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SCP 관련 아이디어만 모아둘 것 같습니다.
우주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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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에서 관측된 SCP-???-K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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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번호: SCP-???-KO
등급: 유클리드(Euclid)
특수 격리 절차: SCP-???-KO은 현재로서 그 자체를 물리적으로 감금할 방법이 없다. 대상을 확보할 가능성을 감안하여 언제라도 격리시설을 설치할 준비를 해야 한다. 대상의 위치를 절대로 놓치기 않기 위해 24시간 내내 세계 각지의 초거대 망원경이 사용되고 있다. 대상의 모든 움직임은 기록되며, 대상에 대한 모든 기록은 민간인에게 전해져선 안 된다. 이를 위해 초거대 망원경이 위치해 있는 곳엔 항상 해당 지식이 있는 연구원들과 요원들을 배치하고, 민간인이 대상과 접촉한 경우 A급 기억 소거를 행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대상을 관측할 가능성이 있는 각종 매체의 사용은 모두 재단의 관리 하에 이뤄저야만 한다. 대상이 기존의 움직임과 다른 움직임을 뵐 경우 그 즉시 재단에 연락을 취해야 한다.
설명: SCP-???-KO는 태양계로부터 약 26,000광년 이상 떨어진 우주 공간에 위치한 무수한 생물들의 군집이다. 대상은 태양계를 중심으로 우주 공간을 이동한다. 대상을 이루고 있는 생물들은 SCP-???-KO-1로 칭하며, 최소 100m 단위에서부터 최대 약 1억km의 다양한 크기를 지니고 있다. SCP-???-KO-1은 거대한 암석, 혜성, 갑각류, 연체동물 등의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으며, 외형적으로는 그 공통점을 찾기 힘들지만 모두 가히 항성에 가까울 정도의 빛을 내뿜고 있다는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대상을 생물들의 군집이라 칭하게 된 계기는 대상의 관측 도중 SCP-???-KO-1 간의 생식 활동이 포착되었던 것이다.
SCP-???-KO를 관측한 결과, SCP-???-KO-1은 서로를 잡아먹거나 증식하여 그 개체 수를 일정하게 유지한다고 추측된다. 대상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SCP-???-KO-1 간의 포식으로서 발생하는 에너지의 산화로 보이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열기에 대해 어떻게 저항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와 함께 분명 흡수한 뒤 열을 발산한 대상이 어떻게 별다른 에너지의 순환 없이 자신과 같은 흡사한 형태의 개체를 증식시키는가, 마찬가지로 대상이 어떻게 우주 공간에서 생존할 수 있는 지와 어떻게 우주 공간을 이동하는 지도 밝혀내지 못했다. 허나 대상은 태양계를 중심으로 서로를 소모하는 생식 활동을 반복하며, 은하의 회전 속도에 맞춰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은 긴 관측 기간 내에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다.
SCP-???-KO에 대한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기에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여 대상과의 대화를 시도해봤으나, 별다른 소득은 얻을 수 없었다.
SCP-???-KO는 본래 단순한 은하수로서 관측되었지만, 20██년에 발명된 초거대 망원경을 이용한 재단의 우주 관측에서 대상의 구성을 파악했다. 그 이후 대상은 상시 재단의 관측 하에 두어졌고, 해당 초거대 망원경은 재단의 관리 하에서만 사용되도록 세계 각지에 보급되었다.
부록: 요원 노트
우주가 검은 색이 아니였다. ㅡ ███ 요원
아마 SCP와는 전혀 상관없는 소설이나 이야기를 모아둘 것 같습니다.
이런 풍경을 상상해보자. 하늘을 올려다보면 별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다. 대도시의 모든 전력이 최대로 돌아가는 바람에 별빛이 우리가 서있는 곳까지 미치지 못한다. 발전되고 또 발전된 온갖 광원들이 현란하기 짝이 없는 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자의 눈을 찌른다. 덕분에 하늘에서 보이는 것은 위성 궤도에 떠있는 인공위성에 반사된 빛 뿐.
의외로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흔히 상상할 수 있고,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거기에 요즘 이정도로 발전되지 않은 곳이 오히려 더 드물다. 그렇기에 너무나도 익숙할 수밖에 없는 풍경. 하지만 여기에 하나의 요소를 더하자면, 아니, 제거하면 어떨까.
이만한 대도시에, 단 한명의 사람도 없다면? 도시의 어느 한 부분도 이상이라곤 없는데, 모두가 완벽한 새것이고 사람이 있었던 흔적조차 없다면? 완전히 새로운 유령도시와도 같은 이 광경을 본다면, 보통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할까. 이 풍경이 지닌 괴기스러움을 보고 공포를 느낄 수도 있고 두려움, 신비함, 호기심을 느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도로 한가운데에 서있는 내 시선의 끝에 한 가지를 더해보자. 끝이 보이지 않아 지평선의 일부가 된 도로에서, 갑작스레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난다.
얼핏 보면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그림자의 몸은 여기저기에 각이 져있었기에 우선 의심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 사람은 발에 바퀴도 달려있지 않으며 눈에서 소름끼치는 붉은 빛을 내뿜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 크기부터, 사람으로선 불가능한 크기다. 매우 멀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크기는 그림자의 옆에 있는 가로등으로 가늠할 수 있었다. 가로등은 그 그림자의 고작 허리까지 밖에 다다르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나 대치하고 있었을까. 그림자는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묵직한 발소리를 내며 점점 다가오는 그림자의 모습이 점점 뚜렷하게 보인다. 검은 색의 금속 재질로 된 표면이 주변 빛을 반사하고, 움직임 하나하나에 기계음이 삽입되어 있다. 표면이 아닌 각 관절 부위는 인간과 흡사한 움직임을 위한 기계 장치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 모든 것을 비추는 시야에, ENEMY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 단어는 다가오는 거대한 인간형 기계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내 눈이 향하고 있는 곳은 거대한 화면이었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그곳엔 현재 상태를 가르쳐주는 각종 계기판과 크고 작은 불빛이 있었다. 좌우엔 몸을 움직이기 위한 지시를 보다 편하고 다양하게 내릴 수 있는 버튼들이 위치해 있었고, 양손은 내가 앉아있는 좌석에서부터 올라와 있는 막대 모양의 조종간을 각각 하나씩 잡고 있다. 조종간은 손이 쥐기 편한 디자인이었고, 각종 버튼들이 붙어있다.
모든 것을 다시 확인한 내가 지금 있는 곳은, 다가오는 거대한 기계와 매우 흡사한 모양새의 기계 안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조종석이라고 할 수 있으며 지금까지 내가 본 모든 것은 카메라를 통해 조종석 내부의 화면이 보여준 것이었다.
“종류는 HM 계열…, 고속 기동형인가.”
물론 화면은 저 기계가 나의 적이라는 것만 말해줄 뿐, 그 종류와 특징을 가르쳐주진 않는다. 이 정도는 이쪽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지식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할 일은 저 기계를 상대하는 것이다.
Machinery. 머시너리. 말 그대로 큰 기계라는 것이지만 현재는 일반적인 기계들을 머신, 저것과 같이 흔히 군용으로 이용되는 것들을 머시너리라 칭한다. 그 종류는 상당히 많은데, 각각의 계열을 코드로 나누어 그 종류를 나열한다. 그 수는 현재 50가지는 넘긴다.
예를 들어 눈앞의 기계는 전체적으로 얇고 가늘게 제작되었으며, 그 무게가 가벼운 대신 이동 계통을 특히나 강화시킨 부류다. 덕분에 무기나 특이한 기능 같은 옵션은 선택의 폭이 좁다는 흠이 있지만 이곳과 같은 시가지에서 벌여지는 전투에선 애용되는 머시너리다. 반대로 내가 탑승한 머시너리는 범용성이 가장 높은 AN 계열, 범용 기본형이다.
“아차, 집중해야지.”
어느새 검은 머시너리가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구체적으론 약 50미터 정도의 거리에서 그것의 다리에 변화가 나타났다. 자동차의 바퀴와도 같은 것들이 발바닥에 구성되고, 마치 시동을 걸 듯 하나씩 따로따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몸을 숙여 마치 육상선수의 출발 자세와 같은 자세를 취한다. 그 움직임을 보고 내가 뭔가 하기 전, 바퀴 부분과 지면의 마찰음이 들리며 빠른 속도로 내게 달려들었다. 어느새 그 손에는 작은 검과 같은 무장이 들려 있었다. 그것을 움직이는 속도에 더해 빠르게 찌르기를 시도한다.
본래라면 그것은 내가 있는 흉부의 조종석을 꿰뚫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잡다한 생각을 하고 있던 만큼, 나의 실력은 이정도 공격에 당할 정도는 아니다.
“흣차.”
가볍게 조종간을 뒤로 당기며 조작을 가했다. 그러자 조종석에 있음을 체감시켜주는 묵직함이 느껴졌고, 기계음이 들려오며 거대한 기계가 움직였다. 정확히 찔러 들어온 검의 끝에 닿을 정도로 뒤로 후퇴하였고, 이정도로 정확한 거리 계산은 상대의 움직임에 허점을 만들기 충분했다. 연이어 조종간을 움직이자 오른 발이 먼저 앞으로 뻗어지며 지면에 닿는 충격, 오른 무릎에 해당하는 관절 파츠에 하중이 가해진다. 거기에 조종간의 버튼을 조작하자 접힌 무릎이 펴지며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간다. 그와 동시에 행해진 또 다른 조작으로 이미 오른팔이 한계까지 뒤로 당겨져 있었다. 왼발이 지면에 닿아 그 충격이 조종석까지 다다르는 순간, 뒤로 당겨져 있던 오른팔은 정면의 머시너리의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을 강하게 후려친다.
아직까지 앞으로 다가오던 관성을 떨쳐내지 못한 상대는 그대로 머리가 박살난다. 물론 머시너리에게서 머리는 조종석에서 보이는 화면의 가장 큰 부분, 즉 메인카메라가 담겨져 있을 뿐이지만 갑작스러운 시야 차단은 전투에서 승패를 좌우한다.
머리가 사라진 머시너리는 흉부에 위치한 서브카메라에 의지하여 뒤로 후퇴하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양다리를 스프링으로 삼아 앞으로 점프한 나로 인해 저지되었다. 어깨에 머리를 밀착시킨 뒤, 그대로 날아올라 상대의 흉부에 처박는다. 그 충격과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상대는 가볍고 약한 몸체이기에 그대로 그 등이 지면에 닿으며 쓰러진다.
충돌로 인한 충격은 물론 내 메인카메라에도 영향을 끼쳤지만, 상대와 같이 갑작스런 시각 상실이 아니기에 미리 대비를 해놓았다. 진작 서브카메라로 전환되어 있던 내 시야에 의지하여 쓰러진 상대의 위에 주저앉는다. 역시나 이번에도 무게에 짓눌려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대는 발악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오른손에 들린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도 조종석이 위치한 흉부를 향해 휘둘러지는 검은 역시나 이번에도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하였다. 이미 그 손은 나에게 붙잡혀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내 손은 물론 두 개다. 남은 오른손을 위로 크게 치켜세우고, 상대가 나와 마찬가지로 다른 손을 이용하여 방어하기 전에 내려찍는다.
강한 충격음이 들려오고 작은 폭발음이 연이어 들려왔다. 화면으로 확인해보니, 내려찍은 손은 상대의 흉부를 으스러트리고 중앙에 위치한 동력원에 까지 영향을 준 것이 보였다. 더 이상의 움직임은 없을 거라 생각한 동시에 화면에 변화가 생긴다. 본래 상대를 가리키던 표식은 적을 뜻하는 것이었지만 어느새 그것은 DOWN, 침묵되었다는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걸로 끝날 거라 생각한 순간, 후방을 비춰주는 화면에 새로운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직전에 상대를 쓰러트렸기에 잠깐이지만 방심할 수밖에 없었던 나는 그것에 당황하여 급하게 몸을 틀었다. 그러자 뭔가가 뒤에서부터 반짝였고, 그 순간 방금까지 조종석이 있었던 자리에 몇 줄기의 빛이 스쳐지나갔다. 몸을 비틀어 조종석에 직격하는 것은 피할 수 있었지만 완벽한 회피는 아니었다. 그 증거로 오른 어깨에 해당하는 부분에 아무런 조작도 먹히지 않았다. 탑승한 머시너리의 상태를 보여주는 화면을 보니 어깨 관절 부위를 뭔가가 관통한 것이 확인되었다.
