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ror: Player Unmovable

난 지금 암흑 속에 갇혀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다. 숨도 쉴 수 없다. 잠도 잘 수 없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저 게임 개발을 하고 있었을 뿐인데.

2개월 전, 나는 취직을 하기 위해 여러 회사를 찾아다니다가 '플러그소프트'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에 입사하게 되었다. 면접에서 연습했던 것과 다른 특이한 질문을 많이 받아 대답을 잘못해서 떨어지진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그런 걱정은 합격했다는 문자가 오자마자 사라졌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3년을 백수로 지냈기에, 합격했다는 소식은 나에게 크나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더 이상 돈에 쪼들리는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된다니! 통보를 받은 그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이틀 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첫 출근을 했다. 회사 건물에 들어서자 어느 직원이 내 이름을 물었고, 대답하자 7층으로 안내했다.

7층은 게임 개발팀이 일하는 곳이라고 직원이 설명해 주었다. 직원은 나에게 어떤 서류를 건네 주었고, 바쁜 일이 있어 먼저 내려간다고 하였다. 서류에는 내가 배치된 부서와 사무실 번호, 그리고 이 팀에서 하는 일이 적혀있었는데,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게임 개발팀 같았다. 그러나 여기서 하는 일은 평범한 개발과는 달랐다. 내 상상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일이었다.

7층에 있는 개발팀 사무실 문을 열자 내 눈앞에는 사무실이 아닌 푸른 초원이 펼쳐졌다. 빌딩 속 사무실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높은 하늘과 맑은 시냇물이 보였고, 오른쪽에 보이는 숲에서는 위에 옅은 푸른색의 이름표가 달린 사람들이 막대기를 휘두르며 나무라던지 돌 같은 여러가지 것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앞으로 한 발짝 내딛으니 시원한 느낌과 함께 서버에 접속했다는 메시지가 내 시야 가장자리에 나타났다. 난생 처음 겪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꿈꾸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접속했다는 메시지를 확인한 다른 팀원들은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물어보니, 팀장으로 보이는 분이 사무실 문은 현실과 게임 속을 연결하는 장치라고 설명해 주었고, 장치의 원리에 대해서 약간 이야기해 주었다. 원리는 하나도 이해 못했지만, 아무튼 회사가 엄청난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 후에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고, 게임의 개발 방향과 개발 방법에 대한 열띈 강의를 들었다. 나는 개발 막대기라고 하는 나뭇가지 하나와, 개발 메뉴얼이라고 쓰인 전자책을 한 권 받았다. 선배님은 내가 오늘 처음 왔으니, 다른 사람이 하는 거 구경하고 그 개발 메뉴얼을 정독하라고 하셨다.

둘째 날부터는 게임 개발을 했다. 내가 맡은 역할은 몹이나 NPC의 속성을 설정하는 일이었다. 몹이나 NPC를 나뭇가지로 건드리면 상태창이 내 앞에 나타났고, 나는 개발 메뉴얼에서 NPC의 이름을 검색하고 속성들을 채워넣으면 되었다. 처음에는 헷갈려서 오류도 많이 냈지만, 시간이 지나며 일이 손에 익어 하루동안 할 일을 3시간 만에 끝내는 경지에 이르렀다. 일을 끝내고 맵 곳곳을 돌아다니는 게 너무 즐거워 일을 최대한 집중해서 빨리 끝내는 것도 있었다.

그 날도 나는 평소와 같이 개발을 하고 있었다. 다른 팀원들은 밥 먹으러 구내식당에 가 있었고, 게임 서버에는 나만 접속해 있었다. 개발 팀은 비밀 맵인 신전 지하의 던전을 만들고 있었다. 보스의 속성을 설정하는데 오류가 발생해서, 계속 그것만 잡고 씨름하고 있었다. 이 보스만 만들면 신전은 완성하는 건데! 해서 밥도 안먹고 이 문제에만 매달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보스의 속성은 메뉴얼대로 입력해 놓았는데 왜 이럴까. 참 답답했다. 순간 보스의 위치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나서, 나뭇가지를 놓고 아래로 몸을 숙였다. 그런데 그 순간, 눈앞이 깜깜해지며 내 움직임이 멈췄다. 주변에서 들려오던 갖가지 소리는 침묵으로 변했고, 마치 마취를 당한 듯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숨도 쉬어지지 않았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적막이 내 주변을 휩쓸었다. 내가 볼 수 있는 건 어둠밖에 없었고, 삐이- 하는 서버 돌아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생각만으로 불러낼 수 있는 콘솔을 꺼내려 시도했지만, 게임 콘솔은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없었다. 이 상황을 겪는 것이 짜증났다. 내 몸을 내가 움직이지 못하는 것에 화가 났다. 누군가 해결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무작정 기다렸다. 이 상태에서 벗어나면 팀장에게 하소연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났다. 이쯤이면 점심 시간이 끝나고 팀원들이 서버에 접속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이 상태 그대로였다. 불안했다. 배고프다거나 목이 마르다거나 하는 느낌도, 화장실에 가고 싶다거나 하는 느낌도 나에게서 사라졌다. 게임 서버에 오류가 생긴 거라고 생각해서, 매일 8시에 있는 리부팅을 기다렸다.

하루가 지나고, 나는 그대로였다. 리부팅은 없었다. 내 머릿속은 최악의 상황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죽은건가?' '존재가 사라진 건가?' 심지어는, '이렇게 평생을 있어야 되나?' 같은 생각들. 아무도 나에게 이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려준 적이 없고, 메뉴얼에서도 오류에 관한 부분은 본 적이 없다. 난 잠을 자려고 했지만, 꿈 같은건 없었고,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로부터 잘은 모르겠지만 생각만 하며 한 달쯤 지난 것 같다. 보고싶어도 볼 수 없고, 듣고싶어도 들을 수 없고,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한 달쯤. 내 몸의 감각은 잊어버린 지 오래되었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만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나의 상황을 멋잇게 표현해낼 하나의 단어를 떠올렸다. '지옥' 아무것도 없는, 그런 지옥. 아무것도 느낄 수 없고, 움직일 수도 없다. 여기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오직 영원히 고통만 받을 뿐이다. 이것보다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 누가 나를 이 지옥에서 꺼내주었으면, 아니면, 이 게임 데이터에서 나를 찾아 삭제해주었으면.


플러그소프트가 개발 중인 신작 게임, 서버에 접속한 개발자 두 명이 앞에 떠있는 푸른 수정을 쳐다보았다. 수정 안에는 웅크린 여인의 형상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수정 위에는 붉은 빛의 이름표가 떠 있었다.

[봉인된 여신] HP ? / ?

수정을 쳐다보던 개발자들은, 한참이 지나서야 이윽고 입을 열었다.

"뭐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잖아. 완전히 삭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도 사람인데.."

"열심히 하던 녀석이었는데.. 씁쓸하네."

그렇게 두 사람은 발걸음을 돌렸다. 신전 지하의 끝없는 미궁 한가운데, 복도 한 쪽에 달린 횃불만이 수정을 따뜻하게 비춰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