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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이상하다.

남자는 캔버스에서 시선을 떼고 정면을 응시한다. 어딘가 이상하게 기울은 듯한 그림의 구도가 그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 그는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시 지우개질을 시작한다. 회색으로 번지는 지우개의 흔적 탓에 남자는 골을 낸다.
팔을 치켜든다.
던진다.
지우개가 날아가 벽에 부딪힌다.
둔탁한 소음이 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도 모델은 움직이지 않는다.

파티는 며칠 남지 않았다.

남자는 진정하려고 애쓴다. 며칠 남지 않았다는 그 사실이 남자를 지금 독촉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의 나열만으로도 사람은 분노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분노해서는 안 된다. 절제하지 말아야 할 것은 분노가 아니다.

남자는 다시 4B 연필의 끝을 강하게 쥐고 선을 그려나간다.

시간이 흐른다. 어느새 캔버스 위에 완성된 밑그림이 그려져 있다. 남자는 캔버스 옆에 있는 가방을 뒤적거리며 물감을 찾는다. 물감은 몇 달 전에 MC&D에서 후원받은 것이다. 후원의 대가는 없다. 그가 그걸 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광고 수입은 엄청나니까.

또 다른 압박의 이유다.

몇 번의 고민 끝에, 붓질이 빨라진다. 캔버스 위로 붉고 검은 무언가가 그려지고 있다. 무언가는 기이한 형태로 몸을 배배 꼬고 있어, 마치 악신에게 바치는 최후의 제물이라도 되는 것 같다.
남자는 그 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
돈이다.

온 몸에 유화 물감이 묻은 채, 남자는 미친 듯이 그려가고 있다.
모든 신경을 캔버스 위로.
붓은 제 스스로 움직이기라도 하는 듯이 신명을 타고 있다. 남자의 시선이 캔버스 위와 앞에 놓인 것을 교차한다.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붉은 얼굴에, 군데 군데 벗겨진 피부와 기이할 정도로 관능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델의 모습이 그의 망막에 기록된다.

구하기 쉽지 않은 모델을 구했다고, 그는 생각한다.


바라트 인근에서 벌어진 격전에서 구출된 사람들과의 면담 녹취록 중 일부. 당시 구출된 사람 중 일부는 성인이 아니었다. 아래 면담은 그 청소년들이 회복한 후 나누었던 것임.

A. C. : 아아, 좋아. 연결됨. 리처드 룽, 16세. 비주류군의 일원, 그러나 전투하지는 않았고.

R. 룽 : …

A. C. : 바라트의 정식 주민은 아니군요. 여기 서류에 기재되어 있지가 않은데.

R. 룽 : …

A. C. : 리처드, 긴장하지 않아도 돼요. 몇 가지만 물어 볼 거니까.

R. 룽 : …네.

A. C. : 당시 현장에서 모든 걸 목격했죠? 그들이 싸우는 걸.

R. 룽 : 네.

A. C. : 힘들었을거 알아요. 그래도 이겨내야해요. 친구들도 그래야할거고…

R. 룽 : …

A. C. : 자 그럼, 그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줘요. 그때 바라트의 분위기, 오가는 말들… 등등.

R. 룽 : …그때…


인물들의 사진이 화면에 뜬다. 그 아래에 푸른 바탕, 흰 자막. “이 주의 실종 인물들.”

거므스름한 새벽 공기가 달음박질 소리에 깨어났다. 한 인영이 부리나케 어둠 속에서 인가로 달음박질하고 있었다.

앵커 : 희생자들은 전원 NY 소속으로…

사진 하나가 클로즈업 된다. 역시 푸른 바탕에 흰 자막으로, 애런 다머(22), 바라트 1구 아다메 가 거주.

한 낡아빠진 주택의 문으로 인영이 달려들었다. 현관의 불빛에 사람의 얼굴이 드러났다. 젊은 여자의 얼굴이었다. 희어멀건한 얼굴색이 더욱 파리해져 있었다. 입가는 간헐적으로 경련하고 있었고, 먼 거리를 뛰어온 탓에 숨은 거칠어져 있었다.

앵커 : 치안대 당국은 용의자 역시 NY 소속일 것으로 상정하고 수사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현장의 클래리스 자비터리고 기자와 연결해보겠습니다. 자비터리고 기자.

여자는 문을 크게 두 번, 작게 한 번 두드렸다. 잠시 뒤 문이 벌컥 열렸다. 마른 흑인 남자가 걱정이 어린 얼굴로 그녀를 맞이했다.

"제가 늦지는 않았나요?" 여자는 긴장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빨리 들어와요. 막 시작했어요."

여자는 남자를 따라 안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수입하지 말고 창조를 해"라고 적힌 꿈틀거리는 그래피티를 배경으로 기자, 화면에 잡힌다.