갑작스럽게 위기감을 느꼈기에 건물과 건물 사이로 이동하였다. 모양새는 기어가는 것에 가까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골목에 몸을 숨긴 뒤, 어깨를 관통할 만한 뭔가가 날아온 쪽을 바라보았다. 때마침 복구된 메인 카메라의 줌인 기능을 사용하여 상대의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다.
“SS…, 근거리 사격형이라고?!”
아까의 머시너리와 겉은 비슷했지만, 새로 나타난 상대의 발에는 아까의 머시너리와는 다르게 바퀴가 아닌 캐터필러가 달려있었다. 거기에 손에는 베거나 찌르기 위한 도구가 아닌, 뭔가를 쏴 맞추기 위한 도구가 쥐어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메인 카메라부분에 좀 더 정확한 사격을 위한 보조 장치가 달려있다. 말하자면 머시너리 계에선 보병에 가까운 역할을 맡고 있는 녀석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도중 상대도 내가 머리를 빼 지켜보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인지, 곧바로 총구를 내게 향한 뒤 방아쇠를 당겼다. 그와 동시에 뭔가 여러 번 번쩍이곤 빠른 속도로 뭔가가 날아왔다.
“위험…!”
아슬아슬하게 머리를 집어넣어 상대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선 별다른 방법이 없다. 기본적으로 주먹이든 검이든 총에겐 이길 수 없는 것이 보통이다. 거기다가 이런 커다란 기계에 타게 되면 그 총의 위력은 이미 궤를 달리 한다. 하나의 대포나 다름없는 총을 저렇게 무자비하게 쏴대다니….
“어떻게 한다.”
이대로 도망친다는 방안도 생각해 봤으나, 그러면 이 일의 의미가 없다. 지금으로선 상대를 쓰러트린다는 쪽으로 생각을 해야 된다는 다짐 아닌 다짐을 하고, 이 상황을 타파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내 주위엔 조종석이 파괴된 상대측 머시너리와 건물들 뿐. 이것들로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이런 건물들 사이에 숨어 적의 접근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을 예상한 것인지, 상대는 도무지 움직일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이런 거구를 움직일 땐 자동적으로 어느 정도의 소음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내가 움직인다면 저쪽도 신경을 곤두세울 것이고, 그에 맞는 행동을 취할 것이다.
“진짜 어떻게 하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황에, 내 시야엔 관통당해 움직일 수 없는 오른 어깨가 들어왔다. 도박이긴 하지만 방법이 떠올랐다.
우선 억지로 오른 어깨 파트를 왼손으로 때어냈다. 그것도 일부가 아닌, 오른 팔을 통째로. 덕분에 조종석 내부에선 위험 경보가 시끄럽게 울렸지만 이것은 필요한 행동이다. 팔을 완벽하게 때어낸 뒤에 한 행동은 제자리에서 발을 구르는 것이었다. 시작은 크게, 그리고 점차 작게. 마치 점점 멀어져가는 것처럼. 완벽하게 속이는 것은 사람이 조작하는 이상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의문을 가지게 하기엔 충분하다. 효과가 있었는지 내가 내는 소리 사이에 작은 잡음이 추가되었다. 캐터필러가 작동되는 소리.
내가 움직인 것은 바로 그 소리가 들려온 순간이었다.
왼손으로 들고 있던 팔을 밖으로 던졌다. 살짝 보인 상대의 위치를 보니, 분명 조금이지만 다가오고 있었다. 상대는 당황했는지 먼저 포착된 팔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그리고 난 그 틈을 이용해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 와중에 쓰러져 있는 머시너리의 검을 주을 생각을 한 것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큰 도박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제대로 왼손에 고정되었다.
상대는 우선 자신 쪽으로 날아오는 내 팔을 겨누곤 방아쇠를 당겼다. 그 순간 날아가던 내 팔에 몇 개의 구멍이 생겼고 연이어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로 일어난 연막은 나와 상대의 시야를 가렸다. 하지만 이 상황을 연출한 것은 나이고, 내가 노린 것 또한 바로 이것이었다.
몸을 최대한 앞으로 숙이고, 검을 든 왼손을 앞으로 뻗는다. 상대의 공격에 조종석이 직격당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몸을 웅크린다. 그리고 그대로 앞으로 달려 나간다.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 것인지 연막 건너편에서부터 탄막이 쏟아진다.
“그래도…!”
그 중 몇몇이 조종석이 있는 몸체에 맞는다. 엄청난 충격이 느껴지지만 그래도 앞으로 민 조종간을 당기진 않는다. 이미 이렇게 된 이상 더 이상의 방법은 없기에, 오히려 조종간에 힘을 실어 가속한다. 그런 도중에도 충격은 이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메인 카메라로 비춰지는 풍경이 온통 검은색으로 변하였다. 분명 직전에 있던 충격이 메인 카메라가 파괴됨으로서 발생한 것임을 뜻한다. 하지만 감에 가까운 조작으로 들고 있는 검의 높이를 조종석에 맞춘다.
이것이 닿는다면 나의 승리, 닿지 않는다면 나의 패배. 실패할 확률이 더 높은 도박이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그리고 들려온 소리는 금속이 갈려나가는 소리. 그와 함께 뭔가에 부딪치는 충격이 느껴지고,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지면에 충돌하였다.
“아야야….”
갑작스러운 충격에 여기저기가 쑤셔왔지만 겨우 살아있는 서브 카메라로 상황을 파악하였다. 바로 코앞에, 흉부를 검으로 꿰뚫린 채 지면에 쓰러져 있는 머시너리가 있었다. 물론 나도 그 위에 쓰러져있긴 했지만 도박은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풍경이 바뀐다.
[테스트 종료]
기계 음성이 들려오자, 현란하던 도시와 상대 머시너리, 내가 탑승하고 있던 머시너리의 형체까지 네모난 도트 조각으로 변하여 붕괴되었다. 화면으로 보이던 모든 것들이 그렇게 붕괴되어 본래 색마저 사라졌을 때, 조종석 내부도 완벽하게 암전되었다. 연이어 화면이 위치한 정면이 위로 열리면서 빛이 세어 들어왔다. 빛은 방금까지 본 도시의 빛보단 자연스러웠지만, 역시나 인공적인 빛이었다.
“영차.”
갑작스러운 빛에 눈이 따갑긴 했지만 이내 적응하곤 조종석에서 느릿하게 기어 나왔다. 나오자마자 보인 것은 후줄근한 복장의 무리. 정확히 말하자면 기름때와 땀으로 범벅이 된 정비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복장으로 알 수 있다시피 그들은 모두 정비사다. 다른 말로는 메카닉. 보통은 일반적인 머신들을 정비하고 수리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지만,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그런 평화로운 일을 하는 곳이 아니다. 내가 방금까지 탑승하고 있던 머시너리, 한마디로 말하자면 전쟁과 투쟁에 쓰이는 병기들을 다루는 것이 그들의 일. 즉, 그들이 현재 있는 곳은 군 관할의 정비장이다.
“…왜들 그러세요?”
그들에게 이런 말을 한 것은 그들 모두가 어째서인지 경악한 표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금 상황에서 그리 놀랄 만한 것이 있었나?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사람들 사이에서 여러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테스트라고?! 이걸 어떻게 해?!”
“우리 수준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젠장, 난 포기하겠어.”
웅성거리는 말소리들에선 상당히 부정적인 느낌이 품겨져 왔다. 확실히 방금 시뮬레이션 테스트는 정비 머신의 파일럿을 뽑기 위한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 살벌한 감이 있었다. 원래 꽤나 소득이 괜찮은 정비사 중에서도 사고가 일어날 시 더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이 역할은 보통 이런 테스트로 뽑는다. 그만큼 경쟁자가 많다는 것이다.
그 순간, 시끄러운 공간에서도 뚜렷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도대체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죄, 죄송합니다.”
발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엄청나게 대비되는 두 사람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명은 이 앞의 사람들과 같은 후줄근한 정비복을 입고 얼굴을 구긴 채 짜증을 내는 흰 머리카락의 노인. 한명은 군복을 입고 고개를 숙인 채 사과를 하는 흑발의 여성.
노인의 경우엔 확실히 알고 있다. 이 정비소의 총 지휘관이자, 나를 이곳에서 일하게 해준 은인. 랜드 호른이다. 통칭 대장. 하지만 그 뒤를 따라오는 미인에 대해선 아는 것이 없었다.
“대장, 무슨 일입니까?”
노인의 별명이자 직책을 말하며 물어보자, 대장은 그제야 내가 있단 것을 눈치 챈 것인지 한숨을 쉬며 말하였다.
“아니, 별건 아니고, 테스트에 쓰는 시뮬레이션 설정 파일을 군사용으로 가져와 버렸어. 그것도 엄청 빡센 걸로.”
……네?
“아직 한 사람은 없겠지? 이봐, 뭐해! 빨리 교체해!”
나를 비롯한 정비사들이 단체로 멍 때리고 있을 동안,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인은 테스트기의 뒤로 돌아가 뭔가를 조작하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다른 정비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거나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등 각자 다른 반응을 보였다. 물론 당사자인 나로선 황당할 뿐이었다.
“…어, 저기, 혹시 이미 누가 테스트를 보셨나요?”
테스트기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대장은 눈살을 찌푸리곤 우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마찬가지로 대장을 보고 있었던 나지만 어째서인지 알 수 있었다. 내 뒤의 모두가 나를 가리키고 있단 사실을. 사실은 사실인 만큼 일단 나도 나 자신을 손가락으로 지목하였다. 그런 나를 본 대장은 한숨을 쉬곤 말하였다.
“그렇다는데, 왜 그러지?”
무슨 실수라도 한 것인가 걱정되었지만, 곧바로 이어진 말은 나를 안심케 하였다.
“결과가 나와서요. 혹시라도 궁금하시면 알려드릴 수 있는데…? 에? 어라? 그럴 리가….”
아니, 점점 불안해져갔다.
“……?”
모두가 의문을 띈 얼굴을 하고 있을 때, 그녀는 테스트기 뒤에서 나와 한 장의 서류를 나에게 건네었다. 그 서류엔 테스트 결과라는 말과 함께, 큼지막한 알파벳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분명 결과를 뜻하는 것이지만, 나로선 믿을 수 없는 결과였다.
[테스트 결과, 파일럿 적성 : A]
그러나 그 서류를 보는 사이 그녀가 나에게 한 말은 더욱 믿을 수 없었다.
“제 이름은 레이나 드리안. 머시너리 파일럿 육성관입니다. 혹시 제대로 된 파일럿 테스트를 해볼 생각 없나요?”
“거절합니다.”
그렇기에 단칼에 거절하였다. 설마 단칼에 거절당할 거라곤 예상 못한 것인지 그녀, 레이나 드리안은 순간 당황한 표정을 하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분명히 머시너리에 타는 것을 좋아한다. 심지어 머시너리 파일럿은 내 동경의 대상이다. 하지만 내 직업은 정비사다. 20대라는 나이에 스스로 말하긴 좀 뭐하지만 남들에게 어느 정도 인정받을 수준으로 실력과 소질이 출중하기에 정비사로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경은 동경에서 멈추면 그만이다. 괜히 파일럿 테스트를 봤다가 쓸데없는 마음이 생기면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거기에 개인적인 이유도 있으니 이렇게 거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테스트에서 나타난 당신의 능력은 대단해요! 임기응변과 응용력, 거기에 머시너리의 완벽한 조작까지! 역시 시뮬레이션이니까 실전과는 다른 점이 있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보다 완벽한 군용 테스트기에서 테스트를 받아보시는 게…”
어째서인지 제멋대로 불이 붙은 것 같은 그녀는 점점 나에게 다가왔다. 그것은 내가 주춤거리며 뒤로 후퇴하는 속도보다 빨랐기에, 어느새 그녀의 얼굴은 내 코앞에 와있었다. 멈추지 않을 것 같던 그녀의 진격을 멈춘 것은, 갑작스레 들려온 남성의 목소리였다.
