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수일 박사의 분석심리학부 심화반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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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정식적으로 SCiPNET에다 올리진 않을겁니다.

어디까지나 그냥 참고용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선 SCP 재단에서 다루는 '변칙'보다는 정상세계에 알려진 '분석심리학' 그 자체에 대한 깊은 이야기와 그 개념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할 예정입니다. 천세윤 박사의 오리엔테이션에선 텔레파시를 중심으로 다루던 것과는 대조적이죠.
여러분이 분석심리학적 SCP를 다룰 때1 참고하라고 이렇게 길고 재미없게 글을 써 봅니다. 즉, 이하 글의 내용은 전부 정상세계에서 다루는 분석심리학과 아무런 차이가 없고, 길고, 전문적이고, 또 지루할 것입니다. 말 그대로 관련 정보를 더 잘 알고 싶으신 분을 위해 이렇게 준비한 것에 불과 합니다.

그럼 이만 각설하고 시작하겠습니다.



-1. 메타-시작에 앞서

아직 쓰는 중. 현재로썬 많이 빈약하고, 준비가 안된 상태라 휑한 상태지만… 조금씩 야금야금 작성중에 있다.


0. 시작에 앞서

위에선 곽수일 박사가 설명해 주었지만 이제부터는 그냥 필자인 NavlaNavla가 설명해 주는 것으로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앞서 곽수일 박사의 입을 빌려 이야기 했듯, 이 글은 진짜 분석심리학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고, SCP 재단 세계관과 변칙에 대한 이야기는 극히 적을 것이다. 기껏해야 필자의 헤드카논을 풀어주는 정도. 그렇기에 이 글은 본 위키에 올리지 않고 여기 샌드박스에 계속 묵힐 것이다.

그리고 '분석심리학'이라는 용어, 혹은 이것을 포함하는 용어가 앞으로 매우 자주 나오게 될 것이다. 그런 고로 필자는 '분석심리학' 자체를 지칭할 때에는 그냥 '융 심리학'으로 대치하여 표현하겠다. 같은 단어가 과하게 반복되어 읽기 불편한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또한 이 세미나 심화반은 분석심리학부의 세부적인 설명을 위해 작성한 것이므로, 독자들이 분석심리학부 허브분석심리학부 오리엔테이션을 먼저 읽고 온 것을 상정하고 있다. 각 용어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은 차차 다 할 것이지만, 원활한 범주화를 위해 그 순서가 꽤나 꼬여 있다. 앞선 두 글을 읽은 사람에겐 읽는데 문제가 없겠지만 이 글을 먼저 본다면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이 점에 양해를 구하면서, 적어도 분석심리학부 허브의 개요 탭의 용어 정리 단락 만큼은 읽고 오는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중요한 점. 이 텍스트 박스 내에 있는 내용은 순전히 가공의 이야기인 'SCP재단 분석심리학부'의 설정에 대한 이야기임을 기억해 달라.
여러 융 심리학 이론에 대해 가공의 설정으로 재해석을 한 필자의 개인적인 상상이자, 헤드카논2이며, 그리 신빙성 없는, 그저 재미있는 '만약에' 놀이에 불과하다.

이 박스 내의 내용이 실제 융 심리학의 내용이라고 오해하지 말아주었으면 한다.

0.1. 레퍼런스

  • 캘빈 S. 홀, 버논 J. 노드비 저 <융 심리학 입문> (김형섭 역)
  • 칼 구스타프 융의 저서들
    • <분석 심리학 강의> (정명진 역)
    • <심리학과 종교> (이은봉 역)
    • <레드 북>
  • 헌성용, 김교헌, 김미리혜 외 14인 공저 <현대 심리학 입문>

0.2. 면책조항

정확히 말하자면 변명이다.

필자는 심리학 공부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심지어 전공도 물리학이다. 필자는 심리학에 대해서 대충 대중서 몇 개, 융의 수많은 저서 중 극히 일부, 그리고 유튜브와 나무위키를 훑어 본 것 밖에 없다.

또한 융의 문체와 분석심리학 자체가 난해하고 비과학적인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기에 이하 내용, 그리고 지금까지 투고된 모든 분심부 글은 필자의 짧은 이해대로 썼기 때문에 잘못된 정보를 (어딘가엔 분명히) 담고 있을 것이다.
언제든 이것과 관련해서 지적하거나 정정해야 하는 내용이 있다면 언제든 NavlaNavla에게 위키닷 PM을 보내거나, 아니면 디스코드 NAVLA#4634로 개인메세지를 보내 달라. 언제든 기꺼이 피드백을 받아 이하 내용을 수정하도록 하겠다.


1. 칼 구스타프 융

1875년 7월 26일 출생, 1961년 6월 6일 사망. 스위스 출신의 정신의학자로, 당대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알프레트 아들러와 함께 초기 심리학의 기틀을 만든 사람 중 하나이다.

유년기와 청년기

개신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며(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개신교를 믿었다.) 어려서 부터 혼자 노는 것에 익숙해 스스로 나무를 깎아 만든 인형과 놀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학교 생활에도 잘 적응을 못했고 신경성 발작을 가지게 되어 긴 시간동안 학교를 쉬기도 했다.
융은 대개 혼자 보내는 시간동안 신학과 철학에 대해 탐독하였으나 아버지와의 대화가 단절되고, 학교에선 선생님과 친구들의 관계를 잘 형성하지 못하고 따돌림을 당하기도 해 이런 탐구열은 대개 내면으로 움츠러들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의학 분야로 전공을 선택한 이후 스물 네살이 되던 해, 크라프트-에빙의 정신의학 교과서를 읽은 뒤 정신의학의 길을 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1900년, 융은 취리히의 정신병원의 조수로 취직할 수 있게 되고, 같은 해 출판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저서 <꿈의 해석>을 읽기도 하였다.
그리고 1903년 융은 엠마 라우셴바흐와 결혼하였고,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융과 함께했다.

프로이트

융은 1900년 <꿈의 해석> 이후로 출판되는 모든 프로이트의 저서를 탐독했고, 이어서 자신의 저서를 그에게 보내기도 하였다. 이에 화답하여 프로이트는 1907년 융을 비엔나로 초대했고, 이것이 이 둘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이후로 둘은 매주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서로 같이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서로의 꿈에 대해 해설을 하기도 하는 등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프로이트는 내가 여태까지 만났던 사람 중에서 정말 뛰어난 최초의 사람이었다.

