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P-001-KO

꽃이 예뻤습니다.

물론 꽃이 다는 아니었습니다. 너르고 적당히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었고, 언덕 몇 개가 그림처럼 나무들을 그 품에 안고 동네를 감싸고 있었죠. 하늘은 항상 맑거나 기분 좋게 비를 내렸고 바다는 너무 푸르러서, 식상한 표현입니다만, 속이 다 비쳐 보였습니다. 무릉도원이 이런 곳일까? 우리끼리도 얘기를 하던 게 생각이 나네요.

그러니까, 기동특무부대 에타-19 대원들 말입니다. 유토피아 찾는 애들이라고 재단 내에서도 소문 많던 우리 부대 사람들. 그러게 별칭을 왜 히슬로다에우스 따위로 지었는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언제는 높으신 분 하나가 너희는 평소에 놀러 다니기만 하면서 급여는 재깍재깍 타 먹는다고 꼽사리를 주던데.

뭐, 우리가 ‘거대한 변칙 장소의 격리에 특화된’ 부대인 것까진 맞았습니다. 그 안에 사람들이 흔히 살고 있던 것까지도 맞고요. 근데 그 장소들이 과연 예뻤느냐? 음, 물론 아름다움이야 주관적인 기준이긴 하지요. 한 번은 시궁쥐가 매 일주일마다 1.2배로 증식하는 동 하나 크기의 주로 파이프로 이루어진 변칙 장소를 찾은 적이 있는데요…

왜요, 실망했어요? 그 때는 1930년대였습니다. 사람이 달에 발을 딛는 순간을 텔레비전으로 편하게 볼 수 있는 현대와는 많은 게 달랐죠. 일본이 중국에 전쟁을 선포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와이를 폭격했습니다. 소련의 레닌그라드는 몇 년째 포위된 상태였고요. 시궁쥐 떼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영양을 보충해 줄 수 있는지 알면 놀라실 겁니다.

그리고 격리란, 우리의 경우에는, 그 사람들의 퇴거까지도 뜻하는 단어였습니다. 피를 볼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대개는 굶주리고 가혹한 환경에 오래 노출되어 몽둥이 하나 들 힘이 없었으니까요. 그들이 우리를 탓하던 눈동자가 꿈에 나오지 않는다곤 말 않겠습니다. 그나마 그들이 기억 소거라도 잘 받는단 게 우리에겐 위안을 주었습니다.

네, 우리가 더 더럽고 추잡한 장소에서 사람들을 몰아낼수록 죄책감이 덜했단 것을 우리 스스로도 알고 있었단 겁니다. 그것들은 집이 아니었고 다만 어떤… 어떤 초롱아귀가 흔들던 낚시의 미끼에 불과했노라고. 그들이 그런 더럽고 추잡한 미끼일지라도 낚을 수밖에 없는 사회에 우리는 언젠가부터 서러움을 쏟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런 ‘정교한 미끼’에 우리가 얼마나 놀랐는지 이해가 되실까요. 명태 어선이 두 척 있었습니다. 스트레스 신호 하나 없이 홀연히 사라져 버린. 그 근방이 확실히 해적이 나올 만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암초에 걸린 걸까요? 음, 하나라면 몰라도 둘 다 그럴 리가요. 풍랑 때문은 확실히 아니었습니다. 그 바다는 항상 맑고 청명했으니까요.

이상할 정도로 말입니다. 모든 기상 기록과 어부들의 소문을 모아 봤지만, 그 근처에 이슬비라도 내린 적이 있다는 기록은 최소 20년 이상 거슬러 가는 것이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일본 제국은 그 즈음에서 조사를 멈췄습니다. 당장은 전쟁이 더 급한 시기였으니까요. 그리고 재단은 항상 첩자 짓에는 일가견이 있었습니다.