“레이나! 고작 설정 바꾸는데 왜 이리 오래 걸려?!”
나를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했다. 레이나의 머리카락이 내 코끝을 스쳐지나가는 바람에 좋은 냄새가…, 아니, 이게 아니다. 시선이 향한 곳에는 레이나와 마찬가지로 군복을 입은 남성이 있었다. 차이점이라면 레이나와는 달리 상당히 고압적이면서도 친구가 없을 것 같은 첫인상이라는 점? 하지만 그의 등장으로 몇몇 정비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나로선 알 수 없는 그의 정체는 사실 대단하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 갑작스레 뒷덜미가 잡혀 구석으로 끌려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기에 어리둥절했지만 뒤를 보니 그곳엔 대장이 한숨을 쉬며 담배를 꺼내고 있었다.
“대장? 갑자기 왜 그래요?”
“귀찮은 일이 일어날 거 같아서 그런다, 왜?”
내가 무슨 악의 축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 대장에게 묘하게 상처를 받았지만, 일단은 살짝 고개를 내밀어 레이나와 새롭게 등장한 남성을 지켜보기로 하였다. 대충 보니 그는 레이나의 상관으로 보였다. 아니면 그녀의 직책으로 생각하여, 파일럿이던가.
혼자 고민해봤자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조용히 집중하도록 하였다.
“우리가 오늘 이곳에 온 건 이딴 정비공들 때문이 아닐 텐데?”
“이딴 정비공이라뇨?! 이분들 덕분에 우리가 머시너리를 타고 싸울 수 있는 걸요!”
“어쨌든 결국 싸우는 건 나잖아! 그렇다면 내 기체가 먼저잖아!”
집중할 필요가 없었다. 우선 내용이 어이가 없었던 점도 있고, 말소리가 워낙 컸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던 정비사들조차 구경 올 정도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내용이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는 끝이 안 보이는 의견 대립 수준이라는 것에 우선 한숨부터 나왔다. 거기에 정비공들이 즐비한 이곳에서 저런 소리를 지껄이는 남자 쪽은 도대체 뭘 믿고 저러는 건지 모르겠다.
레이나와 남자는 한참을 그렇게 말다툼을 하더니, 결국엔 보다 못한 대장의 개입으로 겨우 진정하였다. 그러면서도 굳이 한마디 더하는 것은 레이나였다.
“방금 테스트를 본 사람의 결과는 A였어요. 당신과 마찬가지로 말이에요, 브랜드 드레이크. 임기응변에선 당신보다 떨어졌지만 머시너리에 대한 이해과 응용력은 오히려 당신보다 뛰어났어요. 이게 무슨 뜻인지, 당신이라면 알겠죠?”
브랜드 브라이트. 그 이름을 듣고 나서야 겨우 그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최근 한참 화제인 에이스 파일럿. 머시너리에 타고 있는 한 불사신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생존력과 그 밑바탕이 되는 실력으로 군의 사기를 드높이고 있는 장본인이다. 나도 어느 방송에서 그가 맡았던 임무에서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온 적은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것이 정말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브랜드는 레이나의 말을 들은 척도 안하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아까의 대화로 보아 자신의 머시너리 쪽으로 간 것이겠지. 다툼의 원인 중 하나가 떠나자 주변에 모여 있던 정비사들도 하나 둘씩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테스트를 기다리던 사람들도 그냥 나중으로 미룬 것인지 어느새 사라져있었다.
즉, 난 레이나의 시야에 자연스럽게 들어왔단 소리다.
“이런.”
빠르게 도망치려는 순간.
“자, 잠깐만요!”
“칫.”
차마 여자의 부름을 무시할 순 없었기에, 결국엔 레이나에게 다가갔다. 마찬가지로 나에게 다가오는 그녀의 얼굴엔 뭔가 불만이 있어보였는데, 아무래도 노골적으로 도망치려 했던 나의 행동이 거슬렸나 보다. 그럴 만하긴 하지만 귀찮은 걸 어찌하리.
“미스 드리안? 당신 담당인 파일럿은 먼저 가버렸는데 여기서 뭐하십니까?”
“…그냥 레이나라고 부르세요. 그렇게 비꼴 필요는 없잖아요? 것보다 남이 이름을 말했으면 자신도 말하는 것이 예의 아닌가요?”
대놓고 이름을 말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기에 특별히 친절하게 말했건만 이런 반응이다. 도대체 누가 예의가 없는 건지. 하지만 그래도 그녀의 말 또한 맞는 말이었다. 조금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드디어 자기소개를 하였다.
“루크 제이든. 그냥 정비사입니다.”
◆
그 뒤로 레이나를 먼저 보낸 뒤, 오늘 새롭게 배정된 곳으로 향하였다. 가는 도중에 보이는 이 정비소의 풍경이 새삼스럽게 신경 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정비소의 크기는 웬만한 크기의 운동장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넓다. 거기에 설비 또한 군에서 지원을 해줘서 그런지 격납고부터 시작하여 모든 것이 깨끗하고 성능도 뛰어나다.
여기까지만 말한다면 그저 군 관할의 정비소라는 것으로 넘어갈 수 있지만, 문제는 이 정비소가 있는 위치다. 천장에서 하얀 조명을 비추는 이 정비소의 위치는, 지면에서부터 한없이 내려와야 하는 깊은 지하에 있다. 바로 위에는 역시 군 시설이 있으며 이곳의 존재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작정하고 찾아오려 하지 않으면 찾기도, 오기도 힘든 곳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나의 일터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어느새 목적지에 도달하였다. 그곳에는 대장도 이미 와있었다. 대장에게 다가가면서 내가 담당하게 될 머시너리의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대장, 진짭니까?”
“그럼 가짜겠냐.”
내가 뭐라 할지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곧바로 튀어나온 대장의 가차 없는 말에 한숨을 쉬고 말았다.
군 관할의 정비소에서 머시너리의 정비라면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우선 정기점검의 경우. 이런 건 기본적으로 정비사들의 주된 밥줄이나 다름없기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두 번째로 손상된 머시너리의 수리와 정비가 필요한 경우. 역시나 이를 정비하면서 묵혀둔 부품이나 장비를 써먹기 때문에 오히려 좋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세 번째의 경우다.
“신기종의 정비를 하라고요?!”
시험기, 시작기, 실험기 등의 온갖 위험 요소를 지니고 있는 물건들을 정비하는 것. 여기서 정비란 단순히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 기동은 물론 각 파트가 제대로 가동되는지 직접 확인하는 것을 포함한다. 제대로 확인도 되지 않은 물건을 다루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잘못해서 실수라도 했다간 그대로 실업자가 될 수도 있는 위험 작업이란 소리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까지 질색하는 것은 그 문제의 신기종 머시너리가 세워져 있는 격납고 앞의 상황 때문이다.
“왜 하필….”
“어?”
결과적으로 레이나와 나, 브랜드의 목적지는 모두 같았다는 것이다.
“브랜드! 저 사람이에요! 테스트 결과가 A였다는 사람!”
“그게 뭐 어쨌다고!”
그대로 고개를 돌려 대장에게 구원을 바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대장은 아무렇지 않게 신기종의 머시너리를 향해 걸어갔다.
“이봐, 루크. 그런 것보단 우선 이 녀석을 봐라. 신기종을 만질 수 있는 기회는 얼마 없다고.”
어쩔 수 없이 서로 티격태격하는 둘을 내버려두고 대장이 있는 곳으로 갔다. 가까이에서 보니, 머시너리의 특징과 외형이 보다 확실히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지금까지 봐왔던 것들과는 그 형태부터 많이 차이가 났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전체적인 몸체의 스타일. 아직 제대로 도색되어 있지 않아 금속 특유의 색감을 지니고 있다. 거기에 전체적으로 상당히 얇은 형태를 보이고 있는데, 분명 속도를 중시한 것이겠지만 두꺼운 장갑을 압축시킨 것 같은 그 형태는 속도와 함께 방어력 또한 지키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그리고 하체로 눈을 돌리니, 내 지식 속 머시너리의 이동 장치와는 아예 다른, 완전히 새로운 구조가 있었다. 캐터필러도 아니며 일반적인 바퀴도 아니다. 그렇다고 아예 비행을 위해 제작된 것도 아니다. 이 머시너리의 발에 해당하는 부분의 바닥에는 동그란 구체가 달려 있었다.
“설마, 이걸로 이동하는 겁니까?”
“그렇지. 전자기장을 구축해서 공중에 뜨면서도 뜨지 않은 것 같은 기동이 가능하단거지. 기본적으로 구체에다가 앞에 장애물이 있어도, 봐라.”
대장의 말이 끝나자 발에 달려있던 구체가 푸르스름한 전격을 내며 발에서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일정 거리 이상으론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양쪽에 자석을 두어 공중에 떠있는 것처럼 약하게 진동하며 그저 그곳에 떠있었다.
“작동하게 되면 이정도로 틈이 생겨서 웬만한 높이의 장애물은 그냥 뛰어넘어도 충격은 그대로 완화된다.”
확실히 뛰어나다고 할 정도의 성능이다. 하지만 방금 눈으로 보인 전격은 이 머시너리의 문제점을 말해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정도의 성능이라니, 얼마나 많은 전력이 소비되는 겁니까?”
“음, 글쎄. 아직 테스트도 안 해봤으니 말이지. 특이하게도 이 녀석, 자가발전 식이더군.”
여기서 다시 한 번 놀랐다. 현존하는 머시너리는 모두 전기로 가동된다. 전기를 생성하는 방법은 각 국가나 지역마다 다르지만, 결국엔 저장시켜둔 전기를 머시너리에 충전시켜서 사용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과 같이 자가발전식이 고안되기도 했었지만 소모되는 것에 비해 충전되는 양이 너무 적어 효율이 떨어지기에 실전에선 쓰이지 않게 되었다. 거기에다가 말이 자가발전이지 움직이는 만큼 축적되는 방식이기에 얼마가지 않아 충전을 받아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대장의 이어지는 말은 그런 전례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그저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충전된다는군.”
“…그게 가능합니까?”
“불완전 영구기관입니다. 연구부에서 만들어냈지만 도무지 쓸 곳이 없어서 결국엔 머시너리의 동력으로 사용되었죠.”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레이나의 말에 흠칫했지만 일단 그녀의 말이 신경 쓰였기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머시너리의 동력원으로 사용됨으로서 그 문제점은 더 크게 부각되었습니다. 기능 자체는 연구부의 영혼이 담겨있다 할 정도로 뛰어납니다만, 소모량이 엄청나고 충전양도 소모량에 비해선 턱없이 부족하죠. 계산 상, 한번 기동하고 나면 기본 30분은 가만히 있어야 다음 행동을 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레이나의 시선이 머시너리에게 향하였다. 자연스레 내 눈도 레이나를 따라갔고, 그제야 이 신기종의 가장 큰 특징이 눈에 들어왔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것은 거대한 포대였다.
“MS―P. 일명, 고속 기동 포격형의 프로토 타입. 빠른 속도로 이동하여 적진의 중요 시설을 포격한 뒤 귀환한다는 작전을 바탕으로 설계되었기에, 이렇게 제작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등 쪽으로 접혀있지만 그 길이는 아무리 봐도 머시너리의 상체보다 길었다. 그 끝은 무릎 아래로 내려갈 정도였고, 그것이 연결되어 있는 등 부위에도 거대한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분명 그곳엔 탄환을 비롯한 포격에 필요한 장비들이 들어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곤 해도….
“이건 너무 무식할 정도 아닌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본심이었다.
