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P-983-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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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신 일자 JUN/30/2022


승인 등급 III - 비밀


일련번호 SCP-983-KO


등급 케테르-비격리 (KETER-UNCONTAINED)


격리 책임자 허버트 "고든" 리 관리이사관


연구 책임자 채화영 박사


특무부대 MTF 시에라-35



특수 격리 절차:


scp-983-ko.png

원거리에서 촬영된 SCP-983-KO.

특수 격리 절차:


SCP-983-KO는 현재 비격리 상태다. SCP-983-KO의 추격을 위해 제140기지를 근거지로 하여 해양특무부대 시에라-35("해적사냥꾼")를 조직하며, TF 산하에는 인도양의 제3전대와 태평양의 제5전대를 두고 각각 SCPS 맥그레이브와 SCPS 어드미럴 고든을 전대 기함으로 삼는다. 해양특무부대 시에라-35는 SCP-983-KO의 추격을 위해 필요할 때 인근의 재단 해상 군사자산의 지원을 요청할 권한이 있다.

SCP-983-KO의 현 소유주인 GOI-0531의 근원에 대한 추적과, SCP-983-KO의 생리적 또는 기계적 특성에 대한 탐구가 현재 연구팀의 주요 목표다. GOI-0531 및 SCP-983-KO에 대해 수집된 모든 자료는 태평양사령부 기록보관실에 신청하여 열람할 수 있다.


설명:


SCP-983-KO는 혹등고래(Megaptera novaeangliae)의 해부학적 구조를 가진 수중 항행체 개체다. 신체 상당 부분은 목재 및 금속으로 대체되어 있으며, 몸길이 70여 미터에 달하는 크기 또한 해당 종에서 보고된 바 없을 만큼 거대하다. 내부엔 적어도 수십 명의 인원이 출입 및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이는 SCP-983-KO의 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에서 대상이 혹등고래 종의 생물 개체인지, 인위적으로 제작된 존재인지는 불확실하다.

SCP-983-KO의 등 또는 상단부에 해당하는 구역은 목제 범선, 특히 한선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의 목조선 설계가 반영된 목조 구조물이 축조되어 있다. 구조물은 4~5개 구획으로 분리되어 SCP-983-KO 동체의 움직임에 따라 함께 움직이며, 각 구획의 상면과 측면에는 돛대나 무장 따위를 내놓고 사용하기 위한 개폐구들이 존재한다.

SCP-983-KO는 인원이 탑승한 상태로 수상 또는 수중에서 활동할 수 있다. 수상에서는 종종 돛을 이용해 풍력으로 항해하기도 하나, 대부분의 경우는 꼬리지느러미를 움직여 발생하는 추진력으로 이동한다. SCP-983-KO가 잠수해도 내부 인원들의 생존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추정되나 이것이 가능한 원인은 불명이다.


SCP-983-KO에는 현재 신원불상의 승조원들이 탑승해 있다. GOI-0531로 지정된 이 집단은 전원 SCP-983-KO 내부에 거주하는 것으로 보이며, SCP-983-KO를 벗어난 활동은 지금까지 보고된 바 없다. 이들은 SCP-983-KO의 항로를 조종할 수 있는 것이 거의 확실시되나 이 역시 내부 구조나 원리는 알 수 없다.

GOI-0531는 SCP-983-KO를 이동과 전투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전까지의 조우 상황에서 이들은 구조물 외부의 개폐구로 구식 화약무기를 발사하거나, 내부에서 공생 관계로 두고 있는 듯한 수생동물을 내보내어 공격을 가하거나, SCP-983-KO를 직접 돌진시켜 충각을 가하는 등의 전투 방식을 구사한 바 있다.

이들은 이러한 전투 능력을 이용해 재단의 격리 시도를 회피할 뿐만 아니라 재단 관리 하의 개체를 포함한 다수의 해양성 변칙 개체를 공격해 무력화시키고자 행동하고 있다. GOI-0531에 의해 재단 확보 이전에 파괴된 변칙 개체나 안전한 격리에 위협을 받고 있는 개체는 적지 않으며, 이러한 피해를 막기 위해 SCP-983-KO의 변칙성과 전투력에 대해 면밀한 분석 및 대비가 필요하다.

