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벨을 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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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벨과 벨 허브 > 카우벨을 치는 방법

카우벨을 본 적이 있는가?

카우벨은 단순한 악기다. 그 이름처럼, 소 목에 걸어두던 종에서 비롯된 악기다. 겨우 납작한 종에 불과한 그 둔탁한 소리, 그러나 아는가? 그 카우벨에서 얼마나 다양한 소리가 날 수 있는지.
뭉툭한 말렛으로 때려 맑은 소리를 낼 수도 있고, 드럼 스틱으로 쳐 가볍게 울리는 타악기다운 소리가 나기도 하며, 속을 천으로 막아 무거운 소리를 낼 수도 있다.

그 한 가지 모양의 악기에서, 치는 각도에 따라, 세기에 따라, 방향에 따라, 무엇으로 치느냐에 따라, 어떤 상태에 있는 카우벨을 치느냐에 따라 수백 가지의 다른 소리를 낼 수 있다.

사람도 그렇다.
날 때 어떻게 난 사람이건 간에, 주변 환경이 다르게 친다면 그 사람이 내는 소리 또한 변한다.
얼마나 좋은 카우벨일지라도, 소 목에 메인 종이라도 된듯한 시끄럽고 귀가 아픈 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평범하기 그지없는 카우벨에서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될법한 맑은울림이 나기도 한다.

어리던 내가 기억하는 내 인생에서는 언제나 쨍쨍 대는 귀가 아픈 소리만이 울려왔다.
아프고, 고달프며, 춥고 배고프던 그 인생의 쨍쨍거리는 귀가 아픈 소리.

그러던 나날들이 가끔이나마 맑게 울리기 시작한 것은 언제였을까.


언젠가의 흐릿한 기억 속에서 한 악단을 만났다.
그들은 친절하지도 않았고 연주하는 음악이 출중하지도 않았지만, 그들의 음악은 어린 내 기억 속에 남았다. 그 시절의 내가 처음 들은 음악은 말하자면 처음 맛본 단맛이었다. 설탕이나 사탕을 맛본 것도 아니고 그저 사탕 포장지를 핥았을 뿐이었지만, 그조차도 나에게는 생소한 행복이었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흉하게 우그러진 카우벨 하나가 남아 있었고, 그게 카우벨이라는 것 또한 알게 된 것은 한참 후였다. 그러나 그 악기는, 최소한 내가 그렇게 믿으며 치는 동안 수많은 소리를 내주었고, 단 한 번도 같은 소리를 낸 적 또한 없었다.

흉하게 우그러졌을지언정, 색은 다 벗겨지고 여기저기 흠집이 있을지언정, 어느 날은 맑은 소리를 내주고는 했다. 내게 집이라고 부를만한 것은 없을지언정, 내 물건이라고 부를 만한 단 하나는 그 카우벨이었다.

어느 때는 남의 마구간을 청소해주고 몇 푼 안 되는 돈을 벌었었고, 어느 때는 누군가의 지갑을 훔쳐서 한 끼 한 끼를 먹으며 연명하기도 했었다. 그저 살기 위한 그 단조로운 날들은 시체나 다름없었지만, 그런 나에게 숨을 불어넣어 준 것은 그 볼품없는 카우벨이었다.

밤이건 낮이건 그걸 치면 쫓겨나거나 혼나고는 했다. 가끔은 맞기도 했었으므로, 나는 마을 밖, 숲 깊은 곳에서 내 멋대로 연주를 하고는 했었다.

칠 때마다 다른 소리가 났고, 돌로도 치고, 나무 막대기로도 치고, 때로는 내 손바닥으로 쳐가면서 그렇게 나날을 보냈다. 맑은소리, 색다른 소리를 내려 노력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후로부터, 카우벨이 내는 소리는 조금 더 맑아졌다.

내가 커가며, 나날들은 여전히 그러했다.
낮에는 일거리를 찾아 돌아다니고, 저녁에는 먹을 것 한 줌을 찾아 돌아다니고, 밤이 되면 깊은 숲에서 카우벨을 치다 잠이 들기도 했다.