— 칼 융

칼 융은 양자로 삼은 나의 장남, 황태자, 그리고 후계자이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그러나 이 둘의 관계는 어느순간 악화되었다. 왜 이들의 관계가 이리 악화되었는지에 대해선 많은 이야기와 가설과 해석이 존재한다. <융 심리학 입문>의 저자 캘빈 S 홀은 '융은 어려서부터 독립적이고 자존심이 강해서 타인이 자신을 '황태자'라 칭하던 그리 기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고 평한다. 필자는 이 둘의 삶이 너무나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었기에 동일한 정신을 들여다 본들, 그 해설의 방향성에 분명한 차이점을 가졌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프로이트의 유년기는 성적(sexual) 요소와 뗄래야 뗄 수 없기 때문에 성적소구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융은 그러지 않고 오히려 인간 사이의 관계 그 너머의 형이상학을 탐독했기에 프로이트의 해석에 반발을 가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여하튼, 결국 칼 융은 1912년, 자신의 저서 <변형의 상징>을 통해 프로이트의 이론을 비판하는 것으로 그와의 절교를 선언하였다.3

내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인간의 영혼에 대한 프로이트의 태도인 것처럼 생각된다. 한 인간 또는 어떤 예술 작품 속에서 나타나는 영성에 관해서 언급을 할 때마다 그는 그 속에서 ‘억압된 성욕’을 끌어들이려고 했기 때문이다.

— 칼 융, <변형의 상징> 중

이후로 프로이트는 계속해서 칼 융에게 연락을 하며 그가 다른 모든 의견을 피력해도 된다만, 성적 소구로의 리비도에 대한 것만은 받아들여 달라고 하였으나 융은 그것을 단칼에 거절했다.

그 이후

융은 프로이트와의 절교 이후 3년간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었다. 그동안은 저서나 연구를 지속하지 않고 잠시 휴식기에 접어들었으며 그동안 스스로의 꿈과 환영을 연구하며 시간을 보냈다. 휴식기 이후 융은 다시 학술적 활동을 왕성히 시작했으며 이때부터 융은 다양한 탐사 활동을 다니기 시작했다.

융은 원시적인 부족의 심리와 문화가 가장 원형Archetype에 가까운 정신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였고, 그렇기에 그는 다양한 오지를 탐험하여 그곳의 문화와 의식, 그리고 종교적 신앙과 신화를 배웠다. 그는 여러 문화의 신화와 의식들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 아프리카, 이집트, 아마존 등을 탐험했으며 동양 철학과 연금술, 점성술, UFO, 투시, 강령술, 강신술, 예언 등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했으며 이것을 자신의 심리 분석에 활용하기도 하였다. 당대 학자들은 이러한 융의 비과학적, 주술적, 초심리학적 요소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비판하였으나 그는 이 요소들에 대해 언제나 과학자의 자세로 분석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분석심리학부 카논 상, 칼 융은 이 시기에 그의 자료가 상급감시사령부의 눈에 띄어 1930년 재단에 입사하게 되었다. 그의 주술과 초심리학에 대한 연구 자료는 재단의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그러나 1946년 그의 심장발작이 심해지고 자신의 이론에 대한 집착이 심해져 재단은 그를 퇴사시킨다.

1944년 융은 다리를 다침과 동시에 심장발작을 얻게 되었고, 1955년 그는 아내를 잃었다. 그의 딸들은 돌아가며 그를 챙겨 주었고, 1961년 6월 6일 그는 영면하게 된다.

오늘 밤엔 정말 좋은 와인 한 잔을 하자꾸나.

— 칼 융의 마지막 말.

주요 참조 자료

  • 캘빈 S. 홀, 버논 J. 노드비 저 <융 심리학 입문>
  • 김성민 박사 저 <프로이트와 융: 갈등과 화해>

2. 정신의 구조

정신이란.

정신이란 전체로써의 인격을 칭한다. 의식과 무의식의 모든 활동과 요소를 포함한다.

기독교적 세계관과 그에 기반한 서양의 많은 사람들은 몸(body), 마음(mind), 영(spirit) 이 세가지가 사람을 이루는 요소라고 생각하고, 이에 따라 영혼과 마음을 구분한다.
칼 융 본인도 개신교도이기에 그의 시선도 이러한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융 심리학에서 칭하는 정신은 바로 '마음'에 해당한다. 즉, 영혼은 정신과 별개의 것으로,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와 생명의 원리로 작용하는 실체로 보았다. 그러나 융은 영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고찰하고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융은 인간의 정신을 하나의 전체라고 보았다. 이 말인 즉, 인간의 여러 구성 요소의 총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날 때부터 완전한 형태로 태어나고 성장을 하며 이러한 요소를 분화시키고 조화시켜가는 것으로 보았다.

정신의 지형

정신은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뉜다. 바로 '의식'과 '무의식'. 의식은 무의식에 비해 극도로 작은 규모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무의식 구역도 개인무의식과 집단무의식으로 나뉘는데, 역시 개인무의식의 규모는 집단무의식에 비해면 극도로 작은 규모이다. 즉, 전체 정신의 규모에 비하면 인간의 의식은 극히 일부만을 가지고 있다. 개인을 일종의 무의식이라는 이름의 망망대해에 떠있는 섬으로 보아도 좋다.

각각의 구역은 의식 - 개인무의식 - 집단무의식 순서대로 점점 정신의 심층을 이루고 있으며, 간간히 이들 사이에 다양한 요소들이 상호작용하고 또 밀려들어오거나 나가기도 하는 유동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러한 역학관계에 대해서는 3장에서 후술하도록 하겠다.

2.1. 의식

스스로 인지할 수 있는 정신의 구역을 칭한다. 현재 우리가 인지하는 것, 상상하는것, 생각하는 것, 기억해 낸 것들이 모두 의식 구역에 속해있다. 의식은 출산 이전부터 존재한다. 갓 태어난 아기도 부모와 주변 자극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

우리는 의식을 통해 정신 외부의 것을 인지하고 받아들이고 그 특성을 파악하고 영감을 받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정신적 활동을 위한 에너지를 얻고 경험과 관념을 축적하며 결과적으로 우리의 인격을 발달하고 분화시킬 수 있다. 이렇게 의식이 정신 외부의 것을 받아들이는 통로이자 방법으로 3장에서 후술할 4가지 기능(사고, 감정, 감각, 직관)이 존재한다. 일단은 이런것이 존재한다는 것만 알고 넘어가자.

