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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배전쟁!
등장인물
사람 1
사람 2
무대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벽과 조명은 모두 흰 것을 사용한다.
막이 오르고, 두 사람이 걸어 무대 위로 등장한다. 사람 1은 사람 2의 길을 계속 방해한다. 1막이 내릴 때 까지 두 사람은 무대 위를 계속 빙빙 돈다.
1막
사람 1: 아 진짜라니까, 오늘 정말 끝내주는 사람 봤다고.
사람 2: 좆 까라 그래, 새꺄. 그렇게 바람 잡아놓고선 맨날 들려주는건 포도젤리 이야기 뿐이잖아.
사람 1: 아냐, 이번엔 진짜 소재라니까. 진짜 소재라고.
사람 2: 네, 네. 그러시겠어요.
사람 1: 아 이 새끼가 안 밎네. 기록보관소에 맨날 죽치고 앉아있으니까 그런 의심만 하는거지! 난 기록을 만드는 속기사라고. 속-기-사!
사람 2: 응, 이제 없어질 속기사.
사람 1: (사람 2의 경로를 막아서며)아! 진짜!
사람 2: 비켜봐, 임마.
사람 1: (사람 2를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아 쫌만 들어달래도. 응?
사람 2: 몰라, 몰라. 귀찮게 하지 말라고.
사람 1: 주시단체!
사람 2: 뭐?
사람 1: 주시단체 5개 만난 여자!
사람 2: 새끼, 또 사기치네.
사람 1: 아 너 사람 빡치게 할래? 내가 지금까지 들은게 그거거든? 근데 이거 진짜 소재 아니냐? 응?
사람 2: 말이 되는 소릴 해라, 어휴. (사람 1을 옆으로 치운다)
사람 1: (뒤쫓으며) 들어봐봐. 이름도 웃기다니까? 여자에 150밖에 안되는 키 작은 사람인데, 숏컷 그러니까 좀 보이쉬하게 생겼달까? 근데 이름이 니키타야! 니키타 후르쇼프할 때 그 니키타!
사람 2: 시끄럽다고.
사람 1: 풀 네임이…. 그, 니키타 케틀이거든, 특무부대 소속 선행조사요원!
사람 2: 왜, 맨날 연구원 이야기만 들려주니까 이제 소재를 바꿨냐?
사람 1: 아 쫌 믿으라니까!
사람 2: (갑자기 멈춘다. 사람 1이 부딛힐 뻔 했다) 알았어! 들어줄게. 귀찮게 하기는. 얼른 말해봐.
SCP 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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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관리자 맞은편에는 해당 기지 특무부대의 선행조사 지휘관이 앉아있다. 기지관리자는 온 몸에 힘을 준 채 뻣뻣하게 앉아있었고, 지휘관은 한쪽 다리를 꼬고 편하게 앉아있다.
"도대체 선행조사관들은 뭘 하는겁니까?"
기지관리자가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SCP가 있는지 없는지 조사를 하죠."
지휘관이 싱글거렸다.
"지금 내가 여기 있으면서 얼마나 많은 SCP를 회수했는지 모고해보시오."
"흠, 기지관리자님이 여기 오신 이후로 얼마나 많은 예산을 우리게 주셨는지 듣고 싶은데요."
기지관리자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지휘관은 여전히 능글맞은 웃음을 띄우고 있었다.
"됐고, 최근에 정보 하나를 입수했소. 지평선 계획의 움직임에 대한 것이오. SCP를 그들이 추적하고 있다는 소식인데…… 이런 정보는 당신들이 나한테 말해야하는거 아닌가?"
"아, 그거요. 저번에 말했는데 들은 척도 안 하더군요."
지휘관이 말했다.
기지관리자는 신음소리를 냈다. 그 남자는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이봐, 클랜……."
"암호명으로 부르는게 낫지 않나요? 세르펜토 말입니다."
"세르펜토, 너는 나를 열받게 하는데 꽤 재주가 있단 말이야?"
지휘관 세르펜토는 어깨를 으쓱했다.
"말 끝마다 그렇게 토달지 말고 말하시오. 그 SCP를 지평선 계획보다 먼저 회수할 수 있는지, 없는지."
기지관리자는 세르펜토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세르펜토는 활짝 웃었다.
"웬일이래요? 자리 보전하는게 좀 팍팍해졌나봐요?"
기지관리자는 책상에 있는 재떨이를 집어들었다.
지평선 계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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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주교 앞에 젊은 남자가 섰다. 나름 예를 갖추려고 했지만, 몸짓은 어딘가가 어설펐다. 주교는 한숨을 내쉬었다. 남자는 덥수룩한 머리를 긁적였다.
"'성배' 의 행방을 알아냈다 들었소."
주교가 품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드디어!"
남자는 천진난만하게 소리쳤다.
"이제 성배를 가져오는 일만 남았군, 최대한 빨리 진행했으면 좋겠소만."
"저도 그렇습니다."
주교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어떻게 하면 빨리 해결할 수 있겠소? 본부가 알아차리기 이전에 처리해야 하오."
"음……. 문제는 딱히 없는데요, 그, 거, 사람이 좀 더 있음 좋겠습니다. 외로워요."
주교는 마른세수를 했다. 남자는 그 행동을 어떤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환하게 웃었다. 늙은 주교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팀을 꾸려주겠소만, 새나가지 않게 조심하시오. 그 사람들에게까지 피해가 가지 않도록."
"그 사람들은 피해를 받지 않을겁니다. 저와 주교님께 속은 것이니까요."
주교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는 환하게 미소지어보였다.
"회수에 관한 질문인데요."
남자가 말을 이었다.
"주의사항이 있습니까?"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다음과 같소."
주교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되도록이면 피가 잔 안에 담기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피치못할 사정이면, 그러니까 유물이 다른 자들의 손에 넘어갈 것 같을 때만 사용하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남자는 다시 어설프게 예를 갖추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남자가 나간 뒤, 주교는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세계 오컬트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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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을 입은 여자와 정장을 입은 남자가 마주앉았다. 여자는 환하게 웃음을 띄우고 있었지만, 남자는 시종 진지한 표정이었다. 여자가 입을 열었다.
"축하해요, 달 세뇨."
"아닙니다. 아직 이 일이 마무리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축하 인사라뇨."
달 세뇨가 답했다.