GOI-0531는 재단의 추적에 대해 대부분 무응답과 회피로 일관하고 있으며, 간혹 앞서 언급했듯이 변칙 개체를 공격해오는 과정에서 교전이 벌어져도 큰 피해를 입지 않고 조기에 퇴각했다. 이런 사유로 SCP-983-KO에 대한 재단측 정보는 매우 부족하고 부정확하다.


2022년 6월, 재단 인원이 우연하게 GOI-0531에게 구조를 받아 SCP-983-KO에 승선하여 내부를 관찰하고 복귀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본 문서는 이하 보고서의 분석이 끝난 뒤 새롭게 인지된 사실들을 추가하여 갱신될 예정이다.


부록 983KO-LOG-95:


scps-admiral-gordon.jpg

사고 전 마지막으로 촬영된 사고기.
SCPS 어드미럴 고든 함상에서 촬영.

2022년 6월 22일, 해양특무부대 시에라-35 소속 수중탐색부대원 해롤드 황 상사와 존 왓킨스 스미스 병장은 제5전대의 기함인 해상추적모함 SCPS 어드미럴 고든에서 슈퍼 퓨마 대잠헬기에 탑승해 SCP-983-KO의 소나1 신호를 쫓고 있었으나 악천후로 인해 헬기가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 사고 직후 기절한 채 가라앉은 스미스 병장을 구하기 위해 황 상사는 구명장구를 벗고 잠수했으나 두 인원 모두 실종되고 말았다.

수상에서 구조수색 작전을 펼치던 제5전대는 황 상사와 스미스 병장이 실종되고 5분여가 경과한 시점에 수중에서 SCP-983-KO의 재출몰을 나타내는 소나 신호를 포착했다. 신호는 빠르게 소멸했으나, 65시간 후 해당 지점에서 130해리 떨어진 해역에서 다시 포착되었으며 이후 SCP-983-KO는 해수면으로 부상했다.

SCP-983-KO는 재단측 실종자 두 명을 태운 작은 뗏목을 내보낸 뒤 잠시 머무르다가, 곧 잠수하여 추적을 벗어났다. SCPS 어드미럴 고든이 뗏목을 회수하여 황 상사와 스미스 병장을 무사히 구조했다. 두 인원은 며칠간의 입원 후 건강을 회복하여 임무에 복귀하였다.

이하는 해롤드 황 상사가 조난 당시에 SCP-983-KO와 그 탑승자들을 관찰한 바를 위주로 작성한 수기 일지다.


#1

나는 현재 SCP-983-KO 내부에 있다. 해상탈출 과정에서 존과 함께 표류했고, 구조를 기다리던 중 이들이 나를 먼저 발견했다. 983-KO의 아가리를 통해 우리를 내부로 들인 자들은 비교적 젊은 선원들이었고, 몇은 나와 말이 통했다. 이들이 자신들을 청해진이라 소개했으므로 GOI-0531의 명칭을 임시로 청해진이라 정하겠다. 그 편이 짧으니까.

존은 기절했지만 생명에 지장은 없어 보인다. 청해진의 선의라는 자가 존을 진찰했고, 나와 존을 선실로 보내 휴식하게 했다. 그들은 따뜻한 음료를 제공했다. 견과가 떠있는 것이 꼭 율무차 같았다. 경계를 풀 순 없지만 언제까지 있게 될지 알 수 없는데 마다할 수도 없으니, 맛있게 받아 마셨다.

곧 청해진의 지도자가 선실에 찾아와 나를 면담했다.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으므로 젊은 선원의 통역을 받았고, 한자와 영어의 필담을 곁들였다. 대화는 짧게 끝났으며, 요점은 이러했다.

  • 자신은 청해진 대사 장보고다.
  • 동료가 회복되면, 적당한 때에 돌려보낼 것이다.
  • 돌아가면 추적과 방해를 중단하라고 전하라.

신라의 무인 장보고 본인이냐는 질문에 그는 그렇다고 짧게 대답했다. 쉽사리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그 자리에선 더 캐물을 기회를 얻지 못했다.