“일단 설계상의 문제는 없지. 일단 몇 가지 점검 후에 가상 기동이 먼저다. 그 다음에 직접 움직여보면 알겠지. 그때까지 파일럿은 구경이나 하고 있게나.”
대장의 말이 거슬린 것인지 파일럿은 브랜드는 일부러 그런다는 게 보일 정도로 크게 말하였다. 그것도 팔짱을 끼고.
“머시너리는 파일럿의 실력을 살리기 위한 부품일 뿐이니까, 부속품 상태가 별로면 큰일이지.”
이걸로 내 머릿속에서 그의 이미지는 어린이다. 그것도 지기 싫어하는 골목대장이다. 그건 내 생각만이 아니었는지 아까까지만 해도 그와 다투던 레이나는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와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리곤 한심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는 그녀를 보며, 내심 당신도 마찬가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대장이 브랜드의 말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슨 소리지? 파일럿은 머시너리의 성능을 제대로 살리기 위한 부품이 아닌가.”
억지로 얌전하게 말하고 있지만 대장의 현재 상태는 유리에 금이 간 것과 비슷하다. 조금만 잘못 건드리면 산산조각 나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란 소리다. 그리고 브랜드에게 그런 것을 신경 쓰는 섬세함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하, 이래서 늙은이들은.”
맥락이라곤 없는 도발이었지만, 대장의 인내심을 파괴하기엔 충분했다. 이어지는 다툼은 들을수록 머리가 아파오니 무시하도록 하였다. 차라리 그 동안에 정비를 하게 될 머시너리를 좀 더 살펴보는 것이 훨씬 이득일 것이다. 거기에 내가 하게 될 일은 정비용 머신에 탑승하여 머시너리 자체를 움직이거나 옮기는 것이기 때문에 미리 파악해둘 필요가 있다.
이제 보니 이 격납고 자체가 이 머시너리를 위한 특수제작품으로 뒷부분의 공백이 상당히 넓다. 거기에 자체적으로 이동하는 것도 가능해 보인다. 아마 자체 전력을 최대한 아끼기 위한 설비일 것이다. 이런 것까지 준비된 것을 보면 확실히 큰 기대가 걸린 녀석인데….
“파일럿이 저래서야 원.”
“그럼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죠?”
“…뭐가?”
가만히 한숨만 쉬고 있던 레이나가 말을 걸어왔다. 물론 그녀의 질문이 뭘 뜻하는지는 알고 있다.
“당신은 파일럿과 머시너리. 무엇이 부속이라 생각하나요?”
이 질문에 내가 할 답변은, 내가 파일럿이 아니라 정비사로서 일하고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런 건 누구라도 직접 머시너리에 타게 된다면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난 머시너리의 파일럿이 되지 않았다.
“뇌만 있으면 그게 사람입니까? 몸만 있으면 그게 사람인가요? 파일럿과 머시너리를 그런 관계입니다.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그건 이미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파일럿과 머시너리 중, 그 어떤 것도 다른 하나보다 우선시 될 수 없다. 아무리 파일럿이 뛰어나도 맨몸으론 머시너리와 대적할 순 없고, 머시너리의 성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파일럿이 없으면 움직일 수조차 없다. 파일럿과 머시너리는 그런 관계인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생각에서의 이야기이기에 남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다. 그렇기에 대충 얼버무리려고 했는데….
“…대단해요! 그런 사고방식은 처음 들어봤어요!”
뭔가 눈을 반짝거리며 나에게 시선을 보내는 레이나 덕분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분명 내 말을 자신의 안에서 몇 번 가공을 한 것이겠지.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필터링이 아니라 가공이라는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과대 포장에 가깝다. 멋대로 남의 말을 자기가 좋을 대로 해석하는 귀찮은 부류라는 것이다. 하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지금까지 지켜본 결과, 그녀는 그렇게 남에게 미움 받을 사람을 아닌 것 같다.
“대단할 건 없지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저렇게 다툴 일도 없겠죠.”
문제는 내말대로 아직까지도 다투고 있는, 정확히는 슬슬 진짜 싸울 것 같이 느껴지는 두 사람이었다.
“대장, 일이나 하죠.”
“브랜드는 가만히 좀 있어요!”
양쪽에서 동시에 말하니 아무리 여러모로 기가 강한 그들이라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대장은 브랜드를 째려보았지만 이내 한숨을 쉬고 결국 나를 손짓으로 부르며 머시너리의 정비를 하러 갔다. 그와 대조되게 브랜드는 계속 혀를 차면서 뭐라 중얼거렸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자 결국 조용히 머시너리의 정비 과정을 지켜보기 시작하였다. 마치 도중에 실수라도 있으면 잡아서 물고 늘어지겠다는 의지를 표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묘하게 부담되었지만, 대장은 아무렇지 않게 머시너리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었다. 어째 부담을 받는 건 나뿐인 것 같다.
“뭐해! 빨리 준비해!”
“아, 네.”
대장의 부름에 뒤늦게나마 작업에 참여하였다. 머시너리의 정비를 위한 머신은 언제나 빠른 준비를 위해 머시너리의 옆에 배치되어 있다. 머신인 만큼 머시너리와는 그 외형 자체를 달리 하지만, 그래도 그 성능은 충분하다. 일단 기본적으로 인간의 몸체에서 상체를 부풀리고 머리를 없앤 실루엣에 몸체는 내부까지 훤히 보이게 골격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물론 정면에는 신중한 작업을 위해 카메라나 각종 장비들이 설치되어 있다. 조작 방법 자체는 머시너리와 흡사하지만 전체적으로 단순 작업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조종간도 상당히 간략화 되어 있다.
“우선 각 구동계의 확인부터 들어간다!”
대장이 소리치자 주변을 대충 어슬렁거리던 정비사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대장의 말대로, 구동계의 확인은 머시너리가 지닌 인간적인 면모의 시작이다. 물론 그것은 움직임과 외형일 뿐이지만 중요한 건 마찬가지다. 우선 시스템적인 확인을 하고, 뒤이어 정비 머신을 통한 물리적인 확인을 한다. 말로하면 거창해보이지만 실상은 시작 단계인 만큼 그냥 억지로 팔다리를 움직여보고 팔다리를 접었다 폈다하는 단순 작업이다.
“우선 오른쪽부터!”
이 정비소의 지휘관이나 다름없는 대장의 지시가 내려오자 빠른 속도로 작업은 진행되었다. 시스템의 반응은 확인되었고, 바로 머신의 팔을 움직여 머시너리의 관절 부분을 잡는다. 마치 의사가 환자의 신경을 확인하는 것처럼 부드럽게 접었다 펴본다.
그 순간, 엄청난 크기의 폭발 소리가 들려왔다.
“뭐, 뭐야?!”
소리치는 것이 누구인지도 알지 못한 채, 정말 난데없이 급변한 상황에 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모두 혼란에 빠졌다. 현재 내가 있는 곳은 이 넓은 정비소에서도 상당히 깊은 곳이다. 이런 곳까지 들려올 폭발 소리라면 단 두 가지 경우밖에 없다. 하나는 내부에서 일어난 폭발. 하나는 외부에서부터 내려오는 연쇄적인 공격.
하필이면 이 중 두 번째 경우라는 것을, 머신의 정면에 설치되어 있는 카메라로 확대된 시야가 알려줬다.
“…대장, 입구가 막혔습니다. 지하 대피소로 이동하라고 지시해주세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비해 침착하게 말했다고 생각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상으로 올라가는 곳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폭발로 발생한 연막 속에, 아무리 봐도 인간으로는 보이지 않는 크기의 그림자가 몇몇 나타났다. 어디 소속인지, 무엇이 목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비소는 현재 머시너리에게 공격받고 있다는 소리다.
“루크 녀석 말 들었지! 닥치고 다 튀어!”
대장 또한 상황이 이해가 된 것인지 정비소에 있는 사람들을 안쪽으로 이끌기 시작하였다. 보통이라면 탈출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이곳 같이 탈출구가 한정될 경우엔 차라리 안쪽에 대피소를 만들어 두는 것이 더 안전하다. 지하인 만큼 매 층마다 대피소가 준비되어 있기에, 다른 곳의 사람들도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각 층의 대피소로 대피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상황파악이 안 되는 건지, 레이나는 어찌할지 몰라 허둥지둥하고 있었다. 그냥 대피하라는 말에 따라 사람들을 따라가면 될 텐데 저러는 이유가 뭘까.
“당신도 빨리 도망쳐! 사람들을 쫓아가!”
내가 소리치자 레이나는 오히려 나에게로 다가왔다. 다가온 그녀의 얼굴을 보자, 당황한 수준이 아니라 창백하게 굳은 얼굴이 있었다. 마치 크게 잘못한 일을 저질러 그 덜미가 잡힌 것처럼 보이는 그 얼굴은 날 쓸데없이 불안하게 만들었다.
“왜 그래?!”
불안한 마음에 크게 소리쳐봤지만, 레이나는 그 얼굴을 바꾸지 않고 말하였다. 바로 앞까지 다가왔지만 주변의 소음으로 겨우겨우 들릴 정도의 크기였다.
“이걸, 이걸 지켜야 해요!”
머시너리를 가리키며 말하는 레이나였지만, 당연히 말도 안 되는 말이다.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녀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옆을 보니 브랜드가 대장의 멱살을 잡으며 뭐라 말하고 있었다. 대충 들어보니 역시나 이 머시너리를 지키라는 것 같았다.
대장은 물론 나와 마찬가지로 어이없어 했지만 아무래도 그들의 의사를 굳힐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지,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나는 레이나를 머신의 손으로 움켜쥐고 그대로 대피소로 이동해갔다. 레이나는 발버둥 쳤지만 인간의 힘으로 기계에게 저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을 이내 깨달은 것인지 레이나의 저항은 금세 미미해졌다.
머신에 탑승한 만큼 금방 대피소의 입구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뒤를 돌아보자 연막 속으로 보이던 그림자의 모습이 실체로서 확인되었다.
“강습형…! 이건 전쟁이잖아!”
전체적으로 검은색으로 치장된, 곡선으로 이루어진 표면. 곡선으로 이루어진 덕에 단순한 레이더망은 손쉽게 돌파할 수 있게 만들어진 머시너리. 강습형이라는 말에 걸맞게 기동력 또한 일반 근접형 머시너리에 비해서 뛰어나게 설계되어 있다. 거기에 말 그대로 갑작스런 습격을 위한 장비들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노골적인 전투 행위를 일으킨다는 것은 분명 전쟁을 각오했다는 뜻일 것이다.
완전히 검게 칠해져 있어 소속 국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군사 시설의 지하에 위치한 이곳을 습격했다는 것은 주변 적국 중 하나일 터. 심지어 머시너리가 동행했다는 것은 목표에 관련된 자들에게 자비를 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젠장! 도대체 뭐하는 놈들이야!”
그 사이에 대장은 어느새 내 옆에 와있었다. 짜증내는 그 모습이 무사하다는 것을 알려주었지만, 분명 그와 함께 있었을 브랜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대장?! 그 파일럿은?!”
내 말에 대장은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본래 그들이 있었던 장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경악했다.
“뭘 하고 있는 거야?!”
그는 아까까지만 해도 한창 정비하고 있었던 머시너리에 탑승하고 있었다. 거의 강제로 조종석을 열어 들어가는 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머시너리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카메라이자 눈에 해당하는 곳에서 빛이 나고, 곧바로 발에 달려있던 구체가 푸른 전격을 내뿜으며 떠올라 바닥에 닿았다. 몸을 비틀어 달려있던 정비 설비들을 때어내자 그 거대한 몸체가 미끄러지듯 이동한다. 너무나도 매끄러운 이동에 이런 상황인대도 불구하고 잠시마나 멍하니 바라볼 수준이었다.
“브랜드?!”
그 순간, 여전히 머신의 손에 잡혀있던 레이나가 소리쳤다. 하지만 저곳까지 닿을 리 없다. 애초에 듣더라도 그만둘 것 같진 않았다.