자아

의식 내에 존재하는 아키타입(아키타입이 무엇인지는 후술할 예정이다.)으로, 일종의 커맨드센터이자 필터이다. 우리의 의식이 무엇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을지 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즉, 사고, 감정, 감각, 직관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선별하고 받아들이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수많은 경험을 통해 많은 요소를 접하지만 대부분 자아에 의해 의식으로 다다르기 전에 제거되고, 일부만 자각될 수 있다. 우리가 느끼는 모든것이 자각된다면 너무나 많은 정보들에 파묻혀 우리의 정신은 매우 혼란스러워 질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에 집중할 때에 집중하고 있는 것 외의 다른 요소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 자아 덕분인 것이다.

자아는 크게 두 방향으로 정의된다. 하나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각, 다른 하나는 기억, 생각, 감정을 통해 구성된 복합적인 자료 덩어리.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스스로의 대답과 그 사유를 통해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정의된 자아는 개인의 우세한 기능에 입각해 자료를 받아들인다. 개인마다 우세한 기능이 다르고 그 방향성도 다르다.(이렇게 구분되는 인격의 유형들은 3장에서 후술 예정이다.)

나(필자)는 누구인가? 생각을 많이, 그리고 즐겨 한다. 어릴 적부터 과학책과 다큐를 즐겨보았고, 이성적인것을 선호하기 때문. 고로 필자는 사고 기능에 더 분화된 자아를 지니고 있다.

의식은 연결된 '자아' 없이는 존재 할 수 없다.

필자는 분석심리학부 SCP를 쓸 때 자아를 이하 두가지 관점으로 재해석 했다.

  1. 일반적 인격의 주도권: 여기서 자아는 하나의 구역으로써 일종의 '의자'처럼 묘사된다. 각각의 정신구조, 혹은 해리된 인격이 이 의자에 앉으면 신체의 주도권을 지게 되는 식이다. 이는 영화 <23 아이덴티티>(영제: Split)와 일반적인 해리성 인격장애의 묘사에서 따온 것이다. 융 심리학에서 말하는 (움직이지 않는) 개인의 자아는 이러한 분석심리학부 작품 내에서 주로 '본래의 인격'으로 칭하고 후술할 컴플렉스와 아키타입과 비슷한 하나의 '정신구조'로 바라본다.
  2. 개인을 개인 답게 하는 요소: 후술할 '자기' 아키타입, 혹은 하이브마인드에 대한 반테제로써 자아를 내세운 경우이다. 자아가 없는 개인은 마치 군체의식 속 의식이 없는 존재처럼 거대한 의식의 일부로써 기능할 뿐이다. 인간도 결국 집단무의식의 관점에선 일부 군체의식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이 개인으로써 존재할 수 있게 군체의식과 다른 독립적인 차이를 만들어 줄수 있게 하는 주요한 요소로써 필자는 '자아'를 내세웠다.

2.2. 개인무의식

자아에 의해 인식되지 못한 정신 요소들이 저장되는 곳이다. 또한 이전에 의식적이었으나 억압되거나 망각된 정신 요소들이 의식에서 밀려나는 곳이기도 하다. 망각된 기억, 괴로운 생각, 미해결 문제, 도덕적 갈등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해있다.

개인무의식 속 요소들은 꽤나 쉽게 의식화 될 수 있다. 지난번에 만난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이 아주 대표적인 개인무의식 속 요소가 의식화된 사례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개인무의식은 마치 잘 정리된 데이터베이스와 비슷하다. 필요 할 때 찾아내어 의식화 하는 많은 기억 뭉치들이기 때문.

우선 필자의 헤드카논 상 Y-909 화합물을 사용하지 않은 대부분의 기억소거제는 기억을 소멸시키지 않고 개인무의식으로 끌어내려 의식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Y-909 화합물은 영혼의 비어있는 곳이라는 설정/복선에 따라 실제로 그 기억을 소멸시키는 것으로 생각하고있다.

또한 JUNG 아키텍쳐의 메멘토스 저장소는 이러한 개인무의식의 디지털 복각판이라는 설정이다. 다만 연결된 모든 분석심리학부 인원의 경험을 클라우드 방식으로 저장하는 하나의 커다란 서버와 같다는 점이 다르다.

컴플렉스Complex

개인무의식 속의 요소들(감정, 생각, 기억 등)이 응집되어 만들어진 작은 인격이다. 대개 개인무의식에 존재하지만 간혹 의식구역으로 밀려들어와 집착, 애호, 거부 반응과 같은 신경증을 유발한다.4 그리고 이렇게 의식에 영향을 끼치는 컴플렉스는 그 자체로써 우리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그를 통해 우리의 행동을 조종하는 강력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컴플렉스에 지배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어떤 요소에 대한 강력한 집착증세를 보인다. 간단히 말에 무언가에 강하게 빠져있는 것이다. '어머니 컴플렉스'를 지닌 사람은 모녀/모자 관계에 대한 집착을 보이며 '어머니'라는 주제를 담은 예술 창작물을 좋아하고 스스로를 어머니와 동일시하여 그와 비슷한 옷을 입거나 행동을 모방한다. 연상의 여성이나 어머니의 친구에게 호감을 가지기도 한다.

컴플렉스에 강하게 영향을 받는 것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많은 작가들과 감독들은 예술가 컴플렉스 하에서 자신의 의도를 완벽하게 관철하려 하는 집착을 보이고, 이를 통해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낸다.
물론 너무나 집착해서 자신을 망가뜨리기도 하지만, 역시 정도가 중요한 것.

컴플렉스는 과거 개인적 경험에 의해 억압된 기억이 무의식으로 밀려나 응집되어 만들어지기도 하고, 집단무의식의 요소가 개인무의식에 영향을 주어 만들어지기도 한다.

컴플렉스의 개수는 무궁무진하게 많으며, 또 모호하기도 해 모든 것을 범주화 하고 나열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원활한 참고를 위해 아래에 몇가지 예시를 적어두겠다.
이름 설명
어머니 어머니 관계와 그 요소에 대한 집착
아버지 아버지 관계와 그 요소에 대한 집착
오이디푸스 자식으로써 아버지에 대한 격한 반감5
엘렉트라 자식으로써 어머니에 대한 격한 반감
나르시스 자신에 대한 사랑, 집착
예술가 완벽과 미에 대한 집착
피터팬 어른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어린아이로 남고 싶어함
개인에 대한 신격화, 자신의 과실을 인정하기 않고 자신의 의견을 절대화 함
메시아 권선징악을 실현하고, 더 나아가 스스로가 신의 대리인임을 자처함

2.3. 집단무의식

크게 두가지 관점이 혼재한다. 하나는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것으로, 고대부터 인간이 경험을 통해 쌓은 기억들이 유전적으로 각인되고 진화되어 현재 우리의 기반 정신을 이루었다는 해석, 다른 하나는 약간은 오컬트적인 관점으로, 전 인류(어떤 구역은 전 생명)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공유하는 하나의 군체의식이라는 해석이다.
재미있는 건 캘빈 S. 홀의 <융 심리학 입문>에서는 전자를, 칼 융의 <분석심리학 강의>에서는 후자의 관점으로 집단무의식을 설명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후자의 해석이 상당히 비과학적이고 오컬트적이기 때문인 것으로 필자는 추측한다.
다만, 후술할 신화와 전설 속 다양한 상징들을 살펴 보면 이 모든 것들이 단순히 '선조가 그렇게 느꼈기 때문' 이라고 퉁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고로 필자는 이 두 해석을 유동적으로 사용하겠다.