어느 날은 끔찍한 불협화음처럼 나를 괴롭혔고, 어느 날은 잔잔한 멜로디처럼 나를 즐겁게 했다.
그런데도 하루하루의 마무리는 행복했다.


어느 날, 악보에서 전조가 일어나듯이 그 일이 일어났다.

마을이 어수선했고, 새들은 그를 알기라도 하듯이 저 높이서 지켜볼 뿐이었다. 호기심에 인파 틈을 기웃거리며 본 것은, 어느 반짝반짝한 카우벨이었다.

아니, 그 반짝이는 카우벨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거기 있는 것은 여러 악기였다.
카우벨, 키보드, 바이올린, 트럼펫, 드럼 등등의 여러 악기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악기들을 위한 말렛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그것들의 명칭조차 알지 못하였지만, 직감이었을까, 그것들이 음악을 위한 것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언제쯤 거기에 도달했는지도 모른다.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홀린 듯이 말렛 하나를 집어 들어,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 각도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웅장한 소리를 내는 힘으로, 내 카우벨을 치고 있었다.

사실 그 이후의 기억은 그렇게 많이 남아있지 않다. 그저, 같이 연주하게 되었고, 나는 문득 울고 있었다.

내가, 아니 우리가 연주하는 소리는 더 깊게 울렸으며, 내 카우벨뿐만 아니라 다른 악기들 또한 점점 더 반짝거렸다.
맑은 소리, 깊은 소리, 사이사이에 중심을 잡는 소리, 그리고 그 모든 소리가 어우러져서 하나의 음악이 될 즈음에, 내 심장 속에서는 가슴 벅찬 감정이 찌르르르 울리고 고동과 함께 울리고 있었다.

찌르르르 쿵
찌르르르 쿵
찌르르르 쿵

꼭 내가 음악이라도 된 듯이, 아니 악기라도 된 듯이.


한참을 연주하다가 결국 해가 지고, 공연은 끝이 났다. 그때, 처음에 말을 걸어왔던 그 동양인 여성분이 내게 다시 말을 걸어왔다.

"내 이름은 쑨메이샨이야. 어렵지? 대부분 메이라고 부르니까 너도 그렇게 불러도 돼.
음…. 혹시 우리랑 같이 가지 않을래?"


"음…. 그럼 여기서 하나 짓지 뭐.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던 카우벨에서 따서…. 벨…. 벨라트릭스는 어때?"

나는 한낮의 떡갈나무 유랑극단 소속의 새 둥지 가지의 꿈속여행 잎의 예비 단원.

우리는 함께 여행했고, 함께 길을 걸었다. 모나, 캐시, 한, 제이콥, 메이, 그리고 나까지. 우리는 모두 같이 유랑했고 같이 연주했으며, 같이 살아나갔다.


메이는 나에게 악보를 읽는 법을 알려주었다. 말렛을 잡는 방법, 카우벨 외에 다른 악기를 다루는 방법들도 알려주었다.

아니 사실은 메이가 알려준 건 음악뿐만이 아니었다.
메이가 알려준 건, 살아가는 법이었다. 사람 사이에서 사는 법. 나 자신의 가치를 채우는 법. 타인을 인정하는 법.

그리고 어쩌면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까지도.

사람으로서도 비어있던 나는 조금씩 조금씩 채워져 나갔다. 동시에 나 또한 이 잎의 일부로 우리를 채워 나갔다.


한은 우리 중에 나이가 두 번째로 많았다. 듣기로는 꿈속 여행 잎이 처음 유럽으로 건너올 때는 메이와 한 뿐이었다고 한다. 그 시절, 아직 떡갈나무의 날도 겪어보지 않은 내게는 우리가 다니는 마을 이상으로 상상하기도 벅찼다.

"유럽이 그렇게 커?"

"그럼, 벨이 있던 마을은 만개를 합쳐도 턱도 없지"

"에에? 그건 말도 안 돼! 한이 지금 나 놀리는 거지?"

진지하게 답해주던 한이 피식 웃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농담이라고 확신하면서 메이에게 달려갔다.