여자는 재미없다는 듯 입을 비죽였다.
"아무튼 이번 변칙 개체를 완벽하게 파괴한다면, 당신은 이제 현장에서 뛰지 않아도 될거에요."
"흠."
달 세뇨가 짧게 소리를 냈다. 여자는 책상 서랍에서 리볼버 권총을 꺼내 달 세뇨에게 건냈다. 달 세뇨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당연히 더 좋은 것을 지원해줄 것입니다. 이건 일종의 상징적인 것이죠."
여자가 덧붙였다.
"알고 있습니다."
"하긴, 저보다 더 오래 여기서 근무하셨죠."
여자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달 세뇨는 능숙하게 권총을 만졌다.
"그리고 이 일이 잘 마무리 된다손 쳐도, 전 계속 현장에 있을겁니다."
여자는 달 세뇨를 쳐다보았다. 그의 표정은 확신에 가득 차있었다.
혼돈의 반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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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장군이 입을 열었다.
"이번 일이 잘 되기를 바라며, 그것을 위해 당신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을겁니다."
장군 앞에는 사람이 한 명 앉아있었다. 인디오의 전통 의상을 한 화려한 사람이었다.
"일단 그 의사의 표시로 준비한 것이 있습니다."
장군은 자신의 수하에게 손짓을 해보였다. 그들은 재빨리 뛰어 금고를 가져왔다. 꽤나 수선스러웠으나, 그 사람은 움직이지도 않고 장군만 뚫어져라 쳐다볼 뿐이었다. 그 사람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장군은 식은 땀을 훔쳤다. 그의 수하가 금고를 열었다. 화려하고 커다란 금고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물품이 그 안에 들어있었다. 계산기였다. 장군의 부하는 그것을 꺼내 공손하게 그 사람에게 주었다.
"계산기와 비슷해보이지만 보십시오."
장군이 책상을 넘어 그 사람이 쥐고있는 계산기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여기, 숫자가 있어야 할 곳에 있는 영어 자판으로 당신이 가고싶은 곳을 치면, 여기……. 이동이라는 버튼에 불이 들어올겁니다. 그 때 그걸 누르면……."
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장군이 만지지 못하게 계산기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장군은 헛기침을 했다.
"저와 제 수하들은 당신과 혼돈의 반란에 큰 기대를 걸고있습니다. 이번 일이 잘 해결되면, 이제 당신들이 우리를 도울 차례입니다."
그 사람은 장군의 말을 귓등으로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버튼을 눌렀다. 이동. 그 사람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장군은 멍하게 그 자리를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아닌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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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중절모에 회색 코트를 입은 사람은 골목길에 서서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 앞으로 축구공이 굴러왔고, 그의 회색 구두를 건드렸다. 그제야 그 사람은 고개를 들어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아저씨, 공 좀 차주세요!"
꼬마가 소리쳤다.
그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축구공을 들고 꼬마에게 갔다.
"감사합니다."
꼬마가 예의바르게 인사했다. 그는 무릎을 굽혀 꼬마와 눈을 맞추었다.
"혹시 질문을 해도 괜찮겠니?"
꼬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컵 하나를 보지 못했니?"
"컵이요?"
"그래. 컵이란다."
"컵이라면 우리 집 찬장에도 있는걸요."
"그런 컵이 아니라, 나무로 된 것인데, 아주아주 낡고 볼품없단다. 하지만 보는 그 순간 그것만의 특별한 무언가에 사로잡히게 되지."
"어려워요."
꼬마가 툴툴거렸다. 회색 신사의 얼굴에는 완연히 미소가 퍼졌다.
"그래, 네겐 어렵겠구나. 아무튼 그런 컵을 보면 내게 전해줄 수 있니?"
그는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꼬마는 곧 기분이 좋아졌다.
"알겠어요! 그럼 안녕!"
꼬마는 환하게 웃으며 골목길을 뛰어나갔다. 그 컵을 찾으면 어떻게 그 신사에게 전해줘야할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린아이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털었다. 꼬마가 사라진 쪽과 반대방향으로 몇 걸음 걷고, 오른쪽으로 꺾었다. 그리고 그의 흔적은 사라졌다.
뱀의 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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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
TO. C.C.
UNOUN과의 접촉 있음. 성공적 회수 부탁. 내용 타당. 협조할 것.
FROM. L.S.
2막
두 사람은 의자에 앉아있다. 사람 2는 공책과 펜을 들고있고, 사람 1은 미덥잖은 표정으로 그걸 보고있다.
사람 1: 그래서, 도대체 얼마나 거창한 이야기기에 공책까지 들고있는거야?
사람 2: 아 진짜, 너 그거 성질머리 어디다 안 버릴래? 이게 얼마나 복잡한 사건인지 알아? 진짜 별별 사람들 다 봤어.
사람 1: 알았어, 알았어. 아 시끄럽게 하지 말고 어서 말이나 해 봐.
사람 2: 먼저 모든 사건의 시작부터 말해줄게. SCP 재단, 회수/추적부대 소속 3등급 선행조사요원 니키타 케틀. 코드네임 니케.
등장인물
사람 1
사람 2
니키타 케틀
사람 2: 니키타는 그 때 화분을 옮기고 화단을 가꾸고 있었다? 응? 듣고있어? 그리고 우연하게 니키타 케틀의 파트너이자 선임이자 선배인 콜린 클랜, 그러니까 코드네임……
세르펜토는 관사 안으로 들어갔다.
등장인물
세르펜토
사람 2: 우연하게 둘이 길이 엇갈린거야. 그래서 서로를 못 봤지. 니키타는 그냥 관사에 딸린 마당으로 화분 들고 왔다갔다 하는지라 문을 활짝 열어놓았고. 그 건물이 어떻게 생겼냐면. 봐봐.
아파트처럼 방들이 빽빽히 들어있는 그 건물은, 너저분했다. 여기저기가 떨어져나간 흰색 벽을 지나며 세르펜토 지휘관은 방문의 개수를 셌다. 열 두개째 방문 앞에서 멈췄다. 세르펜토는 심호흡을 하고 문을 두드렸다. 세 번.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다시 세 번 두드렸다. 여전히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없었다. 그는 그냥 문고리를 돌렸다. 곧 잘 열렸다. 세르펜토는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마치 자신이 할 행동은 그 어깨를 으쓱한 것으로 속죄가 된다는 것 마냥 말이다. 그는 당당하게 문을 열었다.
