고 쓰셨어요?"
"그건 못 알려주지. 그냥 의뢰를 받아들인다고만 적었어."
찰스는 오랜만에 입는 코트가 어색했지만 이내 고쳐입고 비 오는 길가로 나섰다. 아까에 비해 비는 조금씩 내려왔다. 찰스와 제임스는 길가에 나서 복잡한 뉴욕 길가로 나섰다. 수많은 사람들과 차들이 빠르게 지나가는 거리였다. 찰스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자, 이제 탐정 업무 시작이다."
둘은 카나르시 묘지로 향하였다. 그들의 발걸음이 그날따라 가벼우면서 무거워 보였다.
"시발, 이거 안 놔? 놓으라고, 새끼들아!"
"좀 닥쳐, 새끼야! 네 처지를 생각하고 말을 하시지?"
검은 코트의 남성 둘 중 하나가 양복 차림의 다른 남자를 어두운 창고의 찬 바닥에 무릎꿇게 하고는 소리쳤다. 양복의 남자는 몸부림쳐봤지만 손목과 발목에 묶인 줄 때문에 움직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는 결국 '그들'에게 붙잡힌 자신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이윽고, 창고에 녹슨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다소 왜소한 체격의 누군가가 중절모를 깊게 눌러쓴 채로 나타났다. 양복의 남자는 처음에는 그가 누군지 몰랐지만 그의 지팡이에 새겨진 문양을 보고 누구인지 알아챘다.
"뭐야, 이 새끼가 왜 여깄어..?"
"반갑습니다, 필립 워터슨 씨Mr. Phillip Waterson. 당신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군요. 그런데도, 제 얼굴을 아시나 봅니다?"
"당연히 알다마다. HEA 뉴욕 지부 사람들은 이미 너 새끼 얼굴은 다 안다고, 이 병신아!"
"오, 그렇군요. 그나저나 림슨 씨, 저 자는 어쩌다가 붙잡힌 것이죠?"
"이 놈이 창고에 숨어서 몰래 저희의 대화를 녹음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닉슨Nixon 같이 못 들었다고 발뺌하다가 녹음기가 들키고는 뻔뻔히 나오고 있습니다."
필립은 입맛 떨어지는 사실에 아무 대꾸를 하지 못하였다. HEA 회원우수상을 받았던 자신이었지만 이렇게 굴욕적인 취급에 놓인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찌 할 방법이 기억나지 않았다. 하물며 요새 잘나간다는 다크 레이더스에게 걸리다니.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필립 씨? 혹시 말하고 싶은 건 없나요?"
필립은 남자의 목소리에 소름이 끼쳤다. 새근새근하고 여기 있는 사람들 중 가장 친절히 말하는 것이었지만, 그 안에는 맹독을 품은 전갈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침을 저절로 삼켜지는 공포였다. 그 자신마저 왜 이렇게 두려워하는지 모를 정도였다.
"뭘 말해? 내가 말할 게 뭔지를 알고 그러는 거야?"
"글쎄요. 사실 저도 모르겠다만, 당신은 잘 알고 있으리라고 믿기에 이러는 것이죠."
남자는 친절해보이면서도 음흉한 미소를 보였다. 필립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말하고 싶은 거라니? 이 새끼들이 내게 뭘 원하는데? 내가 뭔 말을 하고픈 건지 나도 모르겠다고! 계속 생각해봤지만 떠올라지지 않았다.
"정말로 무엇인지 모르5분이 지나고, 남자는 한숨을 쉬고 지팡이를 휘두르며 두 남자들에게 명했다.
"음, 유감이네요. 하고 싶은 말이 없다면, 림슨 씨? 레인 씨? 이 자를 저기, 안 보이는 데로 끌고 가서 죽이세요."
"예, 옙."
"뭐? 잠깐, 잠깐, 시발놈들아! 뭘 하려는 거야? 이거 안 놔!"
"가만히 좀 있어! 시발, 그냥 다리부터 쏴서 존나 아프게 죽여야지."
필립의 팔을 붙잡은 남자가 필립을 구둣발로 바닥에 걷어차고는 다시 그를 끌고 갔다. 필립은 죽고 싶지 않다는 공포에 떨었다. 그 공포는 필립이라는 탐정으로서 느끼는 감정이 아닌, 생물의 근본적인 감정이었다. 시발시발시발시발안돼안돼안돼안돼- 점점 그의 시야에서 남자가 보이지 않게 되자, 결국 그는 입을 열었다.
"알았어, 말한다고 시발! 뭘 원하는데?"
"잠시만. 멈춰보세요."
남자는 지팡이와 함께 필립에게 걸어갔다. 남자는 그의 온 몸에는 땀이 맺혀있고 눈은 정신을 놓은 듯 퀭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남자는 더욱 큰 웃음을 지었다. 남자는 지팡이를 필립 앞에 세게 내리쳐 필립이 정신 차리게 한 다음, 질문 하나를 던졌다.