"메이, 메이! 한이 나 놀려! 내가 있던 마을 만 개를 합쳐도 유럽이 안될 정도로 크대! 거짓말이지?"

메이가 달려오는 나를 폭 안아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언제나 따뜻한 품이고, 언제나 부드러운 쓰다듬음이었다.

"벨, 세상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크단다."

한이 맞았다는 생각에 부끄러움과 작은 짜증이 겹친 나는 메이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삐진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메이는 내 머리를 다시 쓰다듬었다.

"세상이 크다는 건 그만큼 우리가 연주하며 여행할 곳도 많다는 이야기란다. 놀랍지 않니?"

난 메이의 말을 듣고는 메이를 올려다보았다. 조금 생각해 보니까 메이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할 곳도 많고 연주할 곳도 많다면, 우리가 같이 다닐 곳도 많을 테니까.

같이 다닐 데가 많다고 생각하며 잠시 마음을 놓던 그 순간, 뇌리 한편으로 흘러간 의문점이 있었다.

'만약 메이와 더 이상 여행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 생각을 애써 다른 곳으로 흘려보내며, 우리는 같이 은하수를 올려다보았다.


어느 날 밤, 악몽을 꿨었다. 어린 시절 흔히도 꾸는 악몽이었을 것이다.
내게는, 처음이었지만.

꿈에서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곳은 어느 숲 한편이었다. 옆에는 내가 한 몸처럼 가지고 다니던 카우벨이 있었다. 아주, 아주 낡은 카우벨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아무도 없었다.

차가운 카우벨을 집어 들었고, 숲속을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언제나와 같았다. 그래 언제나와 같았다. 한 끼의 먹을 것을 찾아 떠돌고, 하루의 잠잘 자리를 찾아서 숲 깊이 들어가, 그다음 날을 반복하던.

달콤한 맛은 사라져 있었다. 입안은 다시 무미건조하였고, 언제나와 같은 그 단조로움만이 나를 괴롭혔다.

그렇게 하루가 흐르고, 이틀이 흘렀다. 며칠이 흘렀는지 모르겠을 그 무렵, 나는 결국 주저앉았다. 눈물을 펑펑 쏟으며 메이를 찾아 울고 있을 무렵,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메이가 나를 품에 꼭 끌어안고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벤 나 여기 있어. 괜찮아, 괜찮아."
현실로 돌아온 나는 그저 울기만 했다.

메이의 품속, 메이의 목소리, 메이의 살냄새, 메이의 그 다독거림.
나는 거기 있었다.


그 꿈이 마지막 악몽은 아니었다. 그 후로도 나는 종종 그런 악몽을 꿨고, 그때마다 메이는 나를 악몽 속에서 끄집어내어 온기 속에 놓아주었다.

그러한 꿈도 조금씩 조금씩 줄어나갔다.


내가 처음으로 마주한 떡갈나무의 날, 메이의 손을 잡고 넓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잠시 메이의 뒤에 숨기도 잠시, 곧 그들의 음악에 마음을 놓게 되었다.

수백 명의 단원이 각자의 재능을 펼쳤고,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였다. 나는 저 많은 사람을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정말 세상이 넓구나" 나는 문득 생각했다.

떡갈나무의 날이 끝날 때 즈음, 나는 예비 단원이 아닌 정식 단원으로 인정받았고, 예술 감독님이신 예조프 님은 나에게 변칙적인 능력이 있음을 알려주셨다.

"너는 악기를 발전시키는 능력이 있구나. 더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게, 더 분명하고 멀리 퍼질 수 있게. 조금씩인 것처럼 보여도 결국 그 악기의 최선을 끌어내는 거란다. 그 카우벨은 너와 대단히 많은 시간을 공유했겠구나."

감독님도 내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는 "고생했다"라고 나직하게 말했다.

사실 그렇게 잘 이해하지는 못했다. 내 재능을 온전히 이해하게 된 것은 몇 년이 지나서였다. 그러나 그것이 칭찬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였기에, 나는 메이에게 달려가 자랑했다.