물론 SCP재단 분석심리학부에선 비변칙적인 전자의 해석 보다는 후자의 해석에 기반한다. 그 편이 더 재미있고, 이미 그렇게 사용된 선례도 많기 때문.

여하튼, 이렇게 입력된 고대의 정신은 여전히 우리 정신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우리의 (경험에 기반하지 않은)무의식적인 감정과 본능 등을 유발한다.

우리는 왜 어둠을 두려워할까? 어둠 속에서 도사리는 위험을 겪은 선조들의 기억이 집단무의식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

이렇게 축적된 집단무의식의 요소는 지극히 상징화되어서 신화와 전설, 그리고 우리의 꿈과 창작물을 통해 발현된다. 대홍수에 관한 전설, 해와 달을 활로 쏘아 떨어뜨리는 이야기, 꽃신/유리구두에 대한 설화, 강력한 남신이 거대한 뱀과 싸우는 신화가 전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4. 아키타입

Archetype. 원형이라고도 한다. 집단무의식 내에(어떤 아키타입은 개인무의식에 있기도 하다) 존재하는 원시적 이미지, 그리고 보편적 상징이다. 융 심리학의 가장 중심이 되는 개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융은 자신의 삶의 마지막 40년을 이 아키타입을 밝혀내고 공부하는 것에 집중하였다.

원형은 다양한 정신반응의 핵심으로 기능하며 우리의 경험과 사고, 감정등을 끌어모으는 핵의 역할을 한다. 이렇게 아키타입이 중심이 되어 컴플렉스가 만들어질 수 있다. 또한 이런 상징들이 우리에게 특정한 반응을 주기 때문에 창작물(고대의 경우 신화와 전설)을 통해 나타난다.

'뱀'이 가지고 있는 아키타입에 따라 우리는 정말 많은 작품과 전설속에서 사악하고 간사한 악당으로 뱀이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메두사, 히드라, 나가, 아담을 홀린 뱀에서 시작하여 현대에는 내기니, 오로치마루 까지. 이 모든 것들이 바로 '뱀'에 대한 아키타입에 기반해 만들어진 요소이다. 그렇기에 이들의 유사점과 공통의 이미지를 우리는 쉽게 캐치해 낼 수 있다. 융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특히 과거의 신화와 전설에 기반해) 다양한 원시적 이미지의 유사점을 찾으려 노력했다.

아키타입의 종류는 세상에 존재하는 전형적인 장면들 만큼이나 많은 수가 있다. 그가 정리한 대표적인 아키타입만 해도 탄생과 죽음, 권력, 마법, 영웅, 트릭스터, 현자, 어린이, 신, 거인, 그리고 자연물(나무, 불, 흙, 돌, 바다 등), 그리고 인공물(반지, 바퀴, 칼과 창 등) 수없이 많다.

이 중에서도 개인의 인격을 구성하는 주요한 아키타입이 몇 존재한다. 이러한 아키타입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하나씩 자세히 설명을 하고 난 뒤에 나머지 아키타입에 대해서도 간략히 나열해 보도록 하겠다.

자아ego

앞서 의식 파트에서 자세히 설명했기에 여기서 잠시 리마인드만 하고 지나가겠다. 자아 역시 주요한 아키타입의 일부이며 후술할 그림자 아키타입과 상보적인 관계를 띄고 있다.

분석심리학부의 텔레파시 관련 설정에선 이 자아가 외부에서 의식으로 접근하는 1형 텔레파시에 대한 저항을 할 수 있는 주요한 요소로써 설정되어 있다. 자아가 잘 발달한 인원은 의도적이고 인위적으로 입력되는 사고/감정/감각/직관 신호를 자아를 통해 차단할 수 있기 때문.

페르소나Persona

타인에게 보여지고 싶은 자신의 모습. 의식에 가장 가까이 붙어있는 개인무의식의 영역에 존재한다.
라틴어로 연극 용 가면이라는 뜻. 우리는 삶을 살아 갈 때 마치 연극을 하듯 살아간다. 학교나 직장에선 성실한 자신, 연인에겐 매력적인 자신, 때로는 거칠고 만만하지 않은 모습, 때로는 부드럽고 친근한 모습, 때로는 나약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습을 우리는 '연기'한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타인에게 어떠한 인정이나 긍정적 상호작용을 바라는 심리가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는 혼자 있게 될 때에 이 가면을 비로소 벗을 수 있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이러한 이중생활을 한다. 평소에 하지 않던걸 우리는 페르소나 하에서 억지로 하기도 하고, 거꾸로 평소에 못하던걸 페르소나를 벗고 저질러 버리기도 한다. 다른 모든 정신적 요소와 마찬가지로, 페르소나 역시 스스로에 대한 솔직함과 함께 조화가 이루어 져야 한다. 페르소나가 과도하게 팽창되어 개인이 잠식되면 자신이 원하지 않지만 페르소나가 원하는 것을 억지로 수행하면서 자신이 이로 인해 '행복하다'고 스스로를 속이게 되고, 이 역할에 너무 빠져들어 다른 인격의 측면을 밀어내어 발달시키지 못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팽창된 페르소나에 희생된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잊어버리고,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좋아한다고 속이고, 스스로를 기만하며, 어떤 부모는 자신의 페르소나를 자식에게 투사하기도 한다. 때로는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솔직해지며 페르소나를 축소시킬 필요가 있다. 그것이 진정으로 자신의 모습을 찾는 길이다.

아니무스와 아니마Animus, Anima

개인무의식에 위치한 자신의 성과 반대되는 무의식의 측면. 즉, 아니무스는 여성의 무의식에 숨겨진 남성적 측면, 아니마는 남성의 무의식에 숨겨진 여성적 측면이다. 페르소나가 외면에 대한 것이라면 아니무스와 아니마는 정신의 내면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이성을 바라 볼 때 이 아니무스/아니마를 통해 바라보고 이에 따라 관계를 형성한다.