"니키타!"
세르펜토가 소리쳤다.
"정말이지, 계집애가 좀 꾸미고 살 것이지."
그는 문을 닫았다. 좁은 방은 너저분했다. 정리가 잘 안 된 것이 아니라, 들어가있는 것이 많아서였다. 그리고 그 방을 채우고 있는 것의 대부분은 화분이었다. 초록색 잎사귀를 즐기는 화분은 그것 대로 모여있었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화분은 또 그것 대로 모여있었다. 이미 천장은 아이비가 점령한지 오래였다. 세르펜토는 달려드는 날파리를 쫓았다.
"니키타 케틀! 야, 양은주전자!"
방 안은 조용했다. 그는 거실 소파에 앉았다. 거실, 이라고 부르기는 했지만 사실 거실 겸 부엌으로 쓰는 곳이다. 그 외의 방은 아주 작은 화장실과 아주 작은 침실 뿐이다. 그도 예전에는 이 관사에 살아서 구조를 잘 알고 있었다. 세르펜토는 다리를 꼬고 소파에 내팽겨쳐진 보고서를 집어들었다. 그 보고서에는 커다랗게 가위표가 그려져있었고, 그 위에 굵은 글씨로 이렇게 휘갈겨져있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염병할 놈의 연구원 새끼!!!!!!!!!
세르펜토는 한숨을 내쉬었다. 가위표와 휘갈긴 글씨 사이로 보이는 글씨를 읽었다. 변칙 개체를 호들갑 떨면서 적어놓은 초짜 연구원의 보고서였다. 그는 보고서를 옆으로 치워놓았다. 하긴, 기지관리자가 바뀐 이후로 우리 기지의 기동특무부대에 대한 대우가 형편없어졌지. 그리고 기동특무부대에 소속되어있는 선행조사관들에 대한 대우도 마찬가지로 형편없어졌다. 세르펜토가 한숨을 또 내쉬었다. 그리고 그 한숨과 동시에 문이 벌컥 열렸다.
"제기랄, 또 이 망할 아저씨가 허락도 없이 들어왔구만!"
앙칼진 목소리가 들렸다.
"니케 요원!"
세르펜토는 반갑게 일어섰다. 하지만 곧 날아오는 구두를 피해야했다.
"잠시 밖에 나가있는 사이에 기어들어왔어?"
니키타는 남은 구두를 벗어들었다.
"잠깐만, 하이힐 던지는건 반칙이잖아!"
세르펜토가 호들갑을 떨었다.
"오늘은 굽 낮으니까 순순히 맞아주셔."
니키타가 다른 한 쪽 구두도 세르펜토에게 던졌다. 그는 그것도 가뿐히 피했다.
"네 눈에는 이게 낮은 굽이야? 6cm는 족히 넘어보이는데?"
"평소엔 더 높은거 신고 다닌다고."
니키타는 궁시렁거리며 맨발로 거실에 들어왔다. 양 팔에는 큼지막한 화분이 들려있었다. 세르펜토는 돕지 않았다. 도와봤자 한 대 맞을거라는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저씨. 뭣 때문에 여인네가 사는 방에 들어오신거요?"
니키타가 올바른 자리에 화분을 놓으며 물었다.
"아마 너가 날 아저씨라 부르는건 이번이 마지막일걸?"
세르펜토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양복 안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하게 접은 종이를 꺼냈다. 니키타는 세르펜토를 의심스럽게 쳐다보았다.
"임무다."
세르펜토가 종이를 펼쳐 보여줬다. 하지만 니키타는 콧웃음만 쳤을 뿐이다.
"빌어먹을, 분명히 또 경비 일이나 시키겠지. 이젠 나 떨어질 곳도 없으니 장난 그만하쇼."
니키타가 투덜거렸다.
"넌 너무 염세적이야. 이걸 보라고. 니케 요원에게 무슨 임무가 떨어졌냐면, 너가 그렇게 바라지 마지않던……. 선행조사!"
"허 참. 그럼 그거 기밀 아니야?"
"그렇지."
"근데 그 기밀 사항이 댁 안주머니에서 튀어나와?"
"그럼 어디서 나와야하는데? 속옷?"
"저질."
니키타는 차갑게 말을 내뱉고, 그것보다 더 차갑게 구겨진 종이를 뺏었다. 세르펜토는 아무렴 어떻냐는 듯 호탕하게 웃어젖힐 뿐이었다. 니키타는 서류를 찬찬히 읽었다. 세르펜토는 그동안 냉장고로 가서 주스를 꺼냈다.
"그거 집어넣어."
니키타가 서류를 반으로 접었다.
"맞어, 서류 잘 넣어놔. 그거 기밀이니까."
세르펜토는 주스를 컵에 따랐다.
"아니, 서류 말고 주스."
니키타는 널브러져있는 구두를 집어들었다.
"당장 손에 있는 주스 병 내려놓고, 컵 이리로 넘겨."
"어이구, 누가 들으면 인질이라도 잡은 줄 알겠네."
세르펜토는 범인처럼 양 팔을 들어보였다. 니키타는 혀를 한번 차고 구두를 신발장 안에 집어넣었다. 세르펜토는 다시 웃으며 주스를 하나 더 따랐다.
"자, 이건 너 마셔."
세르펜토가 니키타에게 건넸다.
"참 나. 내 돈 내고 샀는데 생색내긴."
"그나저나 니케 요원. 기지관리자 찾아가야 할텐데?"
"아, 그 빌어먹을 임무 때문에 말이지."
니키타는 컵에 든 음료를 한번에 들이켰다.
"갈게. 갈테니까……."
"마음이 안 놓이는데. 이거 참."
세르펜토가 옆에서 빈정거렸다.
"사실 그것 때문에 내가 너를 찾아온건데."
"알아서 간다니까."
"오늘 같이 가자고."
니키타가 세르펜토를 쳐다봤다. 양 눈썹을 찌푸렸다. 저 아저씨가 무슨 말을 하는지 곰곰히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가서 옷 좀 갈아입어. 진짜 펑퍼짐한 와이셔츠는 드레스가 아니라고. 바지는 입었냐?"
세르펜토는 곧장 니키타에게 명치를 한 대 맞았다. 그는 배를 부여잡고 켁켁거렸다.