직선으로 된 통로의 끝에 서서, 다가오는 머시너리들을 바라보는 형태가 된 브랜드를 상대들도 발견한 것 같다. 일방적인 학살이 통하지 않는 동급의 상대가 나타나니 그 움직임이 바뀌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눈에 보이는 상대는 총 3기. 그들 모두가 일제히 거대한 머신건을 손에 쥐며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순간 브랜드가 움직였다.
그저 매끄러운 이동이라고 생각했던 그 움직임이, 아래의 구체에서 순간적으로 거대한 전격이 일어난 순간 엄청난 속도로 바뀌었다.
“크악?!”
그 전격과 급가속의 결과로 발생한 후폭풍이 우리를 덮쳤지만 머신의 카메라는 그것을 뚫고 앞의 광경을 보여주었다.
상대가 총구를 브랜드에게 겨누기도 전에, 이미 그는 그들의 앞에 도달해있었다. 연이어 낮은 자세로 돌입해 들어가자 상대들은 어찌할 줄 모른 채 다짜고짜 머신건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중 몇 발은 대피소 입구에 근접한 곳에 떨어져 내부에서 비명소리가 들릴 수준이었지만, 막상 그 공격의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브랜드는 자신이 탑승한 머시너리의 가장 큰 특징이자 무기인, 등에 달린 거대한 포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어느새 그의 위치는 상대편의 뒤였고, 그 포대 또한 거의 일렬로 서있는 그들을 겨눴다.
그리고 이어진 거대한 폭발 소리와, 맨 눈으로 봤다면 눈이 다쳤을 지도 모르는 수준의 섬광. 뭔가 번쩍인 순간 눈을 감았기에 그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뜨자, 앞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엄청나군.”
브랜드가 탑승해있는 머시너리의 앞부터, 본래라면 상대들이 있었을 장소까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강습형 머시너리들의 잔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폭발의 여파는 대피소 입구의 직전까지 도달해 있었다. 이것까지 계산해낸 것이라면 분명 그는 엄청난 실력자다.
순식간에 머시너리 3기를 파괴한 그 모습에선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희망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
카메라를 통해 확대된 시야로, 습격의 시작을 알린 연막 속에서 또 다른 거대한 그림자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포착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브랜드에게 돌격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상대를 브랜드도 알아챈 것인지 움직이려고 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고작 몸을 반대쪽으로 돌려 상대와 마주섰을 때 끊기고 말았다. 마치 아까의 상대에게 브랜드가 다가간 속도와 같이, 엄청난 속도로 다가온 거대한 물체에 브랜드는 그대로 부딪쳐 뒤로 날아갔다.
등부터 바닥에 쳐박힌 브랜드는 재빨리 일어나려 했지만, 그것 역시 위에서부터 찍어 누르는 상대에 의해 무산되었다. 그 상태가 돼서야, 제대로 된 상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분명 강습형 머시너리의 종류다. 하지만 방금까지 있었던 것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이봐, 저건 이번에 우리 쪽이 개발한 거 아니야?”
레이나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예의고 뭐고 없이 물어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브랜드를 누르고 있는 머시너리의 발에는 동그란 구체가 전격을 내뿜으며 회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라고 말해봐!”
아무리 소리쳐 봐도, 레이나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그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한순간 변화가 생겼다. 정면을 보며 뭔가에 놀란 표정, 정확히는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런 반응도 안하던 그녀가 뭔가에 반응한다는 것은 분명 나쁜 것은 아니지만, 어째서인지 그 변화는 나에게 불안감을 가져왔다.
그 불안감을 지닌 채, 레이나가 보고 있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선 검은 머시너리의 손에서 튀어나온 기다란 칼날을 겨누고 있었다. 자신의 아래에 눕혀져 있는, 브랜드가 탄 머시너리의 조종석을 향해서.
브랜드도 분명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 가까운 거리에서 자신을 노리는 상대에게 포대를 겨누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어이없게 팔로 그 진로를 가로막힌 포대는 천장을 향해 탄환을 발사하였다. 잔해가 그 아래로 덮치지만 거인과도 같은 머시너리에겐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그리고 칼날은 움직였다.
“안 돼!”
그곳에 있는 누군가가 외쳤을 것이다. 그것은 그 광경을 지켜보는 모두가 하고자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외침은 아무런 힘도 없었다.
바로 다음 순간, 금속과 금속의 마찰음과, 아주 작지만 고깃덩이가 잘려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소리가 난 곳, 아래에 깔려있는 머시너리는 더 이상의 움직임 없어졌다. 마치 사람이 기절한 것처럼, 죽은 것처럼 바닥에 널브러진다. 그런 머시너리의 위를 누르고 있던 거구가 몸을 일으켰다.
“들어가! 빨리!”
대장의 외침에 따라 그 뒤로 뭐가 더 있든 상관하지 않고 대피소의 내부로 들어갔다. 그와 함께 대피소 입구를 두꺼운 합금으로 된 문으로 막는다. 그사이로 얼핏 보인 밖에선 그 머시너리가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
“거기 들리나? 이봐! 젠장! 여기도 먹통이잖아!”
대장은 신경질적으로 들고 있던 무전기를 집어던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금 상황은 모든 것이 절망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이제 몇 군데 남았습니까?”
대피소에 들어온 후, 대장과 난 이 위로 존재하는 대피소와 통신을 하기 위해 무전기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가장 많은 정보를 들을 수 있을 지상에서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설마 그 많은 대피소가 모두 파괴되었다는 최악의 상황일리는 아니리라 생각하면서도 피어오르는 불안함은 막을 수 없었다.
사실 대피소 간의 교류는 통신만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연결된 통로로 이동하여 이루어질 수 있지만 그쪽의 상태가 어떻게 되어있는지 모르는 이상 그런 위험한 도박을 할 수는 없다.
“바로 위쪽 하나 남았다. 제발 되길 기도 해야지.”
대장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무전기를 주워 통신 장치에 연결해 뭔가를 조작하기 시작하였다. 이 상황에선 무사한 회선을 찾는 데에도 시간이 걸릴 테니 우선 그전에 해야 할 일을 하도록 하였다.
안쪽으로 이동하니 다른 정비사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앉아있거나 벽에 기대고 있었다. 이만한 인원이 정비소에 있었다는 것이 새삼스레 놀랍게 여겨졌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구석에서 무릎을 껴안고 앉아있는 사람이 있었다.
“……이봐.”
우울한 분위기와 흑발의 조합으로 인해 천천히 고개를 드는 레이나에게서 순간 섬뜩함을 느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분명 이곳을 습격한 강습형 머시너리들과 그 후에 등장한 머시너리는 큰 차이가 있었다. 발에 달린 구체 형태를 한 이동 장치. 분명 고속 기동 포격형의 프로토 타입이라 불리며 정비하기 위해 우리 정비소로 옮겨진 머시너리에게도 있었던 장치다. 그것이 어째서 상대에게도 있을까.
“뭐, 기술이 넘어가기라도 했나? 아니, 분명 연구부에서 만들어낸 건 동력원이라고 했지. 그렇다는 건 오히려, 우리가 저쪽의 정보를 빼내왔나?”
멋대로 짐작했지만 내심 분명할 것이라 생각했다. 머시너리에 대한 데이터는 군사용으로서 기밀 중에 기밀이다. 그 어떤 군사기밀도 멋대로 알려지면 안 되는 것인데 하물며 머시너리에 대한 기밀이라면 그 대가는 상상을 초월한다. 거기에 혁신적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의 그 움직임은 본격적인 전장에 나간다면 분명 큰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즉 전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병기에 대한 정보를….
“…제 진짜 직책은 연구부 소속의 정보 관리관입니다.”
레이나의 목소리가, 분위기가 한순간 바뀌었다.
“쉽게 말하자면 군사 기밀 한정 스파이라고 할 수 있겠죠. 당신의 말대로 전 적국의 기술 정보를 빼내왔습니다. 그리고 연구부에서 그 정보를 가지고 만든 것이 이번 프로토 타입이죠. 물론 동력원에 관한 것은 사실입니다. 거기에 브랜드 브라이트 파일럿을 육성하며 머시너리와 파일럿을 담당한 것 또한 사실이구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정보를 빼내왔다는 것부터 시작하여 그에 관련된 정보까지 역으로 빼앗겼단 것입니다. 분명 상대의 목적은 프로토 타입을 포함하여 기밀에 관련된 자들일 겁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연구부도 공격받고 있겠죠.”
연이어 튀어나오는 엄청난 사실들. 방금과 같은 일이 아니었다면 경악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즉, 지금은 그 정돈 아니다. 물론 놀라운 이야기지만 아무리 진지한 이야기라도 구석에 처박혀서 한풀이하듯 말하면 그 느낌이 다른 법이다. 목소리부터 좀 진지해지긴 했지만 여러모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게 되어버렸다.
“어…, 아, 그래?”
“……무슨 반응이 그래요?”
하지만 레이나는 그런 내 반응이 마음이 들지 않는 것 같았다. 확실히 뭔가 비밀을 고백하는 형식으로 진지하게 분위기를 잡았는데 돌아오는 건 이런 허무한 반응뿐이라면 나라도 싫을 것이다.
“아니,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우린 지금 완전히 고립된 상태라고.”
그 말대로, 우리는 결국 대피소에서 멋대로 나갈 수도 없이 완전히 고립된 상태다. 밖으로 나가면 어떻게 될지 모르고, 이대로 있기만 해도 음식과 자원은 결국 고갈되기 마련이다.
“밖은 어때요?”
사실 밖으로 나가면 어떻게 될지 모른단 말은 반쯤 거짓이다. 외부로 연결되어 상황을 볼 수 있는 카메라 정돈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감시 카메라와 공유되는 화면들이 나열되어 있을 정도다. 나름대로 여러 상황을 생각해둔 대피소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볼 수 있었던 밖의 상황은 역시나 암담했다.
거대한 머시너리가 쓰러져 있는 머시너리를 감시하듯 서있었고, 그 주변엔 무기로 무장한 군인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연구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거기에 머시너리가 몇몇 더 추가되기도 하였다. 역시나 주변을 감시하는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일단 나가면 위험한건 맞을 거야. 당신 말대로라면 당신을 찾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일단 정비사들의 시점에서 보자면 그건 머시너리를 파악하는 모습이었어. 아마 기술을 빼돌렸으니 자기들도 기술을 가져가겠단 소리겠지. 거기에 더 개조할지도 모르고.”
이건 이미 정비사들 사이에선 거의 확정시 된 가설이었다. 타국의 머시너리 주위에 연구원들이 보인다는 것은 그 외엔 별다른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안돼요!”
내 말에 반색하며 소리치는 레이나였지만 그렇다고 뭔가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분명 그 표정과 목소리에선 상당한 애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일단 지금은 여기서 살아나갈 궁리부터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레이나의 시선을 피하는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크! 연결 됐다!”
대장은 바로 위층에 있는 대피소와의 무전이 연결되었다는 희소식을 나에게 말해주었다. 빠르게 대장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고, 그때까지 웅크리고 있던 레이나도 나의 뒤를 쫓아왔다. 그녀 자신도 계속 그러고 있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란 걸 깨달은 것 같다.
대장에게 다가가자 대장은 무전기에 대고 뭔가 말한 후, 그때까지 귀에 대고 무전기를 나에게 넘겨줬다.
“아, 음, 네, 여보세요?”
[정말이었어! 우리말고도 생존자가 있었군요!]
여성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울음은 이런 상황에서도 조금이나마 보인 희망에 감격한 것이라 생각되었다.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묘한 감정에 순간 나도 울컥했지만 속으로 꾹 참아낸 뒤 입을 열었다.
“무, 물론입니다. 거긴 모두 무사하십니까? 그쪽 상황은 어떻습니까?”
[이쪽 층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대피했습니다만, 저희도 다른 대피소와는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일단 밖으로 보이는 거라곤 연구원들과 군인들뿐입니다. 아까 대장님께 들은 바로는 이 정비소 내부의 머시너리는 당신들이 있는 층의 5기가 전부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잠깐만요!”