기자 : 저는 지금 바라트 1구 아다메 가와 뉴런 가 사이에 위치한 마릴린 터널에 나와 있습니다. 인근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이곳 마릴린 터널은 예로부터…

그들이 걸음을 멈춘 곳은 꼭 일곱 살짜리의 어린 아이가 꾸며놓았을 법한 방문 앞이었다. 남자는 한숨을 쉬더니 문을 어루어만지고는 여자가 현관에서 그랬듯 문을 크게 두 번, 작게 한 번 두들겼다.

문이 열리자, 여자는 밖에서 예상한 것보다 훨씬 큰 방 안의 구조에 내심 놀랐다. 그냥 큰 정도가 아니라 거의 학교의 교실을 두 개 정도 붙여놓은 수준으로 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 안에는 거대한 원탁이 놓여 있었고, 8명의 사람들이 빙 둘러 앉아 있었다. 오직 두 자리만이 비어 있었다. 여자는 자기가 제일 늦은 것을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여자와 남자는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걸음을 들여놓았다. 방 안에 있는 유일한 목재 의자에 앉은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여자의 귀에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와, 릴리. 넌 니콜라이 옆에. 체프리지 씨는 제자리로 오세요."

릴리는 의장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씩 웃었다. 짙은 눈썹과 강렬한 눈빛이 조화를 이루는 얼굴이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하도 오래 본 얼굴이지만 언제 봐도 새로운 면모를 찾을 수 있는 얼굴.

체프리지는 의장의 옆에, 릴리는 니콜라이라고 불린 남자 옆에 앉았다. 니콜라이는 말 없이 리브에게 눈으로 인사했다.

"무슨 일 터졌어요? 이런 밤에 호출을 다 하고."

릴리가 묻자 니콜라이는 어깨만 으쓱해보였다. 그럼 그렇지, 하고 릴리는 입을 삐죽였다.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고서야 말을 하지 않는 남자였다. 그녀가 그와 친해진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릴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자의 말과 함께 몇 개의 그래피티가 보인다. 터널 한 쪽 구석에서 노동자 수십 명이 흰색 페인트로 그래피티들을 지워나가는 모습이 포착된다.

기자 : NY 소속 거주민들의 분쟁 온상지라고 하며, 치안대 기록에 따르면 실제로 이곳에서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신고 역시 연간 70여건에 달한다고 합니다.

의장의 왼편에 아까 그 남자, 애런 체프리지Aron Chefrige가 앉았다. 그는 모임의 회동 장소를 제공했다. 오늘 그들이 앉은 이 방은 그의 아들이 쓰던 방이라고 들었다.
릴리는 그가 아들을 말할 때 어떤 표정으로 말하는 지 기억할 수 있었다.

그 왼편에는 앙헬 벤 서퍼Angel Ben Surfer가 앉았다. 금발 머리의 그는 정말 이름처럼 천사를 닮았지만, 릴리는 그게 외양 뿐임을 알았다.
그는 동물의 시체로 조각을 하는 인간이었다. 릴리는 한 번 그의 작품을 본 적이 있었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그 왼편에 신디 히미코 타카스키Cindy Himiko Takaski가 앉았다. 비니 아래에서 출렁이는 파란 머리와 기이할 정도로 긴 소매 셔츠를 입은 그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초현실주의를 현실상에 불러 낸 모습이었다. 그래서 릴리는 그녀가 좋았다.
릴리가 그녀를 쳐다보자 신디도 고개를 돌렸다. 두 예술가의 시선이 맞닿았다.
그러자 신디는 머리를 부여잡고 눈을 굴려보였다. 릴리의 입꼬리가 올라가자 신디 역시 씨익 웃었다. 그리고는 다시 왼 쪽의 남자에게로 관심를 돌렸다.

그 남자가 젠 카터 스미스Zen Carter Smith였다. 필리피노인 그는 변칙 회화를 주 부문으로 삼았는데, 4구에서부터 그들이 주로 모이는 1구까지 늘 성실하게 달려오는 사람이었다.

그 왼편에 도라 픽맨Dora Pickman이 책상 다리를 하고는 명상에 빠져 있었다. 젠과 같이 변칙 회화를 주 부문으로 삼고 있는 그녀는 특히 벽화를 많이 그렸다. 변칙 회화에 발을 들이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그녀가 16살 때 그린 ‘화룡점정’이라는 제목의 벽화를 들어봤을 것이다.
혹자는 봉이 죽은 이유를 그 벽화 때문이라고 일컬었다.
만일 픽맨이 NY 소속 예술가가 아니었더라면 이미 이름을 날리고 있었으리라는 평가는 자자한 지 오래였다.

그 왼편이 릴리였고, 그녀의 왼편이 니콜라이 코왈로브스키Nicholas Kowalovski였다.
그는 클래식 음악가였는데, 하도 자신의 작품에 대해 말하지 않아 릴리는 그가 작곡한 음악의 제목조차 알지 못했다.