"남 옷차림 간섭하지 말지, 아내 둘에 아들 둘 둔 양반아?"
세르펜토는 니키타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니키타는 그가 조금 불쌍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몇 분이 지나고, 그는 간신히 진정할 수 있었다.
"하극상이야! 보안 등급은 같아도 직책은 내가 더 위인데! 이거 너무하잖아?"
세르펜토가 징징거렸다.
"참 나, 살만하지?"
니키타가 비웃었다.
"아무튼, 아내 둘에 아들 둘이라니. 그건 엄연한 인신공격이야."
"닥쳐. 내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니고."
"하하……. 상처는 꺼내지 말자고. 아무튼, 오늘 갈거니까 가서 옷이나 갈아입고와."
세르펜토는 옷차림을 매만졌다.
"누구 마음대로?"
"엄, 사실 오늘 가겠다고 내가 말해놨거든."
그리고 세르펜토는 니키타에게 한 대 더 맞았다. 그가 낑낑거리는 동안 니키타는 매정히 돌아서서 침실로 들어갔다. 세르펜토는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자세를 바로했다.
"허이구, 아무리 그래도 내가 쟤 상산데 이건 너무하잖아."
하지만 싫어보이지는 않았다.
"너무 오래 같이 일했어, 하이고. 아내한테 치이고 아들한테 치이고 상관한테 치이고 아랫사람한테 치이고, 아버지는 힘들단다, 니키타 케틀!"
방 안에서 니키타가 앙칼지게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세르펜토는 큰 소리로 웃었다. 잠시 뒤 니키타는 다시 방에서 나왔다. 원색의 티셔츠에 짧은 반바지, 그리고 무릎까지 올라오는 니삭스.
"양은주전자 씨, 가서 옷 갈아입으세요."
세르펜토는 니키타에게 말했다.
"너 엿먹이려고 그런다, 왜."
니키타가 삐딱하게 말했다.
"세상에, 난 내 아들이 사춘기가 된다해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단말이라고. 여기 내 앞에 있는 이 늙은 파트너가 아직도 사춘기거든!"
세르펜토는 니키타의 어깨를 잡아 간단히 뒤돌려세웠다.
사람 1: (자리에서 일어나며)아, 그만 들을래.
사람 2: 야! 아직 안 끝났어!
사람 1: 재미없다고.
사람 2: 이 장면이 시선을 끌어주는거야, 사람들 시선 말이지. 너 5분 법칙 몰라?
사람 1: 5분 법칙에서 탈락! 나는 이만.
사람 2: 넌 작가도 아냐, 임마! SCP 재단 들어왔다고 우리의 꿈을 잃으면 안된다고, 기성세대 같으니라고.
사람 1: (천천히 사람 2를 돌아본다) 이 새끼, 방금 뭐라고?
사람 2: 이런 기-성-세-대- 같은 놈아!
사람 1: 에라 이 새끼가? (사람 2의 멱살을 잡는다)
사람 2: 그러니까 이거 놓고! (사람 1의 손을 거칠게 잡아 뗀다) 좀 들어봐. 세르펜토는 187이고, 니키타는 고작 150이라고. 체격부터 훌륭하게 차이가 나잖아. 너가 안 봐서 그렇지, 5분 법칙에서 충분히 통과! 라고.
니키타는 반항했지만 체격에서부터 차이가 났다. 니키타는 기껏해야 세르펜토의 가슴께밖에 안 왔다.
"들어가서 양복으로 갈아입는다, 실시!"
세르펜토는 니키타의 방문을 닫았다. 니키타는 방 안에서 온갖 욕을 퍼부었지만, 세르펜토는 특유의 호탕한 웃음으로 무시했다.
니키타는 깔끔한 옷을 입고 세르펜토와 함께 기지로 출발했다.
"오랫만이네."
입구에서 니키타는 인상을 찌푸렸다.
"보안카드 안 잊어버렸지?"
"미안, 화장실 변기 속에 처박아놓고 와버렸네."
니키타가 보안카드를 꺼냈다.
"어이쿠, 너는 변기를 입고 다니나보네."
니키타는 세르펜토를 째려보았다. 들어가기 전에 카드를 찍었다. 3등급 요원, 선행조사관. 세르펜토는 거기에 하나가 더 붙었다. 선행조사 지휘관. 세르펜토는 니키타를 슬쩍 쳐다봤지만, 니키타는 아랑곳하지도 않았다.
"지휘관한테 말 놓는 애는 쟤밖에 없다니까."
세르펜토가 한숨을 내쉬었다.
"야, 니케. 이쪽."
"알거든요, 아저씨?"
니키타는 시종일관 불편한 표정이었다.
"너무 오랫만에 와서 잊어먹었을 줄 알았지."
"빌어먹을 기지관리자 새끼."
니키타가 질근질근 씹었다. 세르펜토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자기 자리 보존하려고 전전긍긍할 뿐이지 뭐, 참 나. 그러다가 뭔 바람이 불어서 갑자기 선행조사관은 찾는대?"
"자기 자리 보존하는게 좀 팍팍해졌나봐."
"흥, 현상유지만 하니까 그렇지. 머리도 안 굴러가는 놈이야. 콱 좌천이나 당해버려라."
세르펜토는 니키타의 말에 낄낄거리며 웃었다. 니키타는 세르펜토의 옆구리를 찔렀다.
"너는 너무 지휘관을 막 대해, 니케."
"그럼 내 파트너로 지휘관을 붙여놓은 전 기지관리자님을 원망하시던가."
"하, 차라리 파트너였을 때가 나았지. 그 때는 아직 철없고 물정도 모르던 귀여운 여자애가 군기 바짝 들어서 얼마나……. 아이고, 그 때가 그립구나!"
니키타는 세르펜토를 노려보았다. 세르펜토는 역시 웃고 넘겼다. 그들은 곧 기지 행정부서에 다다랐다. 수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니키타는 입을 닫고 세르펜토의 뒤를 따랐다. 세르펜토는 행정부서 가장 안쪽의 문을 두드렸다.
"네."
문 안에서 소리가 들렸다.
"선행조사 지휘관 콜린 클랜과 선행조사관 니키타 케틀입니다."
니키타가 말했다.
세르펜토는 니키타를 힐끔 쳐다보았다.
"들어오시오."
안에서 말했다.
사람 2: 내가 저번에 너한테 무슨 기록 요청했지?