남성은 어머니를 포함한 다양한 여성을 접하며 아니마를 발달하고 여성도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아니무스를 발달시킨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는 곧 자신의 이상형이 된다. 또한 겉으로 드러나는(페르소나) 남성적/여성적 모습이 강할 수록 아니무스/아니마가 소외되고 팽창된다. 겉으로 남자답게 행동하는 남성의 숨겨진 내면은 더욱 여성스러워 지며, 그 역(여성에 대한, 그리고 아니무스에 대한 경우 모두)도 성립한다.

칼 융은 성별 불쾌감과 동성애를 이러한 아니무스/아니마의 팽창으로 바라보았다. 억압된 자신의 여성성/남성성을 보상하기 위한 심리 기제로 본 것이다.

여기까지 보았다면 알 수 있겠지만 이 이론 자체는 매우 이분법적이고 동성애를 일종의 신경증적인 정신질환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 이유는 사실 꽤 간단하다. 칼 융 본인이 개신교도이고, 이 이론을 만들 당시인 1900년대 초는 동성애가 금기시되었기 때문. 하지만 1987년 정신질환의 매뉴얼인 DSM에서 동성애가 빠지게 되고 젠더학과 퀴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며 현재에 이 해석을 그대로 따라가기에는 많은 어폐가 있다.

하지만 여전히 아니무스와 아니마는 현재에도 주요하게 인용되고 있고, 융 심리학에서 뺄 수 없는 개념이니 만큼 함부로 부정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필자는 아주 개인적으로 이것을 재해석 해 보았다. 이하 내용은 분석심리학에 대한 개인적인 헤드카논이다.

우선 필자는 자신이 스스로 정의하는 바에 따라 정의된다고 본다. 즉,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결정되는 재귀적인 피드백을 통해 의식화 되고 자아와 페르소나가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성(젠더)도 마찬가지다. 내가 남자라고 생각하면 남자인거고, 여자라고 생각하면 여자인거다. (그리고 젠더 뿐 아닌 다른 모든것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관점에서 아니무스와 아니마는 일종의 분리된 것이 아닌 그 자체로써 하나의 커다란 '내 모습'들 중 의식화 되지 못한 한 구석, 즉, 그 여집합이라고 생각한다. 전통적 남성성이 의식화된 사람의 '아니무스-아니마'는 전통적 남성성의 여집합으로 이루어 질 것이다. 이는 기존 칼 융의 해석과도 꽤나 부합하면서 논-바이너리하기도 하다.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겉으로 드러난 젠더는 페르소나의 일종이고, 내면에 숨겨진 젠더, 그러니까 아니무스-아니마는 (후술할)그림자와 비슷한 아키타입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필자는 젠더학과 관련 연구에 대해 잘 아는게 없이 그냥 나무위키나 유튜브를 대충 훑어본 정도에 지나지 않다. 그리고 심지어 현재는 사장된 옛 이론을 꺼내어 현대의 이론과 맞추어 보려는, 예를 들자면 애니악 컴퓨터에 둠 이터널을 돌려보려고 시도하는 것과 비슷한 무의미하고 어쩌면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시도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이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거나, 틀렸다고 필자를 너무 나무라거나 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냥 재미삼아 해본 둠 챌린지 같은 것이라 생각해주었으면 한다. 혹시라도 더 나은, 그리고 전문적인 해석이 있다면 제보를 바란다.

그림자shadow

개인무의식에 위치해 있다. 아니무스/아니마와 마찬가지로 의식화 되지 못한 개인의 요소들이 개인무의식속에 축적된 것의 집합으로, 자아의 역할을 보조해 주고 있다. 대개 억압된 자신의 인격과 동물적 본성, 그리고 영감이 위치해 있다. 이런 이유로 그림자 아키타입은 여타 아키타입보다 훨씬 강력하고 잠재적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성에게 투사되는 아니무스/아니마와 달리 동성에게 투사된다. 자신의 배격당한 그림자를 다른이에게 투사하면 대개 그와 나쁜 감정을 가지게 된다. 반면 자아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그림자를 투사하면 우호적인 관계를 가지게 된다.

그림자는 그 자체로써 야생의 동물과도 같아서 원활한 사회생활을 위해선 이를 길들일 필요가 있다. 이것은 페르소나에 의해 제어되고 대항하여 길들일 수 있다. 그러나 여타 다른 요소들과 마찬가지로, 그림자가 너무 메마르게 된다면 삶이 무기력하고, 주체적이지 않게 되고, 영감이 메마르게 될 것이다.

융은 자아와 그림자가 조화를 이룬 상태를 창조적이며 영감이 충만한 예술가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정신 뿐 아닌 육체적으로도 에너지가 넘치고 약간은 동물적인 모습을 보이는 그런 모습이라 다른 이들에겐 조금 미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훌륭한 예술가들이 약간의 광기를 가지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그림자는 이런 좋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름처럼 내면의 어두운 것을 담는 그릇이기도 하다. 우리는 대개 나쁘거나 부당한 요소를 의식에서 밀어내곤 한다. 그런 요소들은 개인무의식으로 밀려나 그림자로 향한다.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끊었다고 해서 이전의 알코올을 원하는 감정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무의식으로 밀려나 그림자 안에서 자아가 나약해 졌을 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이 되면 다시 의식 구역으로 침입하여 자아를 건드린다.

칼 융은 이 그림자가 사회적으로 억압되는 것을 특히 경계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억압된 그림자는 그 속에서 점점 힘을 부풀리며 팽창하다가 돌파구를 향해 쏟아지고, 만일 그 돌파구가 없다면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아래는 기독교(특히 카톨릭)가 이러한 그림자에 대해 매우 억압적인 교리를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칼 융의 해석이다.

우리 속에 살고 있는 동물은 억압될 수록 야수적으로 변할 뿐이다. 기독교만큼 피로 얼룩진 종교는 없다. 기독교 국가간의 전쟁만큼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없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 칼 구스타프 융 (융 전집 10권 중)

그리고 이는 두번의 세계대전과 현대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6

분석심리학부의 텔레파시 관련 설정에서 자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림자가 집단무의식으로 통해 의식에 접근하는 2형 텔레파시에 대한 저항을 할 수 있는 요소로 설정되어 있다. 하지만 의식적인 자아와는 다르게 개인무의식에 따라 움직이는 그림자를 의도적으로 컨트롤 할 수는 없기에 사실상 의식적으로 그것을 막을 방도는 없다는 설정이다.