그의 왼쪽에 허니 블랙 문Honey Black Moon이 앉았다. 긴 검은 머리에 흰 색이 군데군데 섞인 그녀의 특징적인 헤어스타일 때문에 릴리는 문을 만나자마자 이름을 외워버릴 수 있었다.
물론 만나자마자 쌍욕을 내뱉는 걸걸한 입담도 이름을 기억하게 된 이유였다.

그녀의 왼쪽이 변칙 소설가 뮤 이리나Mu Irina였다. 풀네임은 뮤 이리나 세계따먹는자주식회사Mu Irina WorldFuckerInc.였지만, 다들 성은 떼고 불렀으므로 뮤 이리나가 이름처럼 굳어졌다.

그녀의 왼쪽이 의장이었다.

다들 오밤중에 급히 끌려나온 모양인지 머리는 산발이고 얼굴은 피로에 찌든 사람이 대다수였다. 회원들이 쑥덕이는 투는 아무래도, 모임 일자도 아닌 때에 끌려나왔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듯한 뉘앙스였다.

의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헛기침을 했다. 순식간에 웅성이던 좌중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의장은 좌우를 둘러보다가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제이슨 태거너트Jason Tagunut가 죽었어."

카메라에 "예술가가 예술을 탄압하는가"라고 적힌 그래피티가 포착된다. 노동자 하나가 그 위를 흰색 페인트로 덮는다.

"그게 무슨 말이야? 태거너트가 왜 죽어?"

신디와 릴리가 동시에 소리쳤다. 릴리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제이슨 태거너트는 바라트의 사업가로, 그들에게 비밀리에 활동 자금을 대주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죽었다면…

젠이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럼 계획도 힘들어진다는 게 아닙니까…"

점차 무거운 공기가 방 안을 뒤덮기 시작하고 있었다.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불안감이 종이에 엎어진 커피처럼 찬찬히 제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허니 블랙 문은 그 분위기에 동조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에이 씨발. 거 벌써부터 오줌이나 지리지 말자고. 태거너트가 계획에 참여하기 전에도 우리는 성공할 수 있었으니까." 문이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무심결에 욕을 얻어먹은 젠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 쪽을 노려보았다.

"자세히 설명 해 봐, 미겔. 사건의 전말을 설명해 보란 말이야." 이리나가 턱을 괸 채로 물었다.

의장은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오늘 오후 7시경에 자택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어. 그 집 가정부한테 직접 들었는데, 아무래도 밈을 잘못 다룬 것 같다고 하더군. 하지만 아무리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태거너트처럼 잔뼈가 굵은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을 리가 없지. 분명 살인이야."

"그, 그런데 왜 아직 뉴스에 아, 안 나온 거야?" 앙헬이 말을 더듬었다. 큰 일이 일어나면 으레 나타나는 그의 버릇이었다. "주, 주류 예술가들 연애질은 자, 잘만 바, 방송하면서."

"검열했을거다." 체프리지가 앙헬이 말을 더듬으면서 생겨난 침묵을 깨고 말했다. "원래부터 비주류 예술가를 옹호하던 친구니, 그의 죽음이 크게 가시화 되는 것을 원치 않았겠지. 치안대에서 분명 압력을 넣었을 거야."

"니미 좆같은." 문은 주머니에서 껌을 꺼내서 씹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떡할거요, 대장? 죽인 새끼가 누군지는 몰라도 일은 해야지."

"맞는 말이야. 안타깝지만 죽은 사람한테 크게 신경 쓸 여력이 없을 것 같다. 더군다나 거사일도 다가오는데."

"그럼 복수도 안 한단 이야기야? 그건 좀 심한데. 우리가 동료가 죽던 말던 냅두는 싸이코패스 집단인가?" 뮤 이리나가 일어나면서 문을 쏘아보았다. 그녀 역시 지지 않았고 맞받아쳤다.
"정신병자 집단이 아니라 현실주의자 집단이지, 그 쬐깐한 우애 뭐시기에 집착하다가 다 뒤지면 니가 책임지실라우?"

"둘 다 입 다물어." 의장이 나직하게 말했다. 두 예술가는 말을 멈췄지만 서로 잡아먹을 듯 험악하게 노려보는 것은 여전했다.

릴리는 의장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딘가 슬퍼보이고 긴장한 듯한 얼굴.

기자 : 최근 발생하는 실종 사건 역시 이러한 분쟁이 증가함에 따라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 시청과 치안대에서는 다가오는 토요일, 공공 사업의 일환으로 이러한 시설들의 인식 재해성 그래피티를 삭제하고, 열린 공간으로 변모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할 것입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의장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이 일에 성공하면 복수는 물론이고 그 배로도 갚아줄 수 있어. 절대 평정을 잃지 마. 거사는 계획대로 치뤄진다."

탄성과 탄식 그 사이에 정의될 만한 소리가 테이블에 터져나왔다. 릴리는 의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뺨은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NY, Not Yet이 아니라 Never Yaff."라고 적힌 그래피티가 화면에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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