사람 1: 그건 또 왜.
사람 2: 그 기록이 이 기록이야. 이 부분에서는 대충 이렇게 진행하려고.
2.5막
등장인물
사람 1
사람 2
니키타 케틀
세르펜토
기지관리자
사람 2: 전형적인 높으신 분이야. 음, 그 기지관리자는 말이지. 아무튼 무대는 이렇게 배치할거야. 이쪽(자리에서 일어나 상수로 간다)에 기지관리자와 무거운 책상. 책상은 최대한 권위있게 꾸미고, 또 수많은 서류를 쌓아놓는다. 그리고 이쪽(하수로 간다)은 입구야. 세르펜토와 니키타는 이쪽으로 등장해. 이런… 식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걸어간다) 자. 이제 시작해보자. 세르펜토와 니키타 등장.
무대는 사람 2가 말한대로 배치한다. 상수에서 세르펜토가 문을 활짝 열며 등장한다. 그 뒤를 니키타가 따라 들어온다. 책상 앞에 앉아있던 기지관리자는 미동도 않고 눈으로만 둘을 본다. 세르펜토는 오른손을 들며 편하게 인사하지만, 니키타는 절도있게 경례를 올려붙인다. 기지관리자는 어색하게 시선을 돌리고…
사람 2: 포인트는 세르펜토와 니키타의 차이라고 볼 수 있어. 세르펜토는 좀 더 격식 없이, 니키타는 좀 더 딱딱하게.
사람 1: 그러니까, 니키타가 기지관리자 후빨한단 말 아냐?
사람 2: 아냐, 새꺄. 넌 어떻게 딱딱하다가 후빨이랑 동급이라 생각하는거냐, 어?
세르펜토는 니키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면, 니키타는 눈썹 옆에 붙인 손을 내린다.
기지관리자 : (서류를 들춰보며)"이름이 니키타……."
니키타 : "니키타 케틀입니다."
세르펜토 : (끼어들며)"암호명은 니케이고요."
기지관리자 : (세르펜토의 말을 무시하며)"그래, 꽤 유능한 요원이라 들었네."
세르펜토 : "실제로도 그럽니다만."
기지관리자 : (그만하라는 듯 세르펜토를 쳐다보며)"무슨 임무인지는 보았나?"
니키타 : (기계처럼 차갑게, 하지만 또박또박)"스페인으로 가라는 것 까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어디에서 어떤 변칙 현상이 일어났는지는 명시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기지관리자 : (또 다른 서류를 집어들며)"에, 지금 지평선 계획의 움직임이 수상하네. 그들의 뒤를 쫓으면 될걸세."
세르펜토 : (비웃는다)"지금 그걸 임무라고 주는겁니까?"
기지관리자 : "그게 가장 확실해."
세르펜토 : "이봐요, 기지관리자 양반. 당신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겁니까? 남이 하는걸 따라하라고요? 그냥 그거 지평선 계획한테 SCP 넘기라는거 아닙니까!"
기지관리자 : "이봐, 클랜."
세르펜토 : "세르펜토!"
기지관리자 : "세르펜토 요원."
세르펜토 : "지휘관!"
기지관리자 : (세르펜토를 노려본다)
세르펜토 : "세르펜토 지휘관입니다. 당신이 기지관리자이듯, 나는 선행조사 지휘관이란 말입니다."
사람 1: 세르펜토인가 하는 이 사람, 뭐 하는 작자야?
사람 2: 차차 나와. 근데 꼰대는 아닌 것 같아.
기지관리자 : (말 끝을 비틀며)"…….그래, 세르펜토 지휘관 어르신? 하고싶은 말이 뭣이라고?"
세르펜토 : "지평선 계획에게 SCP를 넘기라, 이 말이란 뜻입니다. 당신의 그 어처구니 없는 명령이 말이죠."
기지관리자 : "이 명령이 왜 그런 뜻으로 해석이 되는거지?"
세르펜토 : "지평선 계획이 스스로 작전을 짜서 행동하는 것의 뒤를 밟다가 결과물을 챙기라, 이 말 아니요."
기지관리자 : "어차피 주시단체 중 하나 아닌가."
세르펜토 : (답답한 듯 소리치며)"지평선 계획과 재단은 불가침 조약을 맺었단 말입니다!"
기지관리자 : (손을 내저으며 귀찮은 표정으로)"들키지 않게 잘 하시오. 그런 일 하는게 당신네들 아뇨."
세르펜토가 이를 갈며 뭐라 쏘아붙이려하자, 니키타는 황급히 말을 막으며 끼어든다.
니키타 : (하지만 침착한 목소리로)"지원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기지관리자 : "지원? 뭐가 필요한가? 에스파냐 지부에서 받아 쓰게."
세르펜토 : "그게 마음대로 되는건줄 알아요? 뭐 서류라도 있어야 할 것 아니요!"(기지관리자의 책상을 내리친다)
기지관리자 : (벌떡 일어선다)"어차피 같은 재단의 지부인데, 것 하나 못한단 말인가?"
세르펜토 : "당연하지! 당장에 맥도날드만 봐도 당신 말이 엄청 어처구니 없는 말이란걸 알텐데 말이요!"
기지관리자 : "알았네, 그래. 서류는 알아서 준비해주겠네."(자리에 앉았다. 매사가 귀찮다는 표정이다.)
니키타 : "신분증은 어떻게 할겁니까?"
사람 2: 이제 약간 모자란 기지관리자가 말하는거지.
기지관리자 : "젠장."
사람 1: 아나, 극 진행 중에 끼어들지 말라고.
사람 2: 왜, 내가 설계하는건데.
"그래도 어찌저찌 받아낼 건 다 받아냈으니 다행이야, 니케."
세르펜토가 니케의 등을 토닥였다.
"샷건 받아냈으니 다 된거지 뭐."
니케는 별것 아니라는 듯 중얼거렸다.
"하이고, 진짜 물정 모르는 양반이 내 머리 위에 앉으시겠다고 그렇게 애를 써대다가 오늘 결국 속터지는 소리나 해쌓고……."
"고맙다."
니키타가 뜬금없이 말했다.
세르펜토는 이건 또 뭔 소린가 싶어서 니키타를 바라보았다. 니키타는 세르펜토를 힐끗 보았다.
"고맙다고."
"허."