#2

이 구조물은 잠수함이라기엔 너무 이상하다. 내부 격벽 구조는 차치하더라도, 내외부를 가리지 않고 창이나 문 같은 건 모두 그냥 뚫려 있거나 경첩 달린 문짝으로 닫혀 있을 뿐이다. 틈을 막기 위한 장치는 전혀 없다. 그럼에도 내부 공간에 물이 들어오지 않는다. 마땅히 조명같은 것도 없지만 은은한 불빛이 선내에 감돌고 있어 보고 이동하는 것에 지장이 없다.

나와 존에게 내어준 방은 아가리를 통해 직접 접근할 수 있는 층에 있으며, 복도에서 관찰한 바로는 위로 올라가는 통로가 몇 군데 있다. 아마 위층이 외부에서 관찰 가능했던 전투 구조물 공간일 것이다. 상황시에 위로 올라가야 하는 구조라니 고생 깨나 하겠다.

scp-983-ko-log1.png

방은 그리 넓지 않지만, 싱글 사이즈 쯤 되는 단층 침대 두 개가 평행하게 배치되어 있다. (그림에 그려진 것이 내 반대편 침대, 그러니까 존이 누워있는 침대다. 존은 생략.) 얼추 보이는 내부 규모와 인원수를 어림해보면 모두가 이런 방을 쓰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고위 장교나 손님맞이를 위한 방이 아닐까 추측한다.

안쪽 벽과 바닥은 고래의 생체조직인 듯하다. 근조직에 얇게 덮인 갈빗대가 보이고, 표면에선 가끔 혈관이나 근육이 맥동친다. 다른 방향은 사람이 추가로 세운 벽과 천장이 있고 이것을 지탱하기 위해 복잡하게 연결된 트러스 구조물이 서 있다.

유동적인 근육과 휘지 않는 나무벽이 완벽하게 맞물려 붙어 있는 설계는 놀랍다. 벽 자체가 공간의 형태에 우선 맞춰져 있고, 살과 근육이 마치 벽을 잡아주듯이 돌출되어 있으며, 그 틈새는 끈으로 단단히 묶여 있다. 질긴 끈을 이용한 결속 방식은 다우선의 그것과 같아 보인다.

선원들이 식사를 가져왔기에 글을 줄인다. 메뉴는 구운 생선 요리와 죽 한 그릇이다.


#3

존도 정신을 차려 함께 식사를 마쳤다.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발을 바닥에 딛더니 기겁을 하는 광경이 볼 만 했다. 식기를 가지러 돌아온 선원이 중년의 고참 선원을 데리고 와서 몇가지 문답을 나눴다. 통역을 거치느라 고생했지만 대충 뉘앙스는 이랬다.

상대가 물은 것과 내 답변은 이러했다.

  • 이 배는 조난한 수부2를 구한다. 하늘에서 떨어진 그대는 정체가 무엇인가?
  • 나는 해양부대 부사관이다. 보직 특성상 항공기에 탑승할 일이 많다.
  • 항공기란 그대들의 배 곁에서 날아다니던 그것을 말하는 것인가?
  • 그렇다. 요즘은 해군에서도 흔히 쓰이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물은 것과 그의 답변은 이러했다.

  • 당신들은 차림새나 말하는 것을 보면 요즘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맞는가?
  • 저마다 사정이 다르나, 충분히 오래 산 이들도 있다. (웃으며 대답함)
  • 그렇게 오래 활동했다면 어째서 이제서야 나타났나? 항공기도 처음 봤나?
  • 우리는 별세계를 다니다 최근에서야 돌아왔다. 모르는 것이 많다.
  • 당신들의 지도자는 장보고를 자칭했는데, 이것은 사실인가?

그러나 이 질문에는 마땅히 답변하지 않았다.


#4

존은 다시 잠들었다. 시간도 늦은 듯하고 피곤이 몰려오지만 심란한 탓인지 잠이 오지 않는다. 장보고는 권력다툼에 밀려 죽었고, 청해진은 그와 함께 사라졌다. 그러나 웬 고래를 타고 "별세계"를 항해하다 돌아온 장보고와 청해진이 여기에 있다. 이들은 누구인가?