데미안

이 자아와 그림자의 통합이라는 주제는 융 심리학의 가장 근원과도 같은 요소이다.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보고, 그것을 인정하고 화해하고 길들이고 융합하는 것이 융 심리학에서 말하는 가장 건전한 형태의 내면적 성장이다.

길가메시와 엔키두의 관계가 바로 이러한 부분을 강하게 암시하는 원형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자신을 죽이려는 야수를 길들이고 도리어 친구가 된 영웅이라니! 오히려 융의 이러한 관점이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따온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이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쓰인 소설이 바로 '데미안'이다. 헤르만 헤세는 융에게 상담을 받으며 겪은 경험을 기반으로 데미안을 작성하였고, 그렇기에 데미안의 내부엔 꽤나 분석심리학적인 내용이 강하게 배여있다.

에밀 싱클레어는 자아를 상징하고, 데미안은 그의 그림자 그 자체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에밀은 밝은 세계(= 아벨의 세계, 선의 세계, 신의 세계)에 의식적으로 존재하고자 하며 그 반대에 위치한 어두운 세계(= 카인의 세계, 악의 세계, 악마의 세계)를 거부한다. 그렇게 에밀은 두 세계의 사이에 끼어 고통받는다. 하지만 데미안을 만나고, 그는 두 상반되는 요소의 통합을 이끌어낼 힌트를 얻게 된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유의 철학을 대변하는 이야기 덕에 필자는 데미안을 가장 완벽하고 또 재미있게 융심리학을 소개시켜주는 입문서이자 팬픽션으로 바라본다.

추가로, 데미안의 직관을 꿰뚫고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능력은 싱크로니시티와, 그리고 그가 말하는 (약간은 이단적인) 기독교에 대한 관점은 융의 관점과 상당히 유사하다. 이에 관해서는 후술하겠다.

자기self

집단무의식 속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아키타입. 질서, 조직, 통일의 원형이며, 그 자체로써 집단무의식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자기는 모든 원형과 컴플렉스를 한데 모아 하나로 융합하고자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자기와 조화를 잘 이룬 개인은 자신과 세계가 잘 조화되고 있다고 느끼고, 그렇지 않은 개인은 자신이 산산조각 날것 같다고 느낀다.

모든 인격의 궁극적 목표는 바로 이 자기 아키타입을 통해 자신과 세계를 조화시키고 이로써 자기다움(selfhood)과 자기실현을 이루어 내는것에 있다. 자기 아키타입 자체가 매우 숨겨져 있고, 훈련되지 않은 개인은 존재조차 알아차리기 힘들며, 역사적으로도 이에 근접한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칼 융은 예수와 석가모니와 같은 사람이 인류의 역사 이래 가장 자기와 근접한 사람일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융은 이에 대해서 자기의 실현 보다는 자기를 인지하는 것에 더 집중하라 말한다. 이것이 선행되어야 진정으로 자기를 실현시킬 수 있다고 보기 때문. 자기를 인식하기 위해선 후술할 꿈 분석이 필요하며, 때로 자신에게 찾아오는 영적인 순간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영적인 순간이야 말로 집단무의식이 자신에게 보내는 강렬한 신호이기 때문. 완전한 조화의 순간을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무의식에 귀를 기울이고 분석하며 수련을 계속해야 한다.7

자기는 우리 인생의 목표다. 자기는 우리가 개성이라 부르는 숙명적 통일체의 가장 완벽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 칼 구스타프 융 (융 전집 7권 중)

분석심리학부 카논에서 자기 아키타입은 상당히 중요한 떡밥으로 등장한다.

필자의 헤드카논 상 자아 아키타입이 '개인을 개인답게 하는 요소'라면, 자기 아키타임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요소'로 두고 있다. 즉, 자기 아키타입이 손상되면 전인류의 '인간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된다는 것. 바로 SCP-5000의 '프뉴마 프로젝트'가 본사의 분석심리학부의 어떤 상호작용으로 인해, 혹은 프뉴마 독립체와 관련된 무언가로 인해 자기 아키타입이 손상/혹은 침식되어 일어난 일로 두고 있다.

또한 SCP-963-KO에서 자기 아키타입 직전에 등장하는 151번 인격 또한 주요한 나폴리탄적인 떡밥으로 두고 있는데, 변칙성, 특히 현실조정과 관련한 변칙성을 유발하고 그 자체로써 자기 아키타입에 접근하기 직전에 마주하는 아키타입으로 묘한 연결성을 암시하게 하고 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게 필자는 이만 말을 아끼도록 하겠다.

다른 여러 아키타입들

역시 앞서 말했듯, 아키타입은 여러 종류가 있고, 무궁무진하게 많다. 하지만 역시 컴플렉스의 경우와 같이, 원활한 참고를 위해 자주, 그리고 주요하게 언급되는 아키타입들에 대해서 몇가지 예시를 적어두겠다. 앞서 미리 소개한 아키타입들에 대해서도 요약해서 한꺼번에 적어보겠다.
이름 설명
자아 의식이 받아들이는 정보를 컨트롤하는 원형.
페르소나 남에게 보여지고 싶은 자신의 모습에 대한 원형.
아니무스/아니마 각각 여성/남성의 무의식 속 억압된 남성/여성적 인격. 대개 이상형의 모습.
그림자 자신에 대해 부정되고 억압된 인격. 본능과 영감, 표현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이 위치함.
자기 자신과 세계의 조화, 질서, 통일을 상징
영웅 악을 물리치고 정의/예언을 실현하는 존재.
트릭스터 반항적이고 혼돈적인 에너지. 장난과 트릭을 상징.
대모great mother 모든것을 포용하는 어머니, 생명, 의지할 수 있는 도움을 줌. 현자와 대비됨.
늙은 현자 이성적인 지혜와 계몽의 원천을 상징. 영적인 아버지. 대모와 대비됨.
세계의 악, 파괴, 탐욕을 상징. 또는 끔찍한 어머니. 영웅 아키타입과 충돌하여 무찔러짐으로 정의/예언이 실현됨.
신성한 아이 영원한 소년. 우리 내면에 숨겨진 유아적 요소들.
사악하고 간사함. 또는 신성과 경외, 치유의 상징.8
필자가 쓴 SCP-963-KO에서는 다양한 아키타입들이 등장하는데, 일부는 필자의 개인적 상상으로 채워넣은 것들이 존재한다. 이에 대한 간단한 해설을 하도록 하겠다.
이름 설명
낙타 인내하고 견디는 정신
사자 기존의 가치를 부정하고 투쟁하는 정신
어린아이 신성한 아이와 동일. 거기에 더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천진난만함.
낙타-사자-어린아이의 정신을 통해 인간은 초인이 될 수 있다고 니체가 말하였다. 필자는 이러한 니체의 정신을 아키타입의 형태로 재해석 하였다.
언어체계 특정 관념을 언어라는 것을 통해 발화할 수 있게 함.
조나단-할리만.sac와 SCP-728-KO가 외국인이지만 텔레파시, 혹은 JUNG 아키텍쳐 기반의 인터페이스를 통해 한국어로 말할 수 있는 이유이다. 관념이 우선이고, 우리의 언어체계라는 아키타입을 통과해 그 관념이 언어로 변화하는 것. 필자는 이 언어체계 아키타입을 개인무의식에 존재하는 것으로 설정해 두고 있다.