세르펜토가 니키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람 1: 있는 일이야? 진짜 있는 일이라고?
사람 2: 내가 극본 짜온 부분은, 너한테 요청했던 그 기록을 그대로 복붙한거나 다름없다고.
사람 1: 표절이네.
사람 2: 아니 이 새끼가?
사람 1: 그래서, 단체가 몇 개라고?
사람 2: 재단 포함 여섯 개.
사람 1: 미쳤네.
사람 2: 전개도 미쳤어.
SCP 재단(The SCP Foundation)/지평선 계획(The Horizon Initiative)/세계 오컬트 연합(The Global Occult Coalition) 공동 사건 조사 보고서
(생략)
[지평선 계획 The Horizon Initiative 요원 공식 면담 보고서]
면담 대상자 : 힐다 래드(지타 수녀), 페트로 프란시스코(베드로 수사신부)
참관인 명단 : █ ██(SCP 재단), ██ ████ 지휘관(지평선 계획), ████ ███ 요원(세계 오컬트 연합)
기록관 : █████(SCP 재단), ██ █(지평선 계획), ██ ████(세계 오컬트 연합)[면담 시작]
힐다 래드(이하 H) : 제가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말하기만 하면 되는거죠? 베드로 신부님이랑 같이 말이에요.
(참관인이 고개를 끄덕임)
H : 알겠습니다. 저는 진실만을 말하고 있습니다.
페트로 프란시스코(이하 B) : 저 역시 진실만을 말하겠습니다.
H : 그럼 저부터 말할게요, 신부님. 음… 그 때 저는 참사회의장에서 내려온 명령을 받고 스페인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스페인 공항에서, SCP 재단의 요원이자 저의 오랜 소꿉친구인 니키타 케틀을 만났어요.
3막
등장인물
사람 1
사람 2
힐다 래드
B :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우연이었습니다.
H : 맞아요. 진짜 말도 안 되는 우연이었어요.
B : 만화에도 이런 우연은 없단 말입니다.
H : 만화에는 있지 않아요, 베드로 신부님?
B : 유치해서 요즘은 만화에도 안 씁니다, 그런 전개.
H : 아무튼 엄청난 우연이었어요.
(참관인이 잠시 B와 H의 말을 중단시키고, 사건에 대해서만 말할 것을 요청함)
H : 아… 알겠어요. 죄송합니다, 형제님. 그래서 저는 스페인의 한 공항에서 내렸어요. 그리고 제 짐을 찾으러 이동했죠.
사람 1 : (보고있던 보고서를 갑자기 덮으며 벌떡 일어난다) 그러니까, 십 몇년 간 연락이 끊겼던 친구를 공항에서 만났다고?
사람 2 : (덩달아 일어난다) 그래, 이제 그 우연이란 말은 그만 좀 해.
사람 1 : 그래, 좋아. 그 수녀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자고.
사람 2 : 수녀가 공항에 도착했을 때, 니케 요원도 공항에 도착했어.
사람 2가 갑자기 캐리어를 끌고온다. 그 안에서 수많은 문서를 꺼내 사람 1에게 준다. 사람 1이 그것을 읽으면, 사람 2는 이야기를 잇는다.
등장인물
사람 1
사람 2
힐다 래드
니키타 케틀
니키타는 비행기에서 내려 기지개를 켰다. 미국에 있는 사람을 스페인까지 보내는 이유는, 아마 순수하게 자기 공적을 위해서겠지. 스패인 지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을 할까. 니키타는 자신의 가방을 찾았다. 얼마나 걸릴 지 몰라서 옷은 챙기지 않았다. 현지에서 사 입어야지. 짐은 꽤나 가벼웠다. 손잡이에 붙은 이름표를 뗄까 말까 고민했다. 니키타는 만약을 대비하여 이름표를 붙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한 걸음 떼자마자, 니키타는 앞으로 넘어졌다. 뒤에서 사람이 부딛힌 것이었다. 니키타는 가늘게 신음소리를 냈다. 부딛힌 사람과 니키타의 짐은 바닥에 떨어졌다.
"죄송해요!"
부딛힌 사람이 소리쳤다.
H : 그게 저였어요.
"아, 괜찮습니다."
니키타는 애써 웃어보였다. 니키타와 부딪힌 사람은 수녀였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수녀는 어쩔줄 몰라하면서 바닥에 떨어진 가방을 주었다.
"그건 제 가방입니다."
니키타가 수녀의 손에서 가방을 빼냈다.
"아……. 아, 죄송……."
수녀는 니키타의 가방을 자기 쪽으로 가져갔다. 니키타는 살짝 인상을 썼다. 수녀가 한동안 이름표를 내려다보았다.
"저, 수녀님.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니케?"
수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니키타를 보았다.
"니케야?"
"죄송하지만 그걸 어떻게 아셨……."
"나야, 힐다!"
니키타는 눈을 빠르게 깜박였다. 힐다, 힐다……. 잠깐?
"힐다 래드, 기억 안 나?"
H : 정말 거기서 만날 줄은 몰랐어요.
B : 근데 정말 이 이야기를 계속 들어야하는겁니까? 저는 제 동생의 행방을 알아야겠단 말입니다.
H : 베드로 신부님, 안드레스 형제님의 행방도 중요하지만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은 끝내야하지 않겠어요?
B : 그럼 얼른얼른 끝내잔 말입니다, 수녀님.
"너가 왜 여기있어!"
니키타가 소리질렀다.
"잠깐, 잠깐 너 그 너, 그 그, 그……."
니키타는 말을 잇지 못했고, 수녀는 니키타에게 달려들었다. 힐다는 니키타를 숨이 막히게 껴안았다.
"웬일이니, 웬일이니! 니케, 보고싶었다고!"
"자…… 잠깐, 힐다 잠깐 이 손 좀 놓아줄래."
"너 경찰된다더니 된거야? 에스파냐엔 무슨 일이야?"
힐다는 안았던 손을 풀었지만, 니키타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어댔다.
"우리 지금 사람들의 보행을 방해하는 느낌이 드는데, 좀 일어나면 안될까."
니키타는 저쪽에 서있는 경비원의 눈치를 보았다. 둘은 각자의 가방을 챙겼다.
"안 다쳤어?"
힐다가 물었다.
"어, 다치지는 않았는데."