듣기로는 이곳의 선원들은 대개 조난당해서 죽을 마당에 거두어져 눌러앉은 뱃사람들이라 한다. 그것은 우리 둘도 마찬가지다. "장보고"는 우릴 풀어준다고 했지만 정말 그럴지는 알 수 없다. 존에게는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안심시켜 뒀지만…

일단 중요한 건 목숨을 건졌다는 것이다. 이들을 의심하고 앞일을 걱정하는 건 잠시 나중으로 미뤄도 될 것이다.


#5

어제부터 도움과 통역을 도맡고 있는 젊은 선원이 아침식사와 함께 안대를 가지고 왔다. 실내가 항상 밝기 때문에 취침시엔 안대가 필요한데, 손님맞이가 오랜만이라 깜빡했단다. 아무래도 2박 이상을 시킬 모양이다. 더욱 심란해진다.


#6

아침 식기를 가지러 온 젊은이에게, 혹시 내부를 돌아다니거나 다른 선원들과 대화를 나눌 수 없겠냐고 물어봤다. 체류가 짧게 끝나든 길어지든, 아니면 혹여 계속 머무르게 되든, 이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를 빨리 구하는 것이 이득일 것이다.


#7

기대 이상으로 일이 잘 풀렸다. 많은 선원들이 항공기에 관심이 있어 내 이야기를 마침 듣고 싶어했다며, 그들은 나를 위층의 전투갑판에 들였다. 그곳이 SCP-983-KO에서 가장 넓은 공간이라 평상시에는 광장처럼 쓴다는 듯하다.

scp-983-ko-log2.png

대놓고 그리고 있을 수가 없어서 방으로 돌아온 뒤에 기억으로만 그린 것이라 부정확할 것이다.

전투갑판은 세 개의 큰 마디로 나뉘어 있고 각 마디는 트여있다. 마디의 사이는 예의 그 튼튼한 끈으로 묶여 연결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마치 거대한 판옥선의 상갑판에 뚜껑을 덮어놓은 것과 같은 구조인데, 측면에는 포구가 잔뜩 뚫려 있고, 각 포구 앞에는 수레에 얹힌 대포가 배치되어 있었다. 그 사이사이에는 위로 뚫린 포구에 배치할 수 있는 작은 대포들도 있었다. 맨 앞 마디에는 더 큰 대포도 둘 있는데, 전투갑판 앞의 방을 향하고 있었다. 묶여있는 방식을 보면 아마 발사할 때는 위로 들어올려서 바깥을 노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큰 돛대 두 개는 세우거나 젖혀둘 수 있어서, 돛대 꼭대기에 연결된 쇠사슬을 도르래로 감아 동작시키는 방식이었다. 보이는 도르래는 하나 뿐이었는데, 나머지 하나는 앞쪽의 항해 선교에 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돛을 조작하기 위한 많은 밧줄이 곳곳에 있었다. 포구든 돛대 구멍이든 역시 막혀있지 않았고, 역시 물이 새지 않았다.

내가 관심을 보이자 그들은 작동하는 시늉을 해보이기도 하며 설명해줬다. 대부분의 선원은 나와 말이 잘 통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자 그들은 한 소녀를 불러와 나에게 쓰개를 씌워주었다. 그것은 아마 일종의 텔레파시 보조 장치인 모양이었다. 잠시 연습을 받자 생각으로 소통하는 진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장치는 그 소녀만 다룰 수 있으므로, 대부분의 이야기는 내 방시중을 해주던 젊은 선원이 통역해주면서 이루어졌다.

청해진 선원들과의 교류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약간의 선입견과 달리 이들은 미개한 과거인이 아니었다. 궁금해하는 부분도 더 기술적인 통찰을 담고 있었다. 이미 증기기관 등의 화석연료 동력 장치는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그것과 비슷한 엔진을 만들어 날틀에 달았다는 점을 설명했다. 그러자 청해진 선원들은 자신들도 "별세계"에서 유인 비행체는 몇몇 목격했지만 고향땅에서도 어느새 그런 기술이 등장했다는 것이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내가 해군에서 그런 항공기에 탑승해 조난자나 침몰선을 탐색하는 일을 하다가 이곳으로 왔다는 이야기를 하자 선원들은 박수를 쳤다. 자신들도 뱃사람이기에 일의 중요함과 고됨을 알겠다는 공감과 칭송이 이어졌다. 나는 그들 그룹에서 제법 괜찮은 위치를 점할 수 있었다.