물론 재단이 모든 방면에서 유능한 건 아니었습니다. 지휘부는, 내가 듣기로는, 거기에 무슨 괴물이 있는 것으로 추측을 했다는군요. 최소한 광범위한 대기 조작이 가능하며, 최악의 경우에는 인지 재해 또는 항밈 성질이 있을지 모르는 괴물. 그런데 우리가 파견된 이유요? 납치된 어부들이 만약 살아 있으면… 제 말은 우리는 사람 처리 경험이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얘기가 그렇게 된 겁니다. 일본 제국과 전쟁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재단은 우리에게 최첨단의, 그러나 분명히 최소한의 무기만 배정했습니다. 아귀의 열린 아가리 속으로 자진해 가는 꼴이라니. 그런 우리가 겨울의 추적추적 내리는 비 내리는 바다가 초여름의 맑고 아름다운 바다로 변한 걸 발견했을 때의 공포는…

그러나 그 곳에 괴물이나 아귀 같은 건 없었습니다. 섬 하나가 다였죠.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는 표현을 내가 땅에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사람한테도 그 때까진 쓴 적 없는 표현이었는데. 아름다움은 제쳐 두고, 사실 인지 재해나 항밈은 아니었다는 안심이 당시에는 가장 컸던 것 같네요. 의외의 상황에 당황한 게 저 혼자는 아니었거든요.

언덕 뒤 모래사장에 배를 댔습니다. 원주민(만약 있다면)에게서 배를 보호하기 최적의 장소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실종된 배 두 척이 거기 있었거든요. 돌아오는 길에 탐사하기로 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섬의 식생은, 기후에 걸맞지 않게도, 한국적이었습니다. 개나리와 동백이 같이 피어 있었단 점을 논외로 친다면.

솔직히, 제가 위에서 쓴 것 외에 변칙은 눈을 씻고 찾아도 없었습니다. 섬은 마을 하나가 들어설 만한 크기였습니다. 언덕에 올라서 정탐한 결과론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게 그 크지도 않아서 전경이 어렵잖게 보이는 섬에 대해 수집할 수 있는 정보의 전부였습니다. 마을이 이상할 정도로 비어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그랬습니다.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의문은 웃음소리와 함께 깨졌습니다. 언덕에서 흐르는 계곡 밑에서 나는 소리였습니다. 사람들 수십 명이 계곡 밑 호수에서 멱을 감고 있었습니다. 평상 위에는 잘 익은 수박이 빨갛게 속을 내고 있었습니다. 저게 미끼에 걸린 사람들이었을까요? 식민 지배에 신음하는 조선인들보다는 행복해 보이는 저들이?

망을 보던 제 어깨에 누가 손을 얹은 것은 그 때였습니다. 사람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그의 손에는 동백 하나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가 했던 소리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당신도 어르신을 만나러 오셨나요. 네 아마도요 근데 그 사람이 누구죠. 당신은 뭔데 잘 훈련된 군인 무더기에 기척도 안 내고 접근해서 겁도 없이 말을 거는 겁니까.

질문을 할 시간은 없었습니다. 저는 반사적으로 경보를 울렸고 그 결과는, 음, 제 부대원들도 저만큼이나 기겁하는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몇 십 분을 걸려서 등반했던 언덕을 꽁지가 빠져라 하산하는 데에는 5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시발 그러게 왜 철거 용역한테 괴물 사냥 따위를 맡기는 건데? 누군가 소리를 지르더군요.

우리는 그 말에 저 섬이 무슨 괴물이 맞으리라 무의식적으로 합의를 했던 모양입니다. 배를 조사해야 하지 않나? 저 사람들이 사라진 어부들과 같은 사람들인가? 저는 아직도 어떻게 아무도 사진 한 장 찍을 생각을 못 했는지가 가장 놀랍습니다. 예, 프로에게 쪽팔리는 일이란 건 압니다. 그러니 아직도 동료들이 저 얘기에 그렇게 기함을 하는 거겠죠.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저 일이 차라리 다행이었습니다.

재단은 항상 운이 좋은 편이었다.