소꿉친구였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이사를 간 뒤로 소식이 묘연해진 친구였다. 니키타는 물어볼 말이 많았지만, 그 중 가장 물어보고 싶은 것을 물어보았다.
"넌……. 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아, 이거."
힐다는 멋쩍게 웃었다.
"참 나, 맨날 헤비메탈이니 뭐니 듣던 계집애가 지금 뭐가 된거야? 난 또 갱에 들어가거나 히피가 되어서 나한테 전화를 안 하는 줄 알았지."
"다 어릴 때 일이라고."
힐다가 니키타의 등짝을 내려쳤다. 그 때 이야기는 말하지 말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B : 헤비메탈이요?
H : 다 옛날 일이라니까요?
B : 허, 참…
H : 그만해요 좀.
"그냥, 대학 다니다가 어찌저찌해서 이렇게 되버렸네. 그러는 너는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쬐깐해서 자신감도 없던 귀여운 니케의 옷차림이 이럴줄은 몰랐다고. 세상에, 탱크탑에 핫팬츠에 멜빵에……. 킬힐에! 너한테도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힐다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니키타의 머리카락을 죽 잡아당겼다. 니키타는 인상을 쓰면서 손을 쳐내며 말했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잖아."
"아니, 이건 변신 수준이 아닌데."
힐다는 정색했다. 그 특유의 표정이었다. 니키타는 오랫만에 웃었다.
"그나저나 너 놀러온거야?"
힐다가 물었다.
니키타는 고개를 저었다.
"음, 뭐 경찰 된다더니."
"경찰……."
니키타는 씁쓸하게 웃었다.
"이었다가 다른 일을 갖게되었어."
"안 맞았던거야?"
"그건 아니었지만, 뭐. 설명하면 복잡해."
"그럼 일 때문에 온건가?"
니키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장 가봐야 해? 우리 좀만 말하면 안될까?"
힐다가 니키타를 쳐다보았다.
"어, 음, 곧장 가봐야 해."
"좀만 뒤로 미루면 안돼?"
"응."
힐다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서 묵는지만 알면 안될까? 저녁에는 시간이 될 거 아냐."
"너야말로 시간이 되는거야? 수녀원 통금이나 뭐 그런거 있지 않아?"
"아마 당분간은 자유로울거야. 다른 일 때문에 잠시 수녀원을 나온거거든."
힐다는 환하게 웃었다.
"데리러 오는 사람은 있어?"
니키타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데려다 줄게."
"워, 아냐."
"괜찮아."
힐다가 니키타를 잡아끌었다. 니키타는 끌려갔다. 옛날에도 자주 이랬는데,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니키타는 세상이 좁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몇 십년 간 연락이 끊긴 친구와, 미국도 아니고 스페인에서 만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공항 입구에서 힐다는 잠시 멈췄다.
"음,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했는데."
힐다가 두리번거렸다.
B : 이제부터 제가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지타 수녀님 말을 듣다가 하루 해가 넘어갈 것 같군요.
H : 무슨 소리에요, 신부님. 얼마나 줄여서 말하고 있는데요!
B : 어차피 이 이후는 합류하는 이야기 아닙니까. 그래요, 저는 동생 안드레스랑 같이 지타 수녀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 멀리서 수녀님께서 두리번거리고 있더라고요. 옆에 키 작은 여자를 데리고 말입니다. 처음엔 누군가 싶었습니다. 수행원이 있단 말은 못 들었거든요.
하지만 니키타는 금새 힐다의 일행을 찾아냈다. 옛날에도 자주 이랬는데, 역시 달라진 것은 없었다.
"저 사람들 아냐?"
한 눈에 봐도 가톨릭 신부로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약간 고개를 갸웃거린게, 그 신부 옆에는 군인이 하나 서있었다. 힐다는 눈을 가늘게하고 그들을 보았다.
"베드로 수사 신부님인가보다."
힐다가 중얼거렸다. 니키타의 손을 잡아끌었다.
"아, 미안하지만 난 그냥 혼자……."
하지만 속절없이 끌려갔다. 니키타는 한숨을 쉬었다.
"지타 수녀님?"
수사 신부는 비스듬하게 힐다를 쳐다보았다.
힐다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부는 눈길을 내렸다.
"반갑습니다. 저는 페트로 프란시스코 수사 신부입니다. 베드로 수사 신부라 부르십시오. 그리고 이 옆은……."
베드로 신부는 한숨을 내쉬었다.
등장인물
페트로 프란시스코(베드로 신부)
"안드레스 프란시스코입니다! 옆에 있는 이 답답한 사람의 쌍둥이 동생이요."
안드레스가 환하게 웃었다.
등장인물
안드레스 프란시스코
"그나저나 옆에 계신 분은……."
신부가 물었다.
"제 옛 친구인데, 우연히 이 공항에서 만났어요."
"……네?"
신부가 되물었다.
"믿기진 않지만 사실이에요."
힐다가 고개를 저었다.
B : 믿기지 않을 만도 하죠. 세상에 거짓말도 그런 거짓말이 어디있습니까. 지금 여러분들도 못 믿어서 우리를 갖다 처음부터 이야기를 듣는게 아닙니까?
H : 저, 베드로 신부님?
B : ……. 알았습니다. 아무튼 그 여자분은 최소한의 상식은 있었습니다.
H : 난 상식이 없단 뜻이에요? 너무해!
B : 말이 그렇단 뜻입니다. 그렇다고 수녀님께서 통상적인 상식이 있는 것 같아보이진 않지만.
H : 너무해, 너무해!
B : 말장난은 그만 하고, 그 분께서는 저와 제 동생을 보더니 가겠다고 하더군요. 좋아요. 보통 그렇게 나오는게 예의란 말입니다.
H : 하지만 신부님, 마중도 안 나와서 혼자서 그 짐들을 다 들고 털레털레 목적지까지 가야한다는데, 그걸 지나칠 수는 없잖아요?
B : 수녀님, 우린 보통의 신부, 수사, 수녀가 아닙니다. 아무튼, 그 여자분이 혼자 가겠다고 하니까, 제 동생 안드레스가 갑자기 나섰습니다. 여자에 눈이 뒤집힐 녀석은 아닌데, 아무튼 그랬습니다. 자기가 운전사라고 태워주겠다면서요.
"그럼 저는 이만……."
니키타는 힐다의 손에서 자기 손을 빼내려고 했다.