아, 그리고 방에 들어와보니 선의가 존을 진찰하고 있었다. 존의 상태는 내가 보기에도 상당히 호전되었다. 선의는 내일이면 보내줄 수 있을 거라 하고 방을 나갔다. 음, 막상 떠날 수 있다는 소리를 들으니 안심되면서도 솔직하게 마음 한켠에 아쉬움이 있다. 이 배와 여기 사람들은 더 살펴보고 싶은 신비함을 가지고 있다. 오늘 저녁엔 그들을 양껏 관찰해둬야 하겠다.


#8

저녁 식사는 전투갑판에서 조촐한 잔치로 치러졌다. 앞쪽 갑판 한가운데 뚫린 구멍으로부터 화사하게 빛나는 불길이 일렁였다. 그 불은 나무를 태우지 않았지만 생선을 굽거나 물을 끓이는 데엔 지장이 없고, 불티는 온 선내에 퍼져 은은한 불빛을 밝히고 있었다. 이 기묘한 화로를 중심에 두고 온 선원이 둘러앉아서 저마다 음료를 즐기거나 고기를 약간 맛보는 정도로 분위기를 즐기는 것이 그들의 잔치법인 듯했다. 나와 존은 가운데에 앉혀졌으며, 배가 고팠으므로 음식을 양껏 먹었다. 다른 선원들은 식사보단 우리와 대화하는 데 관심이 더 많아 보였다. "장보고"는 멀찌감치에 앉아 음료만 마시고 있었다.

나는 우선 내쪽에서 정보를 계속 제공하는 것은 삼가기로 했다. 청해진이 향후 재단과 어떤 관계를 갖게 될지 속단할 수 없기에, 현재 나의 생존을 위한 필수적 거래를 제외한 쓸데없는 발언은 이적행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후 그들의 발언 상당수를 내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을 볼 때, 어차피 말했더라도 서로 겉돌았을 것 같다.

선원들 상당수는 이제 내가 외부인이라는 걸 그리 신경쓰지도 않게 된듯 보였다. 몇은 나에게 일하는 요령을 알려주려다가 일전의 그 고참 선원이 곧 보내줄 손님이라고 제지하자 놀라기까지 했다.

아무튼 그런 묘한 친밀감 속에서 보고 들은 잡다한 정보들을 좀 적어두어야 하겠다.

  1. 처음엔 내부 풍광에 압도되고 말도 안통해서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이들 청해진의 인적 구성은 놀라울 정도로 다채롭다. 많은 수는 남자였지만 여자도 아주 드물지는 않았고, 피부색은 더 다양했다. 캐묻지는 않았지만 아마 세계 곳곳의 바다에서 조난자를 받아들이면서 이렇게 됐겠지.
  2. 이들이 현대인이 아니라는 것, 또한 2020년대에 갑자기 결성되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해보인다. 영어나 한국어 등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을 걸어오는 선원들도 최소 100년 전에나 썼을 말투를 썼고, 자기들끼리 대화할 땐 한번도 들어본 적 없지만 묘하게 익숙하게 들리는 언어를 썼다. 우연히 탑승하게 된 우리를 속이려고 이런 연극을 준비했다는 것보단 이것이 원래 이들의 일상이라는 게 더 합리적인 설명일 것이다.
  3. 그렇다고 하면 이들이 주장한 "별나라"도 설득력이 없지 않다. 100년 가까이 무제한 잠항하면서 관찰을 피했다는 것보단 차라리 어디 먼 곳에 떠나 있었다는 것이 더 말이 된다. 이전에 잠수함 근무를 했던 존이 강하게 주장한 추론이고, 나도 동의한다.
  4. 앞서도 언급했지만 이들은 많이 먹지 않는다. 우리에게만 독을 먹이려고 수작을 부렸을 가능성은, 그렇다면 자기들은 아예 먹지 않았어야 말이 될 뿐더러 현재 우리 몸 상태에 이상이 없는 것을 볼 때 배격된다. 통상적으로 볼 때 이미 인간의 수명을 아득히 넘은 이들이니만큼 모종의 변칙적 생명연장술이 개입하면서 식사량에도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입맛에 문제가 없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훌륭한 만찬이었다.