"찰스 J. 파커에 대해 아시나요?"
비가 산산히 오는 와중, 찰스와 제임스는 램센 가Remsen Avenue 인도를 따라 걷고 있었다. 카나르시 묘지는 분명 카나르시의 램센 가 옆에 있었다. 찰스는 주머니 안의 편지를 꽉 쥐고 우중충한 하늘을 바라봤다. 제임스는 긴장하면서도 이번 사건에 대해 기대하고 있었다. 만약 사건이 잘 해결된다면 마피아 조직을 소탕도 하고 HEA에서 우수회원상을 받을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제임스는 그런 행복한 상상을 하며 길가를 걸었다.
"아, 저기다. 카니르시 묘지, 맞네."
"꽤나 우중충하네요…"
겨울이라서 나뭇잎이 다 떨어진 나무들이 둘을 반기었다. 찰스는 그런 풍경에 꺼름칙하면서 관리소를 찾아다녔다. 관리소를 찾은 둘은 닫혀있는 창문을 두드렸고 피곤한 얼굴의 관리인을 창문을 열고 찰스에게 귀찮듯이 말하였다. 안 그래도 늙은 관리인이 얼굴을 찡그리니 더욱 늙고 못생겨 보였다.
"무슨 일로 오신 거죠? 누구 묘지를 찾으셔요?"
"아, 아이작 클렌턴이라는 사람 묘지를 찾는데, 가볼 수 있을까요?"
찰스는 관리인이 귀찮다고 창문을 닫을까봐 일부러 자신이 더 친절히 말했다. 관리인은 찰스의 말을 듣고는 무슨 문서들을 휘리릭 넘기더니 무언가를 찾아내 손가락으로 콕 집어냈다.
"여기요, C구역 4번째 줄에 오른쪽에서.. 하나, 둘, 셋, 넷, 다섯. 다섯번째입니다. 혹시 아이작 씨 가족이신가요?"
"가족은 아니고요, 제 형이 아이작 씨와 친구였거든요."
제임스가 찰스 대신 핑계를 대었다. 하지만 관리인은 그 말에 더욱 허름한 복장의 찰스를 의심스럽게 여기게 됐다.
"잠깐, 친구인데도 여기를 한 번도 안 오신 거에요?"
"그런 것까지 신경써서 뭐하시게요. 제임스, 빨리 가자."
"으, 응."
찰스는 관리인이 꼬치꼬치 캐묻는 것에 지쳐 급하게 제임스를 데리고 아이작 클렌턴의 묘지를 찾아 향했다. 관리인은 찰스가 수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창문을 닫고 커피를 조금 나신 후 잠을 청하였다. 아직 아침이라 묘지에는 찰스와 제임스 밖에 없었다. 시끄럽게 울어대는 까마귀 소리와 아까 관리인의 태도에 제임스는 기분이 나빴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사건을 해결한다는 생각에 신이 났다. 그는 묘지 중앙의 길을 달려가며 C구역을 찾아다녔고 마침내 '아이작 클렌턴'이라고 글자가 새겨진 묘비를 찾았다. 찰스는 신난 제임스를 달려가다 숨을 헐떡거리며 묘비에 새겨진 글자들을 읽었다.
R.I.P.
Issac Clenton
1946.4.7 ~ 1977.12.4
'작년에 죽은 사람이군. '검은 바다'와 상관 있는 사람이겠지. 가족이거나 친구, 동료일수도. 잠깐, 오늘이 12월 4일인데.'
찰스는 여러 번 묘지의 글자들을 읽느라 의뢰를 받아들인다는 편지를 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제임스도 잠시 잊었다가 다시 기억해내 찰스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 편지를 묘비 앞에 놓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음? 아아, 그렇지. 편지를 여기다가… 젖지 않게 할려면 이래야겠다. 근데 의외로 묘비는 많이 안 젖어있네. 비 온지 한참 됐는데"
"그러게요. 아, 거기 두면 되지 않을까요?"
찰스는 너무 세게 쥐어 구겨져버린 편지를 주머니에서 꺼내 묘지 앞에 두었다. 젖지 않도록 묘비 앞에 바싹 붙이게 놓았다. 그 후 둘은 묘비 앞에서 일어나 본격적으로 사건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카나르시 인근을 돌 계획을 세웠다. 일단 카나르시에서 박살났다는 주점 얘기를 들어보고 거기로 가 남아있는 흔적을 조사할 것이었다. 그 후 동료들을 모아 본거지를 박살내거나 UIU에 속한 친구를 통해 거기를 습격하게 하거나 하면 되었다. 그럼 찰스는 사건을 해결하고 '검은 바다'는 2만 달러를 낼 필요가 없어지고, 말 그대로 윈-읜Win-Win이었다.
그렇게 그들이 묘지에서 떠나려고 하기 전에 제임스는 편지가 잘 있을 지 불안해서 한 번 묘지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편지가 없어져 있었다. 제임스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묘지로 달려가봤다. 편지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디.
