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클과 팬티와 형제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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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쩝, 쩝, 쩝”

한 남성이 침대 위에서-정확하게는 침대에서 자고 있는 사람 위에서 피클을 먹고 있었다. 머리는 반쯤 벗겨져 번질번질한 이마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살찐 몸 위에는 삼각 수영팬티 한 장 만을 걸친 채, 피클 국물로 끈적해진 손가락을 끊임없이 움직이며 피클을 입 안에 집어넣고 있었다. 그리곤 이따금 먹기를 멈추고, 자신이 깔고 앉은 사람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의미를 찾기 힘든 오묘한 표정을 짓곤 했다. 하지만 이런 응시는 잠시 이어질 뿐, 곧 그의 손은 다시 커다란 피클 단지와 수염이 덥수룩한 입을 왕복하는 것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그저 피클을 먹는 것에만 집중할 뿐, 아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아무 생각도 없이 피클만 먹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엉덩이 밑에 깔린 채 곤히 잠든 사람을 바라보며, 자신의 형에 대해 생각했다.

그의 형은 모든 면에서 그보다 뛰어났다. 그가 6살이 될 때까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니가 네 형의 반이라도 따라가면 좋겠다’ 였다. 6살이 되고, 부모님이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뜬 이후 그에게 그러한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와 형의 격차가 줄어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가 교과서에 낙서를 할 때 그의 형은 시를 썼고, 그가 TV쇼를 보는 동안 형은 셰익스피어를 읽었다. 그의 형이 12살의 나이로 특수상대성이론과 관련된 학술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 그는 학교에서 졸고 있었다. 처음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어느 발렌타인 데이 때, 등에 ‘돼지새끼’라 적힌 채 팬티바람으로 친구들이 쏘는 새총을 피해 도망치다 형이 초콜릿과 편지를 한아름 안고있는 것을 보고 말았을 때, 그는 어느샌가 부모님께 지겹도록 들었던 말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되뇌고 있었던 스스로를 발견했다.

도서관이라는 곳에서 눈 먼 늙다리들이 찾아온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 그 늙은이들이 그들 형제에게 ‘변칙성’이 있다고 말했을 때, 그는 희망의 빛을 보았다. 평생 넘어서지 못했던 형이라는 거대한 벽을 넘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결과는 어땠는가? 그의 형이 우주를 수 십 번 뒤엎고도 남을 힘을 깨우치는 동안, 그가 얻은 것은 주머니 속에 주머니보다 큰 것을 넣는 방법과, 순간이동 능력뿐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모든 것이 같이 느껴졌다. 형을 넘어서겠다는 말도 안되는 목표는 버린 지 오래 였다. 그저 예전에 팬티바람으로 도망칠 때 느꼈던 그 같은 기분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마침 그에게는 그럴 능력이 있었고, 그는 그대로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그 날도 그는 피클을 먹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남의 집에서 피자를 시켰다가 집주인이 그를 쫓아내는 바람에 피클밖에 건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수영팬티 바람으로 쓰레기장의 침대 위에서 피클을 쩝쩝거리고 있었을 때, 유행이 한참 지난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 입은 사내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몇 년간 보지 못했던 그의 형이었다.

“형이 여긴 왠일이여?”

“아우야,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것이냐?”

“보면 모르나? 피클 먹지.”

“네게 여러 번 이야기를 하지 않았더냐. 네 힘은 고작 그런 곳에 낭비할 것이 아니다. 더 큰, 더욱 올바른 일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하하, 형 농담은 항상 웃기다니까.”

“농담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나와 함께“

“난 그런 데 관심 없어. 형이나 실컷 해.”

“…앞으로도 계속 그런 식으로 살겠다는 것이냐?”

그런 식으로? 뭐, 커플들이 떡치는거나 애들 딸치는거 구경하고, 자는 사람 얼굴에 낙서하고, 남에 집에서 드라마 보는거? 아주 보람찬 일인데.”

“나는 너와 헤어진 후로 여러 번 수 많은 사람들을 구했다. 그러나 구하지 못했던 때가 더 많지. 그러나 네가 나를 돕는다면 지금보다는 더 나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것도 형의 그 잘난 미래 예지로 본 거야?”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

“이보셔, 형님. 난 세계의 운명이니 뭐니 하는 그런 거창한 건 딱 질색이야. 나는 그냥 사람들이 먹고 자고 놀고 섹스하는 틈에 끼어서 빤스 바람으로 노는게 훨 좋다고.”

“지금은 나의 말을 따를 생각이 없구나.”

“앞으로도 없어.”

“….생각이 바뀌면 나를 찾아오거라.”

그 말을 끝으로 그의 형은 그를 떠났다. 그리고 그는 다시는 형을 만나지 못했다.

그는 재단이 자신에게 붙인 이름인 SCP-999-J에 대해, 특히 뒤에 붙은 J에 대해 생각했다. 온갖 기상천외하고 기기묘묘한 것들이 넘치는 재단의 입장에서, 같다는 것 말고는 큰 위험이 없는 징글맞은 빤쓰 아저씨는 그저 농담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SCP-999-J는 자신의 엉덩이 밑에 깔린 채 곤히 잠든 사람을 바라보며, 자신의 형에 대해 생각했다. 세계를 구하니 뭐니 하며 돌아다니다 영원히 꿈속에 갇혀버린 형을. 그리고,

“아이고 의미 없다. 피클이나 먹자.”

하긴. 그까짓 것들이 뭔 대수란 말인가. 그는 마지막에 먹으려고 아껴 뒀던 커다란 피클 조각을 피클 단지 밑바닥에서 건져 올렸다. 그 순간, 그의 엉덩이 밑에서 잠들어 있던 사람이 눈을 떴고, 그는 놀라 피클을 떨어뜨렸다. 피클은 방금 전까지 일정하게 들썩이던 가슴 털 위로 사뿐하게 안착했다.

“오 젠장. 되는 일이 없군.”

SCP-999-J는,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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