#9

이 배에서 맞는 셋째 날이다. 확실히 안대를 쓰니 훨씬 편히 잘 수 있었다. 어제와 같은 청년이 아침을 가져다주면서 우릴 깨웠다. 생각해보니, 저 청년도 청해진이 별세계로 떠나기 전 합류한 선원이라면 나보다 세 갑절은 나이를 더 먹었겠지. 장생종을 만나면 기분이 묘해진다는 동기의 이야기가 이런 뜻이었구나.

그가 말하길, 나와 존은 심해에서부터 헤엄쳐 올라갈 수 없으므로 잠수복을 주거나 해수면에서 내려주어야 하는데, 잠수복은 수량이 적어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부상을 하려니 저 위에서 재단 함대가 열심히 수색을 하고 있어서 적당한 곳에 내려주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런, 우릴 열심히 찾아주는 덕분에 돌아가지 못한다니 이 무슨 역설이란 말인가.

아무튼 감시가 적으면서도 우리가 금방 발견될 수 있는 해역과 시일을 잘 골라서 최대한 빨리 보내줄테니 오늘은 편하게 있으라는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이 묘한 동거는 조금 길어질 모양이다.


#10

오늘은 특기할 만한 일이 아무것도 없이 하루가 지나버렸다. 식사 제공과 존의 진찰 목적 외에는 아무 선원들도 우리 방에 오지 않았다. 이미 전날의 만찬에서 나눌 얘기는 많이 나눴기 때문일지, 떠날 사람인 걸 알기 때문일지…

존은 종일 기드온 성서를 읽고 있다. 잠수함 근무 시절부터 뭔가 시간을 때워야 할 때 습관처럼 읽고 있다고 한다. 그러는 동안 옆에는 예의 그 견과류 차를 쟁여놓고 홀짝이는데, 저 차에 푹 빠진 모양이다. 특히 신비한 불티를 몇 개 낚아채 넣더니 안 식어서 좋다고 극찬이다. 저런 활용법은 언제 알아낸 건지.

아무튼 좋아보이긴 했기에 나도 따라했다. 심란한 마음과 별개로, 따뜻한 차는 정말 맛있었다.


#11

선내가 소란스럽다. 무슨 일이지?


#12

지금은 조난 셋째 날 저녁이다. 나는 청해진의 전투를 목격했다.

지난 며칠 동안의 항해 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흔들림이 제일 먼저 느껴졌고, 실내를 떠돌던 불티들이 더 활발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곧 전투를 알리는 외침과 호각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나는 혼란을 틈타, 서두르는 청해진 선원들의 무리에 슬쩍 끼어 전투갑판으로 올라갔다.

전투갑판은 시꺼먼 구리 대포들을 나르느라 분주했다. 나를 처음 면담했던 고참 선원이 시야에 들어왔는데, 갑판 곳곳을 뛰어다니며 진두지휘에 여념이 없었다. 갑판의 모든 선원들이 그의 지시에 맞춰 일사분란하게 포격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가장 먼저 사격 준비를 마친 것은 전방 대포였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대포 거치대는 쇠사슬을 끌어올리는 도르래에 의해 해치를 통해 상갑판 위로 들어올려졌다. 그리고 함수쪽 방에서 고함이 들리고, 고참 선원이 이를 복창하여 전달하자, 굉음과 함께 대포 두 문이 불을 뿜었다.

뇌리를 뒤흔드는 포격 직후, 귀를 틀어막고 정신을 다잡기도 전에 SCP-983-KO가 급선회를 시작했다. 발사체를 끼운 총통 대포가 조준을 가다듬고 있는 포문 너머로 커다란 검은 형체가 보였다. 곧이어 쩌렁쩌렁한 호령이 다시 울리자 목표 방향으로 정렬된 우현의 현측포 27문이 연이어 격발되었다.