나를 품에 안은 채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메이의 손길이 제일 좋았다. 그 미소가, 그 포옹이, 제일 좋았다. 언제까지라도 그러리라 생각했었다.

나는 한낮의 떡갈나무 유랑극단 소속의 새 둥지 가지의 꿈속여행 잎의 단원.
벨라트리스, 벨이다.


나는 한낮의 떡갈나무 유랑극단 소속의 새 둥지 가지의 딱따구리 잎의 리더이자 혼자뿐인 단원.

메이가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지났다.

단원들과 일상을 영유하며 떠돌기에는 메이의 빈자리가 너무 컸다. 나만 그러했던 것은 아니겠지만, 메이를 부모처럼 생각하던 나에게는 더더욱 큰일이었다. 결국 나는 꿈속 여행 잎에 남지 못하고 자신만의 잎을 만들었다. 그렇게 홀로 세상을 떠돌며 카우벨을 치며 곡을 연주했다.

처음에는 카우벨 하나만 가지고는 음악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단원들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특히 메이의 트럼펫 소리가 그리웠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카우벨로 음악을 완성하는 데 집중했다.

하나의 카우벨로는 음악이 안 된다면 둘로, 둘로도 안된다면 셋으로, 셋으로도 안된다면 다섯으로. 그렇게 나는 13개의 카우벨을 연주하며 세상을 떠돌았다. 13개의 카우벨로 음악을 만들 수는 있었다. 그러나 내가 바라던 음악은 연주할 수 없었다.

우리가 함께 연주하던 음악이 그립고 메이가 그리웠지만, 나는 삶을 살았고, 음악을 연주했으며, 카우벨을 쳤다. 내 머리를 쓰다듬던 그 손은 사라졌지만 나는 여전히 음악을 연주했다.

떠돌고 떠돌며, 밤하늘 아래에서, 일출 앞에서, 노을 속에서, 그렇게 연주했다.
내가 결국 카우벨로만 연주하는 음악은 함께 연주하던 음악처럼 다채롭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할 때까지, 내 음악에는 부족한 게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까지.

내 음악은 음악이라 부를 수 없었다. 결국 나는 혼자였다. 그 꿈속의 나처럼, 결국 혼자일 뿐이었다.
메이가 필요했다.

악몽 같았다. 끝없이 홀로 떠돌지만, 나를 여기서 꺼내 줄 메이는 없었다.


내가 속에서 곪아 나가고 깨어져 나갔듯이 카우벨도 깨어져 나갔다. 마지막 카우벨은 그때처럼 반짝이고 있지 않았다, 언젠가처럼 흉하게 우그러지고 칠이 벗겨져 있었다.

메이를 찾아 헤매었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난 메이를 부르며 울었다.


지루하고 평화로운 삶, 아무것도 없는 삶, 텅 빈 삶. 그 삶을 살아가던 나에게 어느 날 음악이 찾아왔다.
음악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서투른 소리지만, 그 소리에는 즐거움이 담겨 있었다.

홀린 듯 소리를 쫓아간 그곳에는 어린아이 하나가 피리를 잡고 끙끙대며 연주하고 있었다.

나를 발견하고서는 놀랜 듯이 허겁지겁 일어나서 도망가려던 아이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바라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말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꼬마야, 피리 부는 법 알려줄까?"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 내 갈라진 목소리가 꼬마를 붙잡고 있었다.
그때의 나도 저런 표정이었을까.


나는 그렇게 또 살아갔다.
다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같이.

꼬마가 스스로를 루첼이라 소개하고, 내가 나 스스로를 벨이라 소개할 때 나는 놀라지 않았다.

나는 벨이었으니까.

카우벨을 사랑하고 음악을 사랑하던 벨이었으니까.
그리고 벨이니까.

메이가 없을지언정, 그래도 나는 벨이었다.


카우벨은 좋은 악기다. 좋은 악기고 훌륭한 악기다.

그러나 다른 모든 악기가 그렇듯이 홀로 연주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많은 카우벨이 모이더라도, 하나의 피리만도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두가 모인 자리라면, 그 각양각색으로 낼 수 있는 소리가 예쁘게 울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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