주요 참고 자료

  • 캘빈 S. 홀, 버논 J. 노드비 저 <융 심리학 입문>
  • 위키피디아 <융의 원형> 항목(#)
  • 크리스토퍼 보글러 저 <신화 영웅 그리고 시나리오 쓰기>

3. 정신의 역학

칼 융에 앞서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당시에 활발히 연구되던 최신 과학 이론인 열역학에 관심이 있었고, 인간의 정신도 이러한 열역학적 법칙과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정신 역동론psychodynamics을 주장했다. 에너지의 총량과 엔트로피의 흐름을 인간의 정신에 대입시킨 것이다.

칼 융의 관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칼 융은 인간의 정신이 역동적인 상대적 폐쇄계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했다. 폐쇄계란 열역학적 관점에서 물질(질량)은 벗어나지 못하지만 에너지는 원활히 통과할 수 있는 닫힌 공간(계System)을 뜻한다.12
즉, 인간의 정신은 외부로부터 정신적인 에너지를 받아들이고 방출하되, 그 내부의 정신적 요소의 합은 늘어나거나, 줄어들거나, 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정신적 질량 보존의 법칙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어진 계 내에서 후술할 정신에너지의 흐름과 집중, 그리고 역전이 바로 인간의 정신활동의 근간으로 바라보고 해석하고자 했다.
고로 이하 내용은 열역학의 개념과 부분적으로 맞닿아 있고, 이에 따라 필자는 열역학적 개념과 병치하며 비유를 할 예정이다.

3.1. 정신에너지

문자 그대로 정신활동을 일으키는데 필요한 정신적 에너지. 즉, 정신활동에 대한 연료라고 생각하면 된다. 열역학에서의 열에너지와 대응된다. 정신에너지는 어떤 방향성을 지닌 정서, 혹은 다양한 욕구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정신에너지는 물리적 에너지처럼 정략적으로 수치화 할 수 없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활동은 모두 억압된 성적인 욕망을 충족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정신 활동의 근원으로 그는 성적 소구를 뜻하는 '리비도'라는 용어를 만들었지만, 칼 융은 이에 반대하며 성적 소구를 포함하는 더 크고 넓은 개념으로 확장해 '정신에너지'리는 개념을 도입했다. 그렇기에 분석심리학 내에선 때로 정신에너지와 리비도가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

직관적인 이름과 그 자체로써 꽤나 SF의 테크노바블로 들리는지라 분석심리학부 작품 내에서 자주 등장한다. 대개 본래의 정의인 '정신적 활동을 유발하는 연료'라는 요소로 등장한다.

  • JUNG 아키텍쳐와 텔레킬 합금을 이용한 회로를 통해 정신외부에 정신에너지를 저장하고 그 흐름을 제어할 수 있다는 설정이다.
  • 또한 텔레파시를 이루는 한 요소로 설정이 되어 있다. 정신 외부에 정신에너지를 방출하고 주입시키는 과정을 통해 타인의 정신반응을 원격으로 유도할 수 있다.

그러나 정신에너지는 본래부터 모호하게 정의되어 있어 물리학적인 접근이 꽤나 힘들다. 필자의 헤드카논으로도 정신에너지를 수치화 할 수 있는지는 미정인 상태로 남겨두고 있다. 이렇게 모호하게 두는 가장 큰 이유로는 적당히 쓸만한 멋드러진 단위명이 없다는 것에 있지만, 언제든 재미난 서사적 재료로 쓸 수 있다면 언제든 어떤 방향으로든 해석이 가능하게 두고 싶다.

정신에너지는 외적 원천을 통해서만 공급받는다. 여기서 말하는 외적 원천이란 곧 정신 외부의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뜻한다. 앞서 잠깐 설명한, 그리고 바로 다음 챕터에서 자세히 짚고 넘어갈 의식의 외적 기능 4가지(사고, 감정, 감각, 직관)를 통해 우리는 정신에너지를 얻는다. 우리가 음식을 통해 육체적 활동의 에너지 원천인 ATP를 얻듯, 우리는 경험을 통해 정신에너지를 얻는 것이다.

머리가 과부화 되어 더 이상 생각하기 힘든 순간을 겪어봤을 것이다. 이때 잠시 하던 일을 내려두고 산책을 즐기거나 음악을 들으면 다시 하던 일을 마저 할 수 있는 기력을 얻을 수 있다.

더이상 생각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의 정신에너지가 고갈된 상태라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산책을 하며 외부의 것을 보며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며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공급받은 에너지는 각각의 정신구조로 향해 그것을 자극하고 분화시킨다. 또, 어떤 경우엔, 정신에너지가 신체적 에너지로 변환되거나 그 반대의 작용도 일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13

정신가치

어떠한 정신요소에 담긴 정신에너지의 양을 뜻한다. 어떤 관념이나 사상에 높은 가치를 둔다는 것은 곧 이러한 요소에 더 많은 정신에너지를 할애한다는 것이다. 두 요소를 비교해 무엇을 먼저 선택할지를 생각해 보는 것으로 쉽게 자신이 어느 요소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혹은 자신을 관찰해서 자신이 어디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월 200 백수 VS 월 600 직장인.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인터넷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이 VS 놀이가 바로 개인의 가치를 확인하는 대표적인 질문이다. 전자를 선택한 사람은 노동의 가치보다 자유를, 후자를 선택한 사람은 자유의 가치보다 노동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일 터이다.