갑자기 레이나의 손이 튀어나와 내가 들고 있던 무전기를 뺏어갔다.
“혹시 그쪽에서 아래쪽에 난 구멍이 보이나요?”
[아, 네. 아까 엄청난 폭발이 있은 후에 정비소 바닥에 큰 구멍이 생기긴 했습니다만.]
그리고는 무전기 너머의 상대는 물론, 이곳에 있는 모두에게 물음을 던졌다.
“이 대피소는 무슨 일이 있어도 뚫리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나요?”
그 말에 모두가 침묵하였다. 그녀가 도대체 뭘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내 사정이지만 다른 모두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레이나는 자신이 만든 상황에 얼굴을 찌푸리며 의문을 묘했지만, 한동안은 침묵이 유지되었다. 하지만 그런 침묵 가운데 결국 대장이 답을 내놓았다.
“대피소가 열고 닫히는 시간인 10초를 제외하면, 앞에서 핵폭발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상 안전할 거다. 다른 대피소도 마찬가지야. 다른 대피소와 연락이 되지 않는 건 같은 강도가 아닌 무전 설비에 문제가 있거나, 그 안까지 사람이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너희는 어떠냐?”
“대장이 그렇다는데 이견이 있을 리가.”
[저희 쪽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십니다. 사실 핵폭발 정돈 아니고 큰 폭발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면 균열이 일어나긴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별로 의미 없겠죠.]
그런 답에 만족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역시나 레이나였다. 그 얼굴엔 방금까지와는 다른, 마치 나에게 파일럿이 되어보지 않겠냐고 물어봤을 때의 레이나가 있었다. 그녀는 뭔가를 발견한 것일까.
“저희가 이곳에서 무사히 살아나가고, 저희의 기술 또한 빼앗기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아까와는 반대의 의미로 모두가 침묵하였다. 이번엔 완전한 침묵이 아닌, 뭔가를 기다리는 침묵. 술렁거리고 톡 건들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첨가된 침묵이었다. 그 정도로 레이나의 발언은 지금의 상황에 매우 절실한 것이었다.
물론 생존하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단 이곳은 국가의 군사 시설이기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상대도 후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때까지 먹고 마실 만한 자원은 충분하다. 하지만 이곳은 정비소이며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정비공이다. 밖에 군인과 머시너리만이 아닌 연구원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사용하며 정비한 모든 것들을 빼앗아간다는 소리다.
“이곳엔 연구부 소속이거나 전직 연구원이던 분들도 계시겠죠. 만약 여기서 저희가 멍하니 기술을 빼앗긴다면, 그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진 다들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해요.”
애국심을 유발하는 말은 아니었다. 정말로 우리의 생사가 달린 문제였다. 기술이 하나의 조직이 아닌 모두에게 공유된다면 정비사와 연구원은 더 이상 존재 가치를 찾을 수 없게 된다. 레이나는 그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곳과 위층의 대피소는 연결되어 있다고 하셨죠?”
이미 이곳을 주도하는 것은 레이나라도 되는 듯, 대장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레이나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제가 제안하는 작전은 이렇습니다.”
어미에 힘을 불어넣으며,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했던 그녀의 작전은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우선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설비와 장비를 이용하여 최소 2번의 가속과 머시너리 한 기를 옮길 수 있는 마력을 내는 것이 가능한 머신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있으니 가능하리라 생각해요. 그리고 그 머신을 위의 대피소로 옮긴 후에 발진시킵니다. 이 머신의 용도는, 위층 바닥에 난 구멍을 통해 이곳으로 내려와, 프로토 타입 머시너리를 이 대피소까지 밀어내는 것입니다. 물론 이건 두 개의 대피소의 개문 시간이 최소 5초가량 차이가 나야해서 어느 한쪽이 위험 부담을 가지게 되겠지만, 그만큼 성공한다면 저희는 양쪽 모두를 얻을 수 있어요!”
“아…, 잠깐. 그 말도 안되는 작전은 그렇다 치고, 어떻게 우리 모두의 기술을 지킬 수 있는 거지?”
“그건 이곳으로 가져온 머시너리를, 당신이 조종하는 것으로 해결 되요.”
“뭐?”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다시 대피소의 문을 열고, 곧바로 직선상의 적에게 포대를 겨눠 발사하면 끝납니다! 그리고 남은 상대를 우월한 성능으로 격추하면 되요! 당신의 실력이라면 가능해요!”
우선 진정하자. 지금 이 여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도대체 방금 말한 것이 어디가 작전이고 우리를 구해줄 수 있단 것일까. 그래, 백번 양보해서 작전이라도 하자. 하지만 이 작전은 너무나도 많은 우연과 기적이 필요하다. 그리고 작전에 기적이 포함된 순간 그것은 이미 작전이 아니다. 신에게 비는 기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것을 이 여자는 당당히 작전이라 말하고 있다.
거기에, 이 작전엔 너무나도 큰 문제가 있다.
“미안하지만, 그 작전엔 너무 큰 문제가 있군.”
그것을 말한 것은 대장이었다.
“루크 녀석은 싸우는 것을 목적으로 하면, 머신도 머시너리도 탈 수 없다.”
“네? 그게 무슨 소리에요?”
레이나는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을 하였다. 하지만 대장의 말은 모두 사실이다. 나 스스로가 말하긴 그렇지만 나는 기계를 상당히 잘 다룬다. 어떤 작업에도 잘 사용하며 기계에 성능도 최대한 잘 살릴 수 있는 재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물론 대장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까지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나로서도 머시너리의 용도인 전쟁이나 전투만큼은 할 수 없다.
그 이유를 물어본다면….
상처받고, 상처 주는 것이 두렵다. 이건 누구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 하지만 아까 테스트에선….”
“그건 프로그램이잖나. 녀석은 정말 진지하게 그런 단점을 가지고 있기에 아닌 건 아니라고 확실히 선을 긋지.”
대장은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은 어쩌면 내가 가진 그 단점에 아쉬움을 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머시너리에 타서 머시너리에 손상을 입힐 때마다 느껴지는 감각은 아무리 느껴도 익숙해지지 않고 익숙해지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파일럿과 머시너리가 하나라고 하신 거군요.”
레이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굳이 그쪽을 바라보진 않는다. 그녀의 얼굴에 실망감이 담겨있을지 한심함이 담겨있을지 알고 싶지 않다. 내가 남이라도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변명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분명 그저 겁쟁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것이 뻔하다. 그렇게 생각해도 이건 분명 나에겐 현실이니 아무런 반응도 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내가 예상한 것과는 달랐다.
“그러니까 그런 움직임이 응용이 가능하군요! 마치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으로 머시너리를 움직이니까 당연히 응용력이 뛰어날 수밖에! 그런 당신이라면 분명 최고의 파일럿이 될 거에요! 역시, 루크 당신이 이 작전에 최고로 적합해요!”
제대로 듣지도 않았다. 그 허무함에 그녀의 얼굴을 봤지만, 미리 예상했던 것과는 정반대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실망감도 한심함도 아닌, 기대감을 그 표정에 담고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난 머시너리로 싸우거나 하는 건 무리라….”
“확실하게 말해서, 자신이 탑승한 머시너리가 부서지거나 하는 게 싫은 거죠?”
“어? 어, 응, 그렇긴 한데.”
묘한 압박감이 느껴진 탓인지, 말이 끊고 돌아온 질문에 얼떨결에 답하고 말았다. 그 답을 들은 레이나는 이내 나에게서 시선을 때곤 나를 제외한 정비사들을 바라보며 물어보았다.
“제가 아까 말했던, 밖의 저 머시너리를 이곳까지 한 번에 밀고 들어올 수 있을 정도의 힘을 낼 수 있는 머신을 만들 수 있으신가요? 지금 이곳에서, 저걸 개조해도 되니까요.”
그녀는 손가락으로 내가 탑승하고 있었던 머신을 가리켰다. 정비사들은 한참을 웅성거리다가 결국엔 대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결과적으로 모든 행동은 이곳의 관리자이자 책임자인 대장의 결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대장은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을 받곤 레이나를 바라보았다. 레이나 또한 대장을 바라보았고, 대장은 이번에도 한숨을 쉬곤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요! 그럼 시작하세요!”
“어?”
“뭐해! 지금부터 시작한다!”
레이나의 말과 함께 대장 또한 움직였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정비사들은 주변에 흩어져 있던 설비들과 부품들을 긁어모으기 시작하였다. 분명 진심인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잠깐! 난 못한다니까?!”
“루크, 당신의 단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어요.”
레이나는 기다렸다는 듯, 내 말에 즉각적으로 입을 열었다. 그 입에선 역시나 이번에도 터무니없는 답이 튀어나왔다.
“적한테 한 대도 안 맞으면 되잖아요?”
“그걸 말이라고 하냐!”
홀로 외롭게 외치는 나를 무시하고, 상황은 점점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대장은 위층과 연락을 하여 작전을 설명하였고, 위에서도 이 도박에 찬성한 듯하였다. 이렇게 모두가 찬성한 작전은 진행 속도가 가속하여 순식간에 그 발판을 만들어 냈다.
본래라면 정비를 위해 움직일 뿐인 머신이 가히 악마 같은 개조를 통하여 단순한 철판이라면 꿰뚫어버릴 정도의 순간 가속과 힘을 지닌 파괴 병기로 변하였다. 그 변한 모습의 머신은 어째서인지 흐를 리 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 같았다.
“…뭐해요? 빨리 준비하세요.”
그런 묘한 감정을 느끼던 나를 레이나는 이상한 사람 보듯 보았다. 하지만 뭐라 말할 것도 없었기에 조용히 그 머신에 탑승하였다. 가볍게 조종간을 잡고 움직여 위층의 대피소로 연결되는 통로를 향해 갔다.
“루크! 받아라!”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무전기가 날아오고 있었다. 황급하게 받아들어 던진 상대를 찾자, 대장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었다. 내 단점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저러니 이젠 그냥 단념하는 수밖에 없겠다.
“일단 그 무전기로 이쪽과 연결 될 거다. 오퍼레이터가 대신이라고 생각해라.”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통로로 들어갔다. 사다리와 계단이 혼합된 구조의 통로를 한참 올라가자, 이내 위층의 대피소에 있었던 사람들이 날 반겨줬다. 맨 앞에는 무전의 상대로 생각되는 여성이 서 있었다.
“당신이 루크죠? 잘 부탁해요.”
그녀가 이곳의 리더인지, 그녀의 말이 끝나자 다른 사람들도 나에게 각종 격려의 말을 건네주었다. 부담감을 느끼면서도 책임감과 자신감이 함께 늘어나는 감각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시작이 다가왔다.
대피소 입구에 자리 잡아 몸체를 최대한 숙였다. 가속을 하기 위한 장치인 부스터도 제대로 확인을 한다. 누군가 카운트다운을 세는 것 같았지만 점점 집중하기 시작하자 거의 들리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다.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은 단 하나, 이 문이 열리자마자 날아가는 것이다.
대피소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희미하게 외부의 군인들과 연구원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그들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경계했지만, 경계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그들은 그 문에서 나오는 것에 전혀 대처할 수 없을 것이다.
“가라!”
누군가의 외침이 들림과 동시에 가속 장치를 가동시킨다. 그 순간 엄청난 압박이 몸을 조여 왔고, 주변의 풍경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중간에 몇 번의 충격이 있었지만 이정도 가속엔 별로 의미가 없다.
뒤늦게 몇 군인들이 총구를 겨누려 하지만 이미 내 눈엔 아래층으로 내려갈 수 있는 커다란 구멍이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가속 장치를 끄고 몸체를 뒤로 향한다. 본래 날아오던 힘에 의하여 몸체를 돌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날아간다. 가속의 힘이 떨어지자 속도가 느려짐과 함께 구멍으로 떨어진다.