"이만 태워주시죠!"
힐다가 쾌활하게 제안했다.
"네?"
베드로 신부가 또 되물었다.
안드레스가 베드로 신부를 툭 쳤다. 스페인어로 뭐라 툴툴거렸다. 신부가 대꾸하기도 전에 안드레스가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태워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운전기사는 저에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니키타의 짐은 이미 힐다의 손에 넘어갔다.
"내가 오늘 너 넘어뜨렸잖아. 그렇게 높은 굽을 신고있는데.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안 다쳤어?"
힐다가 옆에서 재잘거렸다.
"괜찮아. 이 차만 안 탔으면 더 괜찮았을텐데."
니키타는 진심이었지만, 힐다는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그나저나 넌 힐을 신고서도 내 키를 못 따라잡냐. 우리 귀여운 꼬꼬마 니키타 케틀 양!"
힐다가 다시 한번 안으려는것을 니키타는 노련하게 피했다.
"안 타요?"
안드레스가 소리쳤다.
힐다는 다시 한번 니키타의 손을 잡아끌었다.
"아, 힐다. 근데 저 사람들……. 스페인 사람이야?"
힐다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마 그럴걸?"
"의외로 영어를 잘 하는데."
"너 신부랑 수녀 무시하지 마라?"
힐다의 말에 니키타는 고개를 다시 흔들었다.
B : 제 동생도 참……. 수녀님 말씀에 막무가내로 태워주겠다고 말했으니, 원.
H : 그만큼 순수한거죠. 착한 사람 말이에요.
B : 착한게 아니라 멍청한거죠. 골이 비었다, 이겁니다.
H :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동생이잖아요!
B : 그러니까 시종일관 걱정입니다. 거기다 지금은 실종 상태……. 이 녀석을 도대체…….
H : 안드레스 형제님의 일은 유감입니다만, 그래도 계속 말해야지 않겠어요? 지금 재단도, 세계 오컬트 연합도 함께 나서고 있으니 곧 행방을 찾을 수 있을거에요.
B : 그러길 바라야죠. 아무튼 그렇게 몇 번 실랑이가 오가고, 결국 그 분을 어떤 기업체 앞까지 데려드렸습니다.
사람 1이 갑자기 뛰어든다. 사람 2도 급하게 사람 1을 말린다.
사람 1 : 이게 뭐야, 이게 극이냐?
사람 2 : 아직 다 안 썼다니까? 야, 그리고 이 정도 정보 보는 것만 해도 감사하게 생각해! 사본 몰래 빼돌리느라 얼마나 진땀 뺐는 줄 아냐?
사람 1 : 하긴, 너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사람 2 : 너 죽을래?
사람 1 : 네 손에 죽는다고? 참 나,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사람 2 : 아무튼, 이 부분을 잘 각색하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사람 1 : 배우들 역량이 중요하겠지.
사람 2 : 상황 자체는 엄청나니까! (목을 다듬는다) 자, 그럼 계속 말해볼까?
사람 1 : 아직도 안 끝났냐.
사람 2 : 한참 남았어. 이제 시작인걸?
사람 1 : 도대체 공연 시간을 몇 시간이 나오게 하려고!
사람 2 : 인터미션 넣어. 그래서 니케 요원은 위장 기업에 도착했어. 무슨 연구소…. 기업체 연구소 말이야. 그런걸로 위장해있는 작은 지부였어. 니키타를 처음 본 관리자는 무슨 기분이었을까?
사람 1 : (영혼 없이 중얼거리며)아, 귀찮은 일이다. 이야 신난다.
사람 2 : 이 상상력 없는 새끼 보소? 야, 니케 요원의 그 당시 옷차림을 생각해보라고.
원색의 탱크탑, 약간 흘러내린 멜빵에 핫팬츠, 10cm가 넘어가는 힐, 그리고 그 위에 걸친 커다란 와이셔츠.
사람 1 : 뭔가 상당히 반항적이군.
사람 2 : 적어도 양복과 양복과 양복만 입고다니는 사람들에 비하면 낫지. 아, 그래도 재단은 덜한 편이야. 세계 오컬트 연합 사람들은 아휴, 그거 어유.
사람 1 : 그 사람들은 원래 그렇잖아. 엘리트 의식에 사로잡힌 중견의 사원.
사람 2 : 사원?
사람 1 : 별로 유망하지도 않은 소기업 사원.
사람 1과 사람 2가 마주보며 낄낄거린다.
니키타를 맞이한 기지관리자는 정확히 3초간 침묵했다.
"아."
기지 관리자가 처음 한 말이었다.
"어서오십시오."
그 다음으로 뱉은 말이었다.
"수녀님과 같이 오셨던데, 혹시 무슨 일인지 여쭈어봐도 괜찮겠습니까?"
기지관리자는 천천히 말했다.
스페인 억양이 심하게 섞여있었지만, 알아듣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냥……. 우연하게 만난 사람이에요."
오랜 친구를 미국도 아닌 스페인에서 만났다고 하면 말하기가 너무 번거로웠다.
"조심하십시오. 혹시 모릅니다."
그는 조심스럽게 니키타를 꾸짖었다.
"죄송합니다. 조심하겠습니다."
"그럼, 방에 돌아가시면 여기서 발견한 변칙 기록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지평선 계획이 움직이고 있다니, 종교에 관련된 것이 좋겠군요."
"지평선 계획이라면 그 아브라함 계열의……. 맞죠?"
기지관리자가 물었다.
니키타는 관리자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움직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예?"
니키타는 한쪽 눈썹을 찌푸렸다.
"여기는 유럽이에요. 가톨릭과 동방정교회를 관측하는데 어려움은 없습니다."
"신기……. 하군요. 분명 스페인에서……."
"역정보일 경우는 생각해보았습니까?"
"보고하겠습니다."
지평선 계획이 움직이지 않는다니, 이게 또 무슨 소리인가. 니키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안 서버로 세르펜토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사건 ISO-190584 증거물 : 니키타 케틀 요원(3등급, 선행 조사요원)이 콜린 클랜([편집됨], [편집됨)에게 보낸 메시지
TO. SERPANTO
TITLE : [무제]
뭐야, 빌어먹을 계획은 안 움직인다는데? 젠장, 좆같은 기지 관리자가 설레발 친거야, 아님 스페인 지부가 엿같은거야?
FROM. NI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