확률 조작 변칙을 몇 개 들고 있어서는 아니다. 그것보다는, 뭐라야 하나, 그냥 우리보다 더 나은 패를 들고 있는 조직이 없었거든. 자금 면으로 보나 인력 면으로 보나 역사 면으로 보나, 재단은 모든 변칙 조직 중에서도 항상 손에 꼽는 자리에 있었고, 정상 수호란 목적의 조직 중에서는? 선두를 놓친 적이 더 드물 거다.

그런 우리의 지위가 흔들린 적이 몇 번 있었다. 첫 번째는 국제 연맹의 창설 때였지. 이름만 거창하고 허울 좋은 반상회 조직이란 건 나도 안다. 우리가 우려한 건 그 조직 자체보다는, 그 창설이 여러 변칙 공동체들-스리포틀랜드나 히브라실 같은-의 결속을, 현대적 의미에서 새로이 다지는 계기가 되었단 데 있었다.

물론 모든 변칙 공동체들이 연합한다고 해도 재단이 밀리지는 않는다. 최소한 군사나 권력 면에서는. 진짜로? 그건 나도 모른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재단 대부분의 인원과, 더 중요하게는, 상대의 대부분도 저 ‘사실’을 믿고 있단 거였지. 권력은 사람들이 권력이 있다고 믿는 곳에 존재한다고, 우리는 믿음을 사서 선두의 위치를 유지했던 거다.

그리고 사는 데는 비용이 들기 마련이지. 우리는 그 비용을 공포로 치렀고. 공포라고 하니까 뭐 대단하게 들리는데, 그냥 소규모 변칙 공동체들 몇 개를 부쉈단 소리다. 우리에게 불만을 가진 언행이 보일 때마다 말이지. 에타-19는 본인들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는지를 아마 몰랐을 거다. 우리가 그렇게 믿게 만들었거든.

아, 그러기 위해 우리가 했던 거짓말들이란. 거기에 있는 게 무슨 괴물이라고 착각했다고? 그럼 왜 에타-19를 보냈겠나? 재단에는 괴물과 맞서 이긴 뒤 사람들을 대피시킨 전적이 있는 부대가 서너 개는 있는데. 그럼 왜 그런 구라를 쳤냐고? 초기 사태 파악에 실패하고도 변칙 공동체 하나를 무사히 격리까지 한 재단, 멋지지 않나?

응, 멋지지 않아. 결과적으론 그렇게 됐네. 이제 당신도 이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감을 잡았을 거라 믿는다. 고작 수십 명이 사는 동네 하나 크기의 변칙 공동체 격리에 실패하다니. 심지어 초기 사태 파악에도 실패하고 말이지. 재단의 외무부, 정보국, 내부보안부는 이 사태가 재단 내외부에 얼마나 알려졌는가를 파악하느라 비상이 걸렸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 운이 좋았다. 재단 내에서 소문은 미미했다. 아마 에타-19 본인들부터가 이 사태를 수치스럽게 여겼기 때문이겠지. 바깥 상황은 우리에게 더 유리했고. 우리를 제외한 그 어떤 변칙 공동체와 조직도 이런 사태가 있었다는 것 자체를 모르고 있었거든. 이상할 정도로.

하지만 그건 당장의 상황이었고, 그 섬이 다른 외부 조직과 접촉할 여지가 남아 있는 한, 다시 말해 그 섬이 존속하는 한, 이 사실이 새어 나갈 염려가 있단 건 분명했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건 사후 수습을 해야 하는 입장에 처해 있었지. 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점은, 우리가 왜 그리 직접 나서는 방안은 꺼렸을까 하는 거다.

내 생각에 우리가 두려웠던 건 초상 세계의 여론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에타-19를 다시 파견했는데도, 만약, 정말 만약에, 이런 사태가 다시 생긴다면… 알겠지. 우리에게도 자기 확신이란 건 필요했다. 실패에 대한 핑계 말이야. 예컨대, 에타-19는 감정 조작까지도 가능한 현실 조작 필드 안이라 그리 무력하게 후퇴한 것이었다고.