"타, 탐정님! 여기, 여기 있던 편지가 사라졌어요."
"뭐? 사라져? 이상하다, 분명 여기 놓았었는데. 바람에 날려갔나?"
"근데 비만 오지, 바람은 불지 않고 있잖아요. 게다가 여기에는 우리 밖에 없는데…"
찰스와 제임스는 알 수 없는 일에 놀라워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편지는 보이지 않았다. 찰스는 이에 이상하다고만 여기던 중, 무언가를 떠올랐다.
"음… 이런 거 아닐까?"
"어, 탐정님? 뭐하시는 거에요?"
"이거 환물이야, 내 촉으로 알 수 있어."
"무슨 소리에요? 촉으로만 알아낸 거에요?"
"추리도 한 40%정도 해서 알아낸 거야. 이 '검은 바다'는 편지를 이 묘비에 놓으라고 했어. 하지만 만약 그와 내가 엇갈리거나 '다크 레이더스'가 편지의 존재를 알아채면? 나였으면 어디 쓰레기통 같이 비밀스러운 데에다가 놓으라고 할 거야. 하지만 그 자는 이 개방된 곳에 놓으라고 했어. 그러니 무슨 이유가 있는 거겠지!"
제임스는 찰스의 말에 의아했다. 이 평범해 보이는 묘지가 환물이라니, 무슨 생각이신거지?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며 찰스의 알 수 없는 행동에 놀라워했다. 그가 갑자기 묘비 위로 발을 놓았기 때문이다.
"어어, 탐정님! 아무리 이게 환물이라고 해도, 갑자기 남의 묘비에 발을 올리는 건 아니죠!"
"제임스, 잠자코 한 번 봐봐! 이제 내가 어떻게 될-"
"탐정님?"
제임스는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찰스가 사라졌다. 마치 아까 그 편지처럼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제임스는 이에 대해 어쩔 줄 몰라했다.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제임스는 방법을 떠올랐다. '묘비에 발을 올린다.' 아까 찰스가 했던 행동을 따라해보면 찰스가 가버린 곳으로 이동되지 않을까 싶었다. 아마 이 환물은 자신 위로 올려진 것을 이동시키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됐다. 제임스는 심호흡을 하고 보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한 다음, 묘지에 발을 올렸다. 30초 정도가 흐르고, 제임스는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자 뭔가 불안해졌다. 이게 정말 환물인 걸- 제임스는 순간 정신을 잃고 말았다.
제임스가 다시 눈을 뜬 곳은 처음 보는 방 안이었다. 그는 잠시 둘러보았지만 딱히 보이는 특징은 없었다. 평범한 방이었다. 자신이 왜 처음 보는 곳에 있는 건지 영문조차 몰랐다. 제임스는 잠시후 약간의 두통을 느끼며 한 철제 침대에서 일어났다. 일어날 때 난 삐그덕거리는 소리에, 방 너머로 이어지는 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제임스는 그 소리에 놀라며 문에서 멀어졌다.
'누, 누구지? 설마 납치범? 아냐, 아냐. 납치범이라면 진즉 어디에 팔아버리거나 어두운 곳에 가두지, 이런 안락한 방에 둘 리가 없다고.'
발소리가 커질수록 제임스의 심장소리도 커져왔다. 문고리가 돌아가며 문이 열릴 때엔 숨을 헐떡거려도 심장 박동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눈을 질끔 감고 뭔가 잡히는 거라도 던지려고 할 때, 들려오는 목소리는 뜻밖이었다.
"제임스? 일어났어?"
"탐정님? 왜 탐정님이 여기에?"
"아아, 깨어났구나. 반갑다. 일단 출출할 건데 이거라도 먹으렴."
은발의 한 노인이 찰스 뒤로 나타나며 제임스에게 따뜻한 우유와 딸기잼이 발라진 식빵을 건네줬다. 빵은 갓 만든 건지 따뜻했다. 제임스는 모르는 노인이 찰스와 친근히 대화하고 자신에게 빵을 가져다준 것이 왜인지 궁금했다.
"저… 감사한데요, 당신은 누구세요?"
"아, 소개를 안 했구나. 내가 그 아이작 클렌턴이다."
"네? 자, 잠시만, 묘비에는 분명 작년에 돌아가셨다면서요?
"그게 좀 사정이 있었지."
노인은 머리를 쓸어넘기며 웃어넘겼다. 찰스가 대신 말을 이어갔다.
"아이작 씨는 HEA 사업부에서 활동하셔. 주로
코미디콘서트 301화 <격리의 달인> 대본
(무대에서 남태인, 김정만, 고우진이 나온다)
남태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격리의 달인>의 남태인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16년 동안 실패 없는 격리만을 해오신 격리의 달인 김병만 선생님을 모셔왔습니다. 반갑습니다.
김정만: 아유, 반갑습니다.
남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