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베리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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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diciated to BlueBerry

*

나무를 들여놓지 말았어야 했나. 효원이 중얼거렸다. 나무를 들여놓은 뒤로 모든 게 다 말썽이었다. 화분을 넘어뜨린 고양이며, 혼난 고양이가 울어대서 올라온 아랫집이며, 정신없이 방을 치우다 발을 헛디뎌 넘어진 자신까지. 이태껏 나무들이 자신에게 해준 게 뭐가 있나, 그는 화가 치밀었다.

나무를 사온 건 2주 전이었다. 항상 지나다니던 길목에 있던 곳이었다. 블루베리를 나무에서 화분에서 키울 수 있던가, 효원은 놀랐다. 그 때 놀라지 말았어야 했다. 화분에서 자라는 블루베리에게 바치는 존경으로 효원은 집에 화분을 들여놓고야 말았다.

화분은 늘 어머니를 떠오르게 했다. 어머니는 평생을 식물처럼 사셨던 분이었다. 사업이 기울 때마다 이삿짐에 딸려가는 화분처럼. 언제나 아버지가 벌이던 사업을 식물처럼 바라보던, 아무말 없이 식물처럼 카운터를 보시던, 아버지에게 화 한번 내지 않으시던. 효원이 기억하는 어머니는 화분 속에 갇혀 있었다.

기울고 서던 수많은 사업에는 꽃집도 있었다. 고등학생이었던 효원은 식물이 식물을 판다고, 항상 속으로 중얼거렸다. 집에 놀러온 친구들에게 꽃집 구경을 시켜주고, 차를 내오던 어머니의 모습이, 효원에게는 식물의 가식으로 보였다.

이렇게 식물 생각이 자꾸 나잖아. 효원은 들여놓지 말았어야 할 나무에게 말했다. 블루베리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마치 어머니처럼.

가세는 급격하게 기울었다. 어머니는 식물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울어가는 가세를 따라 떨어졌다. 효원은 담임과의 대화를 아직도 기억한다. 효원아. 선생님은 너한테 기대가 크다. 네 성적이면 말이야. 음. 효원아. 왜 이런 얘기를 하는데 웃지를 않니. 또 집에서 엄마랑 싸우고 왔어? 어머니도 참. 이런 모범생을 얼마나 더 다그치시려고.

어머니는 싸우지 않았다. 적어도 효원과 싸운 일은 없었다. 어머니는 줄기를 뻗어내려고 새순을 돋아내는 나무처럼, 평생을 당신과의 싸움에 바빴던 사람이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진.

눈이 쏟아지던 날이었다. 눈길 조심하라고, 라디오가 교통사고 소식을 지직거리던 저녁이었다. 이 무렵 효원의 삶을 지탱했던 건 미래에 대한 환상이었다. 미래의 자신을 상상하기 위해, 주말마다 효원은 지금의 자신을 잊기 위해, 입지 못할 옷들, 사지 못할 것들을 보러 시내에 나가곤 했었다. 그 날도 그랬었다.

집에 돌아오자 아버지가 목각인형처럼 앉아 있었다. 웬일로 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효원아. 테레비 좀 봐라. 상도꽃집. 아버지의 이름을 딴 꽃집이었다. 아버지의 이름이 붙은 상도꽃집 티코는 동네를 돌아다니곤 했다. 그런 티코가, 산산이 부서진 꼴로 전파를 타고 있었다.

기막히게 광고된 꽃집은 문을 닫지 않았다. 쓰러진 어머니를 간병하려면 가게를 계속해야 한다는, 천재적 사업가 김상도 씨의 결정 덕이었다. 덕분에 꽃집은 아내를 병원에 보내고도 가게를 하냐고 나무라던 이웃들과, 아니라고, 티코가 그래뵈도 튼튼한 차라고, 너스레 떨던 김상도 씨의 대화로 가득했다.

김상도 씨가 성공을 예감했던 사업들처럼, 튼튼한 티코는 그 해 단종되어 마티즈로 바뀌었고, 티코가 보호해줬다던 어머니는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일생을 식물처럼 살았던 운명의 어머니는, 그 운명의 굴레에 더 빠져들었다.

어머니처럼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블루베리에게 속내를 털어놓은 효원은 쏟아드는 피로를 느꼈다. 자신의 삶을 피곤하게 만든 건 어머니도, 블루베리도 아닌 김상도 씨란 사실을, 효원은 알면서도 알지 못했다. 그런 걸 생각하기에 효원은 너무 졸렸다.

블루베리가 뭘 알겠나. 꿈에서도 효원은 생각했다. 그래. 블루베리가 뭘 알겠어. 블루베리가 대답했다. 그래, 뭘 알지 못하니까 우리는 듣기만 하는 거야. 꿈이라기엔 너무 생생해진 블루베리가 대답했다. 효원은 어머니가 말하던 일을 떠올렸다. 그래. 식물도 들을 수 있겠지. 식물도 말할 수 있어. 블루베리도 말할 수 있을까? 블루베리의 대답을 듣지 못하고 효원은 잠에서 깼다.

블루베리가 뭘 알아. 효원은 중얼거렸다. 블루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어머니처럼.

화분을 볼 떄마다 어머니가 떠올랐다. 흙 속으로 돌아간 나무를 잊지 못해서, 밤마다 말을 거는 블루베리를 외면하지 못해서, 화분을 버리지 못했다. 이렇게 미련이 남을 줄 알았었다면 화분을 들이지 말았어야 했어. 효원이 중얼거렸다. 나무를 들인 이후로, 모든 게 미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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