그래서 재단의 붉은 오른손이 다른 손을 잡기로 결정한 거였네.

왜 하필 뱀이오?

평의회의 답은 단순했소. 그들만큼 초상에 대해 잘 아는 조직이 있나? 맞는 말이었고, 우리가 치려는 장소를 고려했을 때 적절한 답이기도 했지. 도서관을 기지로 쓰는 조직이 초상에 대해 무능하기는 어려울 테니까. 다만 우리가 걱정이었던 건 그 유능함이었소. 뱀에 대고 사기를 치려다가는 손이 물리기 십상 아니오?

뭐 우리가 뱀에게 사기를 치려던 게 처음은 아니었으니까. 혼돈의 반란이라는 이름을 달고 재단을 적대하는 척하며 접근할 때부터가 사기였다고 할 수도 있겠소. 평의회에서는 ‘외교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여 궁극적으로 도서관을 점거’하는 걸 우리의 목표로 잡았고, 그 목표에도 거의 도달해 있던 우리였소.

그들이 가진 그 알량한 도덕 때문에, 뱀과 ‘우호적인 관계‘를 만드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거든. 2차 대전 동안 우리는 뱀에게 몇 차례 화력 지원을 할 일이 있었소. 대개는 그럭저럭 중요해 보이는 초상 유물들을 추축국의 손아귀에서 빼 오는 일이었지. 학살 무기를 막는다는 명목 하나로 아무 대가 없이 그리 헌신할 조직은 많지 않소.

그러니 그들이 마법 폭군 아래서 신음하고 있는 백성들을 구원해야 한다는 서사에 얼마나 마음이 들떴겠습니까. 물론 이 인간들이 고작 저런 낚시에 쉽게 잡힐까 걱정은 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리 거짓말도 아닌 것 같고 말이지. 내 말은 굳이 어민들을 자기 섬으로 납치건 초대건 해서 키우는 사람이라면 어딘가 정신이 나간 건 분명하잖소?

뱀의 정의감은 미끼를 덥석 물었소. 뱀은 우리가 뿌린 미끼를 손에 들고 와서 우리에게 지원을 요청했지. 우리는 그래 그러지 뭐 하고 그 요청을 받았고. 그렇게 해서 뱀의 손 정예 열댓 명과 혼돈의 반란 군사 백여 명이 CIS 아리안느에 탑승하여 홍콩에서 조선으로 출발을 하게 된 거요.

아, 하나가 더 있었소. 평의회에서 몰래 보내 준 대원 한 명. 그 섬에 처음으로 가 봤다던 재단 소속 인원이라고 했는데, 사실 굳이 보내 준 이유는 모르겠소. 길 찾기야 좌표만 찍어 주면 우리가 할 일이고, 가서 지원이건 전투건 해 주기엔… 글쎄요, 그런 쪽으론 훨씬 더 경력이 있는 건 뱀의 손 아닌가 싶더군요.

뭐 물론 그 때는 그런 생각은 안 했소. 뱀의 손 애들 신경 쓰느라 바빴거든. 아일랜드엔 뱀이 없다는 얘기 아시오? 성 패트릭이 뱀들을 쫓았다고 하지요. 개소립니다. 내 생각엔 그냥 뱀이 바다랑 영 연이 없어서 아닐까 싶어요. 반 정도는 바다를 보고 흥분해서 날뛰고 나머지 반은 멀미를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원…

우리는 며칠이 지나지 않아 인근 해역에 도착했소. 평의회가 파견해 준 대원의 안내와는 많은 게 달랐지. 음, 물론 바다는 매우 맑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뿐이었고, 날씨부터가 창창한 것과는 아주 많이 거리가 멀었소. 그렇게 지독한 비며 바람이며 안개는, 내가 바다를 많이 다녀 본 건 아니지만, 처음 겪어 봤으니까.

그런데 시발 대체 연합군 오컬트 구상의 함선이 이 해역에서 뭘 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