자신이 중시 여기는 가치는 꿈을 통해 자주 발현된다. 자신이 어떤 가치를 중시하는지 알아본다면 자신의 꿈을 해석하기에도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위에서 말한 것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알아낼 수 있는 의식 내의 정신요소에 대한 가치판단이라면, 우리가 더욱 눈여겨 봐야 할 것은 바로 우리의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정신요소의 가치들이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해답을 얻기 힘든 여러 문제의 답은 대개 그쪽에 있기 때문이다.
무의식속 정신요소라 함은 대개 컴플렉스를 뜻한다. 우리 내면의 어떤 컴플렉스에 강한 가치가 부여된다면 그것이 힘을 얻어 의식으로 침투하고 다양한 반응을 야기할 수 있고, 이 정도가 심해진다면 다양한 정신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렇게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 컴플렉스는 후술할 단어 연상 실험을 통해 그 존재를 파악할 수 있다.

3.2. 역학 법칙

열역학에는 매우 중요한 법칙이 있다.

  • 제 1법칙: 에너지는 언제나 일정히 유지된다.
  • 제 2법칙: 열은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흐른다.(= 엔트로피는 언제나 증가한다.)
  • 제 3법칙: 절대영도에 도달할 수 없다.

열역학에서 많은 걸 따온 정신역학 역시 이와 비슷한 법칙체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정신에너지가 온전히 물리학적인 수치로 정량화 될 수 없다는 점과, 정신 자체가 모호한 구석이 있다는 점, 그리고 분석심리학이 극 초기의 심리학으로써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이 합쳐서 실제적으론 과학철학적인 '법칙'이라 불리기에는 많은 어폐가 있다. 이 부분에 주의해서 실제론 '강한 경향성'정도라고 축소해서 바라봐 주기를 바란다.

평형의 원리

어떤 정신요소 속 정신에너지가 감소하면, 다른 어딘가의 정신요소 속 정신에너지가 증가한다.

그렇다. 열역학 제 1법칙과 거의 동일하다. 정신에너지는 어느정도 그 양이 보존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한 흥미가 사라진다면, 다른 어딘가에서 그만큼의 정신적 반응이 일어나게 된다.

자아 속 정신에너지가 줄어들고 그 에너지가 페르소나로 향한다면 자기 자신보다 남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에 더 집착할 것이다.

이 원리에 따르면, 우리의 정신은 끊임없이 사유하고 활동한다. 하지만 우리가 잠을 잘 때에는 우리의 정신이 고요해 지는 것 아닌가? 칼 융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소멸한 것처럼 보이는 정신에너지는 사실 우리의 무의식으로 향한 것이다. 우리가 잠을 잘 때에 기존의 정신에너지는 우리의 무의식 속 정신요소에 흡수되고, 그에 기반한 정신활동을 유발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무의식의 활동의 결과물이 바로 꿈이다. 그렇기에 그는 꿈을 분석함으로써 우리의 무의식을 관철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정신에너지를 온전히 물리학적으로 바라본다면, 다음과 같은 아주 중요한 문제에 직면한다.

정신에너지는 공급은 되지만 평형의 원리에 따르면 그 양이 유지된다. 이 모순되는 두 설명에 대해 본인이 가진 책 내에선 만족할만한 설명을 해주지 못하고 있기에 필자 나름대로 생각해 본 바는 바로 다음과 같다.

  1. 공급된 만큼 어딘가로 빠져나간다.
  2. 임의의 양이 공급되기도 하고 소비되기도 한다.
  3. 공급되어 추가되는 모든 정신에너지는 집단무의식에 축적된다.

일단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기회가 될 때에 직접 한국 융 연구소의 인원들과 이와 관련해서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우리는 여러 정신요소의 가치를 저울질하며 주어진 정신에너지의 양을 적절히 배분하려고 한다. 이때 한 구조에서 다른 구조로 에너지가 이동 할 때에 기존의 구조가 가지고 있던 요소 일부가 딸려나와 다른 구조에 적용될 수도 있다. 페티시즘이 바로 대표적인 예시일 것이다.

권력에 할당된 정신에너지가 성적 욕구로 이동한다면 이는 사디즘적인 페티시즘을 형성할 수 있다.

너무 많이 분화된 정신구조는 다른 정신구조로부터 계속해서 정신에너지를 흡수하거나 가로채 갈것이다.

엔트로피의 원리

정신에너지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역시 열역학 제 2법칙과 거의 동일하다. 우리의 정신은 평형을 이루고자 한다. 어느 한 구조가 너무나 많은 정신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면, 그 에너지는 곧 다른 정신구조로 향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때, 정신 속 에너지가 불균형하면 우리는 갈등과 긴장을 느낀다.
예컨데, 아니무스가 강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경우, 그것을 다른 정신구조, 예컨데 페르소나에 나누어 주어 남성적인 외면을 분출하여 그 에너지 준위를 낮출 수 있다. 그러나 만일, 그것을 막고 벽을 세워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은 그 내부에 갇혀 곪아 썩게 될 것이다. 강박적으로 자신의 아니무스를 억압한다면 결국 내부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폭력적으로 분출이 될 것이다.
마음의 문을 닫는 것이 바로 이러한 형태의 억압이다. 감정의 문을 닫은 사람은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내부에 쌓아만 둔다. 그리고 그것은 곧이어 어느 방식으로든 터지고 말 것이다.

청년기의 사람은 이러한 정신에너지의 고저차가 크기에 격렬한 정서적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노년기의 사람은 이미 많은 정신에너지를 받아들였고, 내부에서 쉬이 분배가 되기에 평온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3.3. 의식의 기능

정신의 외적 기능

우리는 외부의 여러 요소를 통해 정신에너지를 얻는다. 이때 우리의 의식은 크게 네가지 기능을 통해 정신 외부의 것을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그것이 곧 통로가 되어 우리 정신내부로 들어올 수 있게 한다. 이것은 개인이 세계를 인지하는 네가지 방법이며, 사람마다 선호하는, 즉, 더 지배적으로 사용하는 기능이 존재한다.

사고

외부의 것에 대하여 서로 다른 두 요소의 연결점을 파악하고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파악하는 기능이다.

감정

감각

직관

정신의 내적 기능

3.4. 인격유형론

앞서 말했듯, 정신의 외적 기능은 개인이 세계를 인지하는 방법이며, 사람마다 더 지배적으로 사용하는 기능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이것은 각각의 개인의 성향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3.5. 인격의 발달

3.6 투사와 전이


4. 정신의 해석

4.1. 단어 연상 검사

4.2. 꿈 분석

4.3. 정신질환

4.4. 싱크로니시티


5. 현대의 심리학 이론

5.1. 심리학의 5대 관점

5.2. 정신분석학

5.3. 학습심리학

5.4. 인지심리학

5.5. 생리심리학

5.6. 발달심리학

5.7. 정신질환


6. 분석심리학부의 오리지널 설정들

6.1. JUNG 아키텍쳐

6.2. 텔레파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