갑작스러운 등장에 군인들과 연구원들은 물론, 머시너리에 탑승하고 있던 자들까지 당황한 것이 보인다. 멀리 보이는 시야로는 대피소의 문이 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다시 가속 장치를 기동시킨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나를 잡으려던 머시너리가 있었다. 분명 순식간에 브랜드를 제압했던 상대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잡힐 순 없다. 다가오는 손의 아래로 몸체를 향하자, 가속 장치의 가속에 의해 옆으로 튕겨나갈 것만 같았다.
“크으으윽!”
억지로 조종간을 잡아당겨, 쓰러져 있는 머시너리를 향한다. 몸체의 아랫부분에 그대로 부딪친 뒤, 지금까지 쓰지 않던 양 팔을 앞으로 향하여 미는 자세를 취한다. 남은 것은 가속 장치를 최대로 기동시키고, 온 힘을 담아 이것을 대피소까지 밀고 가는 것이다. 하지만 부딪친 순간 느껴지는 무게감에 불안해지기 시작하였다.
과연 내가 이걸 옮길 수 있을까?
거기에 부딪치는 순간 주변의 모든 시선들이 나에게 집중된다. 기분 좋은 관심이 아닌, 살기를 띈 관심을 받으니 그대로 몸이 무너질 것 같았다.
하지만….
[밀어요!]
그 모든 것을 깨끗하게 치워준 것은 레이나의 목소리였다. 무전기를 통해 들려온 그녀의 짧은 한마디에선, 불안해하고 고민해봤자 변하는 것은 없다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 같았다.
이래서야 대피소 안에서 풀이 죽어있던 그녀에게 뭐라 한 내 체면이 서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고, 조종간에 힘을 담아 앞으로 밀었다.
잠깐 정체되었던 움직임이, 급속도로 움직인다. 머시너리와 바닥 사이에서 불꽃이 튀기며 엄청난 마찰음을 낸다. 머신은 이미 반쯤 떠있는 상태다. 그 상태에서 옆으로 튕겨나가지 않게 조종간에 힘을 주며, 오직 앞을 바라보며 나아간다.
어느 순간부터 총성이 들려오고, 거대한 머시너리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분명 내 뒤로는 추격과 총격이 함께 오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다른 행동을 취하진 않는다. 오직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몸으로 느껴지는 압박이 한도에 다다랐다고 느꼈을 땐 이미 대피소의 내부로 들어온 후였다. 가속 장치는 이미 그 힘이 다해 꺼졌지만, 역시나 관성의 법칙은 존재하였다.
“닫아!!!”
어렴풋이 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내 의식은 머신이 대피소의 벽에 부딪치는 것과 함께 끊겨졌다.
◆
“천천히 옮겨! 그건 이쪽이다!”
머리가 울릴 정도로 큰 소리가 들렸다.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두통에 눈을 뜨자, 대피소 내부의 풍경이 보였다. 많은 정비사들이 움직이고 그것을 대장이 지휘하고 있다. 꽤 멀리 있는 그의 목소리가 이정도로 크게 울린 다는 것은 단순히 그의 목소리가 큰 게 아니라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대피소로 들어올 때의 충격으로 머리가 어떻게 된 것 같다.
주변을 둘러보자 모포가 있는 것을 보니, 머신에서 꺼내 여기에 눕혀둔 것 같았다. 아픈 머리를 한 손으로 지탱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녀가 어느새 다가오고 있었다.
“괜찮아요? 그 상태에서 외상이 없다니 운이 좋았네요.”
오히려 내상을 입은 것 같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런 그렇고, 지금 뭐하는 거지?”
“아, 머시너리의 조종석이 너무 손상되는 바람에 당신이 탔던 머신의 조종 설비로 때우는 작업 중이에요. 도대체 어떻게 그 두 개가 공유되는지는 모르겠지만요.”
본래라면 상당히 간략화 되어 있는 머신의 조종 설비와 머시너리의 조종 설비는 공유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이 어디인가. 공유되지 않는 다면 되게 개조하고 만들어내면 되는 것이다.
물론 내가 생각하기에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들이라면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뭐, 어차피 저걸 타는 건 당신이니까요.”
“저번부터 생각한 건데, 남들한테 무책임하단 소리 듣지 않아?”
“아뇨?”
고개까지 갸웃거리면서 정말 들어본 적이 없다는 표정으로 말하는 그 모습에 묘하게 화가 난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가 가만히 보고만 있자 어깨를 으쓱하는 레이나. 역시나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대신 감이 좋다는 소린 많이 들어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만약에 그 작전대로 해서 상대 머시너리가 한 대라도 살아남는다면 어떻게 할 거지? 그렇게 되면 당신의 감은 틀리게 되는 건데?”
“당연히 그땐 당신이 마저 쓰러트려야죠. 그렇게 되면 제 감은 역시 틀리지 않은 거잖아요?”
무심결에 주먹에 힘이 들어갔지만 차마 손을 들진 못했다. 분명 그 뒤로 이어진 그녀의 말 때문일 것이다.
“전 당신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해요. 테스트 결과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말한 머시너리와 파일럿이 하나라는 사고방식이라면 말이죠. 그건 정말 목숨을 건다는 말이랑 똑같은 거죠. 그런 사고방식과 그것을 지켜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당신이라면, 분명 가능해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녀는 분명 그저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말에서 느껴지는 근거 없는 확신과 믿음에, 어째서인지 내 목숨을 걸게 된다. 성공하든 성공하지 못하든, 어느 쪽이든 잃는 것은 크다.
분명 기술이나 정보 같은 것에 목숨을 걸 정도로 난 그쪽에 애정이 깊은 사람은 아니다. 그와 동시에 지금은 누구라도 좋으니 이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분명 하고 있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 그리고 그 할 수 있는 사람이 나뿐이라면, 내가 해야만 한다.
“하아…, 실패해도 책임은 못 지니까.”
“걱정 안 해요.”
레이나의 말에 한숨을 쉬던 순간, 폭발 소리와 함께 대피소가 크게 흔들렸다.
“뭐, 뭐야!?”
“…당신이 돌아온 후부터 몇 분 단위로 반복되고 있어요. 카메라로 확인 해보니 온갖 방법으로 대피소 입구를 두들기고 있더군요. 대장님의 말씀대로라면 일단은 안전하겠지만, 이대로 있다간 어떻게 될지 몰라요.”
“거기 둘, 이리 와봐.”
레이나의 말에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할 무렵, 대장이 우리를 불렀다. 슬슬 멈추는 진동에 오히려 조용한 공포를 느껴 뛰어 가보니 그곳에선 때마침 정비를 끝낸 머시너리가 있었다. 처음 봤을 때와 달라진 것이라곤 조종석에 생긴 흉측한 구멍을 억지로 덧댄 정도였다. 그 조종석을 보니 그제야 기억난 것이 있었다.
“…타고 있던 파일럿은?”
내 말에 대장도 레이나도 고개를 저었다. 분명 더 이상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으리라. 대피소의 구석을 보자 모포를 몇 겹이나 올려놓은 무언가가 있었다. 그 주변엔 검붉은 자국이 난자하였고, 그것을 보자 두려움과 함께 기분 나쁜 뭔가가 느껴졌다.
저것은 내 미래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이 아마 원인일 것이다.
“크흠, 일단 정비와 수리를 거듭한 결과, 현재 이 녀석의 상태에 대해 말해두지.”
대장은 순간 암울해진 분위기를 치워내고 머시너리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였다.
“일단 기동으로는 30분. 아래의 이동 장치를 사용하면 10분. 사실상 고속 이동 말곤 할 시간조차 없을 테니 이 녀석이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은 10분이겠지. 사용 가능한 무장은 등에 달린 이 거대한 캐논뿐이다. 실탄은 한 번도 안 써서 5발. 에너지 계통으로 탄환을 바꾸면 앞으로 3발 쏠 수 있다. 그러니까 적어도 한 놈한테 2발 이상 쏘면 더 이상 무기는 없단 소리지.”
개인적으론 더 암울해졌다. 즉, 난 이 녀석을 타고 10분 만에 모든 상황을 정리해야 된다는 것이다.
더 이상 생각하면 정말 포기할 것 같으니 생각하는 것을 그만 두었다. 지금은 그냥 이 포대…, 캐논을 대피소 문이 열리자마자 발사할 생각만 하자. 아까 봤던 그 위력이라면 충분히 성공하리라 믿는다. 레이나와 있을 땐 이러지 않았던 것 같지만 일단 넘어가자.
“거기에 머신의 조종석 설비를 억지로 쑤셔넣었으니까 말이다. 레이더나 관측 관련 설비는 완전히 먹통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여긴 이 아가씨한테 맡기자는 거지.”
레이나는 자신이 지목된 것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장이 연이어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은 무수히 나열된 감시 카메라 화면들과 무전 장치였다. 본래 있었을 화면들이 보다 많아진 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 이 층만이 아니라 다른 층의 카메라가 비추는 화면들이 모여 있었다.
“우리도 도와주겠지만, 일단 그쪽이 오퍼레이터 역할이다. 할 수 있겠지?”
“물론이죠!”
즉답하는 레이나가 내심 부러워졌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고개를 저어 지워버리고, 나는 곧바로 머시너리의 조종석을 향해 갔다. 조금이라도 미리 감각에 익숙해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내가 가는 것을 막지 않았고, 오히려 시작의 때가 다가왔다는 것을 알았는지 각자의 자리로 갔다.
그런 와중에, 레이나는 아직도 그 자리에서 조종석으로 올라가는 날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내가 뭔가 하길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조종석 바로 앞에 멈춰서 레이나를 내려 보았다. 역시나 그 얼굴은 뭔가를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
엄지를 치켜세워 보았다. 그러자 웃더니 곧바로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정말 이걸 기다린 건가하는 의문이 들긴 했지만, 그건 되돌아와서 물어보자는 생각으로 조종석에 들어갔다.
조종석의 내부는 상당히 복잡한 편이었다. 조종간과 보조 스위치 등의 설비들이 신식과 구식의 적절한 혼합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남은 부품으로 억지로 때운 것에 가까우니 오히려 제대로 작동되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정도지만.
제대로 좌석에 앉아 조종간을 쥐어보았다. 나쁘지는 않은 기분에, 조종석의 입구를 닫고 기동을 시작하였다. 머시너리는 대피소로 들어올 때부터 누워있었기에 몸을 일으켜 세웠다. 기계음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오고 육중함이 몸으로 체감되었다. 테스트로 쓰이는 시뮬레이터에서 느끼던 감각과는 차원이 다른 실체감에 묘한 고양감이 느껴졌다.
[잠깐! 적이 움직여요!]
레이나의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또다시 대피소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방금 진동은 대피소 입구에서 폭탄을 터트려서 일어난 거 같아요. 아마 그게 마지막이었는지 강습형 4기 중 1기와 문제의 머시너리가 위층으로 이동한 거 같아요.]
브랜드를 죽인 머시너리에게 알 수 없는 공포감을 느껴서 일까, 나는 지금이 작전을 시작할 때라고 느꼈다.
“입구를 열어줘.”
그것을 그대로 말하는 것으로 표현하자, 다른 사람들도 아무런 말없이 그대로 행동으로 옮겼다.
폭발의 여파로 대피소의 문이 불안하게 떨리며 열린다. 그 틈으로 검은 연기가 들어오고, 외부의 정비소가 어렴풋이 시야로 들어온다. 이미 캐논은 에너지계열로 발사체를 조정한 뒤, 정면을 겨누게 해두었다. 문이 캐논의 여파로 파괴되지 않을 수준까지 열린 것을 확인한 뒤, 단 1초의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캐논의 끝에서부터 엄청난 빛이 나더니 뭔가가 발사된다. 번개가 일직선으로 내려친다면 이런 것일까. 푸르스름한 전격의 덩어리는 앞에 있던 정비 시설과 함께 모든 것을 날려버렸다.
문이 열리기 시작할 때부터 경계 태세를 갖추던 상대라 하더라도, 정비소 통로의 반을 집어삼킬 수 있는 굵기의 포격을 피할 순 없을 것이다.
[2기 대파! 1기 남았어요!]
