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_ritu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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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을 향한지도 벌써 보름이 다 되어갔다.

해는 어느새 중천이였다. 간밤 그 짧은 사이에 온 땅을 하얗게 물들여버린 눈에서는 은은한 태양빛이 묻어나왔다.

동지(冬至)는 보름 앞으로 다가왔고 무심한 태양은 늘 그러했듯이 뉘엿뉘엿 움직이고 있었다. 백강(帛鋼)은 심정이 급해 걸음을 재촉코자 하였으나 짐덩어리를 하나 달고온 덕에 그러지를 못하였다. 차라리 저것이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였으면 지게에 이고 달려가면 그만일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짐덩어리, 그러니까 벽오(碧梧) 이시발(李時發)은 마치 툭 치면 마른 가지 쪼개지듯 바스라질 것처럼 빈약해 보였다. 솜버선에 솜저고리 솜바지까지 솜으로 몸을 죄 두르더니 그 위에 갖옷까지 갖춰 입은데다 그것도 모자라 짐꾸러미에서 포(袍)를 하나 꺼내 칭칭 감고도 팔다리를 죄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으니 그 꼴이 백강은 영 못마땅했다.

사실 무리도 아니였다. 벽오는 벌써 갓 애년(艾年)을 넘긴데다 무릎이 아프네 허리가 쑤시네 하는 말을 달고 사는 처지였다. 산행(山行)은 아니라지만 언덕에 언덕을 거쳐 가는 길이였고 거기에 간밤에 눈까지 내려 걷기도 힘드니 오죽할까. 애초에 시간이 넉넉했다면 더 편한 길을 택할 수도 있었던 터, 출발할 적 친해진답시고 밍기적대며 시간을 버린 것이 못내 아쉽게만 느껴졌다.

해가 뜬 직후부터 걷기 시작했으므로, 벌써 두 시진은 족히 지났을 것이다. 벽오가 죽어가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으며 백강 본인의 다리도 슬슬 삐걱거리던 차, 마침 큰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잠시 쉬었다 가세나.”

황동빛으로 빛나는 검지가 큰 나무 하나를 가리켰다. 귀가 먹은 듯 한참 동안이나 멍하게 걷고 있던 벽오는 그 말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상당한 고목이였다. 둘레도 장정 열댓명정도는 와야 두를 수 있을 듯 해보였고 눈에 덮혀 에 보이는 굵은 나무뿌리에, 다만 육중한 덩치에 비해 키는 작아 그 형상이 마치 쭉 빠진 나무를 망치로 내리쳐 눌러 놓은 것 같았다. 이 정도 나무면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한대 받아 이것저것 달려있을 법도 한데, 주변에 인가가 없어 수호목이 되기는커녕 길가던 나그네 관심이나 한두번 되는 수준인 듯 해보였다. 지금처럼.

벽오는 나무에 쓰러지듯 기대더니, 등을 기댄채로 하체에 힘을 빼고 무릎을 굽히기 시작했다. 몸을 지탱할 하체가 무너지자 나무에 딱 붙은 등이 조금씩 아래로 미끄러지더니 결국 털석 하고 꼬꾸라졌다. 백강을 이것을 앉았다고 해야 할지 쓰러졌다고 해야 할지 잠깐 고민했다. 허나 그 고민은 결코 오래가지 못했는데, 벽오가 나무에 충돌하며 가한 충격이 나무가지를 흔들자 그 위에 앉아있던 눈이 후두둑 하며 백강의 머리 위로 낙하했기 때문이었다.

졸지에 눈을 뒤집어써 눈이고 뭐고 아무것도 안보이는 백발노인 신세가 되어버린 백강은 잠시 멈춰있더니 곧네 물 빠진 개 물 털어내듯 몸을 좌우로 움직여 눈을 털어냈다. 허나 그를 당황케 만든 것은 떨어진 그를 덮친 눈이 아닌, 무릎팍에 살포시 놓여있던 웬 외간 남자의 머리통이였다.

"엉겨붙지 말아, 징그럽게."

그 말에 벽오는 손을 흔들어 장갑을 벗어던지더니, 눈앞에서 흔들어댔다.

"춥단 말일세. 이 보세. 손가락이 얼어버렸다고, 이게 굳어서 움직이질 않아. 자네는 따뜻하잖나, 신세 좀 지겠네."

벽오는 능청스래 손을 뻗어 손목을 눈 앞에서 까딱까딱하며 미소지었다. 허나 시퍼렇게 질린 손가락을 보니 말이 순 거짓은 아니였던 모양이었다.

"혹 못 쓰게 되면 내가 새로 하나 달아주겠네. 되었는가?"

"허허, 이 사람 무서운 소리를 하는구만."

"광양까진 얼마나 더 걸어야 하는가?"

"이대로 가면 사흘 내에 당도할 걸세. 자네가 보고 싶어하던 초조제는 열흘 후에 시작하고, 초조제 한 주 전부터 마을 문을 전부 닫으니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수 있을 걸세."

"그러고 보니 자네, 광양에 거목이 있다 하였지? 이 나무에 비하자면 어떠한가?"

"이 나무와 비교를 감히 할 수준이 아니지."

차던 새벽공기의 감촉을 기억하며 숨을 들이켰다. 차가운 공기를 조금 데우듯 태양이 빛나고 있었다.

지천에 깔렸던 눈도 정오의 태양을 당해내지는 못했던 듯 어느덧 조금씩 녹아내려가고 있었다. 이따끔씩 나무가지 위에 얹어진 눈들이 푸드득거리며 떨어졌다.

""

"출발하세나, 갈길이 멀어."

"그래, 문이 닫히기 전에 도착해야지."

벽오는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았다. 길을 따라 백지 위에 선을 그은 듯 선명한 발자국이 지난 여행의 궤적을 보여주었다.

춥네요

그럼 덥겠냐

더운데

문을 왜 닫는겨

닫아야 하니까

ㅅㅂ

잠겼어

늦었어

완전봉쇄?

ㄴㄴ

환풍구 있음

나갈수 있음?

오체분시 가능

다른데?

천문대?

니네 그런것도 있냐

무시 ㄴ

근데 거기는 또 통제구역임

ㅋㅋㅋㅋ 못들어가는거잖어

글치 머

미쳤냐? 여기로?

이거 아님 답없다 가자

미친거아니야 진짜

밀지마

"백강 자네 그거 아는가?"

"뭐."

"자넨 내게 구들장 같은 사람이야. 항상 따뜻하고…"

"무슨 뜻인가?"

"덥다고. 좀 나와보게나 쪄 죽을거 같으니."

ㅎㅇ

ㅎㅇ

니네뭐냐

대화를 하자 우리

부정탄다 이것들아

두명이면 뭐

에휴

시작함?

시작하는건가요?

암것도 안하는데?

니는 준비라는걸 모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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