포연이 해수에 녹아 흩어졌을 때, 형체는 이미 거기 없었다. 좌현 쪽에서 고함이 들렸다. 형체는 어느새 — 983-KO의 밑으로 돌아 넘어간 것인지 순간이동한 것인지는 몰라도 — 반대쪽으로 이동해 있었다. 좌현 포반원들이 서둘러 조준을 가다듬었지만, 함수에서 발포 명령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 대신 983-KO는 놈 쪽으로 다시 방향을 돌렸다. 그렇지만 전방 대포는 아직 재장전 중이었다.

나는 비어있는 보조포좌 하나에 올라타 슬쩍 상갑판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 포좌 위로는 작은 선회포가 자리한 영역만큼 공기층이 확장되어 있었다. 그곳의 풍광을 묘사하자면 다섯 페이지는 족히 더 필요할 것이므로 생략하겠다. 나는 거기서 SCP-983-KO의 머리 쪽에서 "발사"된 파형이 형체에 직격하는 광경을 제때 목격할 수 있었다.

놈은 어지러운듯 몸부림쳤다. 그러면서 마치 깜빡이듯이 수 미터 쯤 좌우로 움직였는데, 덩치가 워낙 커서 몸통의 중심부는 제자리에서 크게 빗겨나지 못하고 있었다. 청해진은 아마 녀석을 어지럽게 만들어 저 깜빡임으로 도주하는 것을 막고자 한 모양이었다.

곧 983-KO가 다시 몸을 비틀어 놈에게 좌현을 내보였다. 꼼짝 못하고 있는 거구를 향해, 방금 아껴둔 좌현 포문들의 일제사격이 퍼부어졌다.

포연이 가라앉았을 때 놈은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전투는 종결되었다.3


#13

저녁 식사 후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자 한다. 선실에서 식사를 마치고 앞서 있었던 전투 내용을 일지에 적고 있을 때 누군가 노크를 했다. 그릇을 회수하러 온 선원 친구인 줄 알았는데, 고참 선원과 장보고였다. 그들은 나를 선실 밖으로 데리고 나와… 전투갑판 앞의 함수 지휘실로 데려갔다.

그곳은 CIC4처럼 선내의 다른 구역보다 어두웠다. 그리고 이곳을 떠다니는 불티는 특별한 푸른 빛을 냈다. 푸른 불티들 일부는 명상중인 한 선원을 중심으로 마치 신경망같은 다발의 형태로 집속되고 있었고, 나머지 불티들은 넓은 공간을 흘러다니며 이런저런 모양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작은 고래의 모양과 해저 지형의 모양이었다고 생각한다. 항해함교가 따로 없는 만큼 이 공간에 주변 정보를 표현할 디스플레이 인터페이스를 마련한 것이리라.

은은한 푸른빛을 받으며 장보고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물론 나는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었기에 젊은 선원이 통역을 해 주었다. 대화는 문답이 되었다.

  • 전투 동안 그대가 포좌에 앉은 것을 본 이가 있다. 무엇을 했나?
  •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밖을 보고 싶었다. 나도 해군으로서 이런 특별한 배의 수중전을 지켜볼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 그러면 무엇을 보았는가?
  • 파동을 쏘아 상대를 기절시킨 뒤 이루어진 일제포격. 완벽했다.

장보고가 별다른 반응이 없기에 이번엔 내가 질문했다.

  • 그 괴물과는 왜 싸운 것인가? 공격을 받았나?
  • 아니다.
  • 당신들의 의지로 그것을 잡고자 한 것인가? 그것들이 당신들의 목표인가?
  • 그렇다.
  • 어째서인가?
  • 반갑5을 다시 만나기 위해, 라고만 하겠다.
  • 그것들을 잡으면 그를 만날 수 있나?
  • 알 수 없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그뿐이기에 한다.
  • 만나서 무엇을 할 것인가?

그러나 이 질문엔 마땅히 답변하지 않았다.