하지만 그 생각은 반쯤 맞았다.
시야가 돌아오자 남은 머시너리 한 기가 나에게로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대피소 내부에 피해를 줄 순 없기에, 나도 상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전진 하였다. 상대는 물론 강습형이기에 빠르긴 하지만, 기동력 자체는 내가 우위에 있다. 검게 그을린 바닥에서 가볍게 발을 움직이자 엄청난 속도로 상대와 가까워진다.
그냥 겉으로 봤을 때도 충분히 느꼈었지만, 직접 체감해보니 엄청난 장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에 감탄하던 것도 잠시, 나를 제압하려는 것 같이 몸을 부딪치려 하는 상대를 피해 바닥을 박차 올랐다.
너무나 순간적인 행동에 후회했지만, 이 머시너리는 나의 움직임을 따라와 줬다. 화면으로 보이는 것은 상대 너머의 정비소였다. 그것을 깨닫곤 곧바로 몸체를 돌리며 바닥에 착지한다. 그와 함께 탄환을 실탄 계열로 교체하고, 상대가 나를 향하기 전에 방아쇠를 당긴다.
아까와는 달리 단발적인 소리가 들렸고, 강한 파열음과 함께 상대의 몸체가 그대로 날아갔다. 고개를 돌려 주변에 더 이상의 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갑작스레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곧바로 들려온 레이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내 목숨을 위험하게 할 행동이었다.
[위층에서 접근!]
위층과 연결된 곳은 현재 2곳이기에, 빠르게 그 두 곳이 모두 시야로 들어오는 곳으로 이동하였다. 그러자 방금까지 내가 있었던 곳에 기다란 흉기가 내려찍혔다. 주변으로 파편이 튀기고 지면이 울릴 정도의 묵직함은 내가 다시 긴장하기에 충분했다.
[집중하세요!]
“…알았어.”
방금 상대가 내려온 곳은 브랜드가 만들어낸 구멍이었다. 그 너머로 시선을 향하자, 그곳에서도 역시 또 다른 머시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두 머시너리 중 어느 하나도 브랜드를 죽인 것과는 다른 모양새였다.
“설마 지원군인가?”
정확히는 본래 이곳을 함께 습격한 무리 중 하나일 것이다. 분명 위에서 아래로 진입하려는 것을 막고 있었겠지. 그렇다면 이렇게 하나 둘 씩 올 때 빨리 제거해야한다.
그런 생각에 또다시 방아쇠를 당긴다. 하지만 이번엔 보이는 정면이어서 그런지 가까이에 있던 상대가 피해냈다. 오히려 검이라기 보단 둔기에 가까운 흉기를 휘두를 기세로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제길!”
곧바로 조종간을 조작하여 몸체를 벽에 밀착시켰다. 그리고 강하게 휘둘러지는 흉기를 몸을 숙여 피해낸다. 정비소의 벽을 완전히 갉아내다가 도중에 멈춘 흉기를 확인하곤, 앞으로 가속했다. 뒤에 있던 머시너리는 나의 행동을 보고 무기를 꺼내든다. 이쪽은 머신건이다. 그것도 기존의 것과는 다르게 엄청난 크기였다.
나는 상대가 나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것을 확인한 후, 망설임 없이 위층에 난 구멍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선 본래 위아래를 왕래하는 용도인 통로를 향해 전력으로 이동했다. 캐논의 포구를 아래로 향한 채.
분명 상대로 내가 위에서 내려올 것을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난 그것을 피할 것을 예상하면 된다. 그런 생각을 하며 탄환을 에너지 계열로 바꾼다. 그 사이에 이미 통로는 코앞으로 다가왔고, 거의 나는 것 같이 통로로 뛰어들었다. 순간적으로 보이는 상대는 위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고, 상대보다 빠르기를 바라며 방아쇠를 당겼다. 또다시 엄청난 빛과 함께 거대한 발사체가 아래를 향해 발사되었다. 그와 동시에 상대도 머신건을 발사했지만, 에너지 캐논는 그 탄환을 녹이면서 지면에 충돌하였다. 이번엔 지면에 닿아 거대한 폭발이 동반하였다. 그 충격은 조종석까지 닿았지만, 그것을 억지로 참으며 땅에 떨어지기 전에 벽을 밟아 다시 정비소의 내부로 뛰어들었다.
정비소 내부로 돌아오자마자 날 기다리던 건 휘둘러지는 거대한 둔기였다. 곧바로 뒤로 이동하였지만 빠른 반응에도 불구하고 몸체의 끝부분에 닿았다. 그것만으로도 조종석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하는 것을 무시하고, 탄환을 실탄으로 바꾼 후 몸체를 그대로 상대에게 부딪쳤다. 그리고 그대로 계속 앞으로 밀어냈다. 상대는 달라붙은 나를 때내려 둔기를 휘두르려 했지만, 그 순간에 맞춰 보다 빠르게 뒤로 이동했다. 상대는 이미 무기를 휘두른 상태였기에 틈이 발생하였고, 난 그 틈에 맞춰 방아쇠를 당겼다.
역시나 이번에도 파열음이 들리며 머시너리가 파괴되었다.
“……죽겠….”
[뒤!]
말도 제대로 끝내지 못한 채, 레이나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몸조차 돌리지 않고 옆으로 움직였다. 그 순간 내 옆을 거대한 뭔가가 엄청난 속도로 스쳐지나갔다. 화면으로 비추는 그것은, 브랜드를 죽인 머시너리였다. 분명 내가 레이나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브랜드와 똑같은 방법으로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번 피해냈다고 안심할 수 있을 리 없다. 지금까지의 머시너리들과는 달리, 상대는 나와 똑같은 기동력을 지니고 있다. 거기에 분명 싸우는 파일럿으로서의 경험도 나보다 압도적일 것이다.
상대의 무기는 손에서 꺼내는 기다란 칼날, 내 무기는 실탄 계열 2발과 에너지 계열 1발이 남아있다. 공격 가능한 횟수가 3번이나 되는 것은 다행이지만, 그것은 상대가 그 틈을 줄 때의 이야기다.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상대는 나에게 칼날을 휘둘렀다.
“큭!”
그것을 아예 뒤로 넘어지다시피 몸을 넘겨 피한 뒤,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내 등이 바닥에 닿음과 동시에 상대의 오른쪽 어깨가 파괴되었다. 칼날은 오른팔에 장착되어 있었기에 이 결과가 상당히 기뻤지만, 그것은 왼팔에서 나오는 칼날에 순식간에 반전되었다.
쓰러진 몸을 반쯤 일으킬 때, 이미 상대는 내 바로 앞에 와있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앞으로 몸을 숙이고 그대로 가속하였다. 덕분에 칼날은 몸체에 닿지 않았다. 단, 캐논의 긴 포신이 중간에서 잘려나가고 말았다.
그것을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상대를 앞으로 밀어버린다. 그 직후 상대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아까 둔기를 휘두르던 상대와 같은 방식이었지만, 이번엔 상대의 움직임이 보다 빠르다는 것과 잘려나간 포신이라는 점이 실패 요소가 되었다. 하지만 상대는 탄환을 피한 후 움직임을 멈췄다.
“……?”
그 순간, 소음에 가까운 소리가 들려왔다.
“뭐, 뭐야?!”
그 소리의 근원지는 앞의 머시너리였다. 마치 라디오의 노이즈와 같은 그 소리는 점점 조용해지더니, 이내 사람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그 머시너리에 타고 있는 파일럿, 들리나?]
남성의 목소리, 그것도 상당히 굵은 목소리였다. 지금 같은 상황에 갑자기 이러는 것은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멋대로 안 쏘는 것을 보니 들리나 보군. 그렇다면 제안을 하나 하지.]
설마 여기까지 와서 말로 해결하자는 것인가.
[우선 더 이상의 전투는 우리에게 손해다. 우린 본래 기술의 탈취와 뺏긴 기술을 돌려받는 것이 목적이었거든. 전자의 경우엔 사실 복수나 다름없기에 굳이 이루지 못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엔 다르지. 네가 타고 있는 그 머시너리는 파괴되어야 한다. 덤으로 제작에 연루된 인간들도 말이지. 데이터 쪽은 이미 어느 정도 정리했다지만, 이렇게 떡하니 예시가 있으면 안 되지 않겠어? 그럼 여기서 제안이다. 그 머시너리만 파괴시키게 한다면 이대로 물러나겠다. 혹시 이대로 싸울 생각은 안하는 게 좋을 거다. 그 상태의 포신으론 절대 날 맞출 수 없다.]
이건 또 무슨 헛소리야.
중간부턴 듣지도 않았다. 마지막엔 뭔가 도발에 가까웠다는 것만은 알겠다. 도대체 적이 말하는 목숨만은 살려준다는 말을 믿는 인간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물론 정말 그래준다면 고마울 따름이지만, 역시 생각할 가치도 없는 말이다.
하지만 정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전을 통해 물어보았다.
“어떻게 할까.”
[엿이나 먹으라고 해…, 라고 대장님이 말씀하시네요.]
역시 그렇지.
사실은 레이나의 본심일거란 생각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리곤 조종간을 쥔 손에 힘을 줬다.
그 움직임을 눈치 챈 것인지, 상대 파일럿은 말하였다.
[유감이로군.]
그것을 끝까지 듣기도 전에, 앞으로 달려 나갔다. 상대도 마찬가지로 나에게 달려왔다.
상대가 한 헛소리뿐인 말 중에 맞는 말이 딱 하나 있었다. 분명 이런 포신의 캐논으로는 상대를 제대로 맞출 수 없단 것이다. 하지만 그건, 움직이는 상대를 멀리서 쏠 때를 말한다.
머릿속으로 테스트 당시의 느낌을 기억해낸다. 나 스스로가 자신의 팔을 뜯어내던 것을. 그리고 생각한다.
사람은 때때로, 살기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희생을 감수하는 법이다.
“으오오오옷!!”
상대와 격돌하기 직전, 몸을 숙인다. 상대가 조종석을 노릴 거라 확신했기에, 그 칼날은 정확히 내 머리 부분을 날려버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짧아진 내 캐논의 포신은 상대의 몸체에 닿아있었다.
이미 탄환은 마지막 남은 에너지 계열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내 시야가 하얗게 물든다.
◆
“…그래서 이번 사건은 국가 수준에서 묵인하는 걸로 넘어갔어요. 애초에 먼저 일을 벌일 것은 이쪽이니까요. 거기에 상대가 비교적 강대국이라서 그런지 그쪽에서 애초에 습격한 적이 없다고 하니까…, 상대적 약소국인 우리 쪽에선 뭐라 할 수도 없죠. 덕분에 저희 부서는 통째로 폐지되고, 저랑 일하던 사람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어요. 즉, 지금은 백수에요.”
“…결국 그게 내가 공격받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당연히 루크, 당신이 그 사건의 해결사니까 그렇죠. 이미 당신은 파일럿으로서 유명해졌어요. 거기에 작전 하나를 당신 때문에 말아먹은 거니까 적국이 당신을 노리고 습격하는 거겠죠.”
“…….”
“아, 참고로 그 머시너리는 제가 빼돌렸어요. 나름대로 수리도 끝마쳤으니까 지금부터 쓸 수 있을 거 에요. 어때요? 같이 일해 볼래요?”
“……하, 젠장. 고작 정비공한테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거 아냐? 그러고 보니 저번 그 사건 때, 시작하기 전에 날 보고 있던 이유가 뭐야?”
“네? 아아, 그거요? 마지막이 될 수도 있으니까 얼굴 좀 봐두려고 했죠.”
“…….”
“장난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머시너리의 이름을 붙이게 해줄게요. 뭐가 좋겠어요?”
“…메카닉.”
“네? 설마 자기가 정비공이라고 그런 이름 붙이는 거 에요?”
“……어쨌든! 저것 봐! 벌써 뚫고 들어왔잖아! 어디 있어?!”
“네? 뭐가요?”
“머시너리!”
“네? 뭐요?”
“……메카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