장보고가 침묵하자 옆을 지키고 있던 고참 선원이 대화를 이어받았다. 그는 먼저 장보고에게 몇 마디를 쏘아붙였는데, 통역받진 못했지만 젊은 선원의 안절부절 못하는 낌새를 보아 외부인이자 자기네를 쫓던 함대의 일원인 나를 여기에 들인 것이 불만인 듯했다. 그러다 그는 고개를 내쪽으로 홱 돌려 시선을 맞추고는 눈을 부라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가 위협하듯 말하는 내용을 젊은 선원이 통역해준 바로는… 그러는 너희야말로 목적이 무어냐는 이야기였다. 자기들이 잡으려던 해신(海神)을 먼저 잡지를 않나 아예 자기들을 잡으려 들지를 않나, 껄끄럽기 짝이 없다며…

듣자하니 나와 존이 구조받은 것은 청해진의 의지가 아닌 모양이었다. 983-KO가 멋대로 조난자를 찾아 집어삼키는 것이라고. 고참 선원은 원래 우리를 제거해버릴까 생각했는데 장보고가 전령으로서 우리를 살려두었으니 감사는 못할 망정, 전투를 염탐하고 도리어 꼬치꼬치 캐묻기까지 하다니 목숨을 여럿 들고 다니는 줄 아냐고 험악하게 몰아붙였다.

거기서 나는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최선이었을까— 아무튼 나의 선택은,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나의 무례와 의심스러운 행동으로 분노했다면 진지하게 사과하겠노라 말했다. 용납할 수 없다면 여기에 계속 억류하든 죽이든 그쪽이 정하는 처분을 달게 받겠으나, 모두 나의 욕심에서 비롯된 나만의 행동일 뿐이니 존은 고이 되돌려보내달라고 했다.

장보고가 웃음을 터뜨린 것은 뜻밖이었다. 그는 구조한 일행을 모두 돌려보내지 않으면 어떻게 선의 표시가 되겠냐며, 손사래를 치고는 둘 모두를 꼭 돌려보내겠다고 약속했다. 나로서는 이미 이 일지를 존에게 맡겨둔 참이었기에 최악의 경우라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내지른 발언이었는데 호의를 받으니 도리어 내가 부끄러워졌다. 나는 그저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해수면의 상황을 조금 설명받은 뒤, 나는 선실로 돌려보내졌다. 내일 새벽. 이제 이 배를 떠날 때가 확정되었다.


#14

새벽이다. 아마 이것이 983-KO 내부에서 적는 마지막 일지가 될 것 같다. 983-KO는 급격히 상승 중이다. 이렇게 급하게 잠항심도를 바꾸고 있는데도 잠수병이 도질 기미는 없다. 내부의 공기층이 대기압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되지만 역시 놀랍다. 다만 선실이 너무 흔들려서 존은 멀미 기운이 올라오는 모양이다.

수직으로 급기동하는 이유는 당연히 재단의 탐지망 때문이다. 소나를 주로 이용하는 우리 탐지망 근처에서 느긋히 상승하다간 해수면에 접근도 하기 전에 들킬 테니… 한편으로는 청해진이 여태 재단의 함대를 피해왔던 비결이 조금 짐작이 가는 바이다.

그들이 우릴 부르려는 모양이다. 기록은 여기에서 중단할 수 밖에 없겠다.






#15

뗏목이 SCP-983-KO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들이 계산을 잘 했다면, 머지않아 우리 함대가 우릴 발견할 것이다… 저 안에서 지낸 사흘이 마치 꿈처럼 느껴진다.

SCP-983-KO가 돛을 펼쳤다. 곧 잠수할 것이면서도 굳이 돛을 펼쳐보인 것은 우리를 향한 작별의 신호기를 올린 것이리라. 난 멋대로 그리 단정하고 있다.

scp-983-ko-flag.png

멋진 깃발이다.


비고: 황 상사가 옮겨 그린 SCP-983-KO 돛의 문양은 전서체 한문 문장으로 확인되었다. 정체자 한문으로 옮기면 "四海水路軍 行軍大總管 破神大元帥 淸海鎭大使 張保皐坐船"으로, 해석하면 "사해수로군 행군대총관, 파신대원수, 청해진 대사인 장보고가 탑승한 배"라는 뜻이다. 당나라 및 신라의 관직명으로 수식되고 있는 "장보고"는 현재 GOI-0531의 지도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나, 그가 실제 역사상의 신라 호족 장보고 본인인지는 불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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